쌍용자동차, 용역 그리고 노동자
양규헌(노동자역사 한내 대표)
공황 그리고 파시즘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가 절필 선언 이후 첫 강연에서 “지금은 인권이 존재하지 않는, 인권의 존재를 허용하지 않는 파시즘 시대의 초기”라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한편 손호철교수는 “파시즘의 기본은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 여부가 아니라 20세기 초반에 나타난 독점자본주의로 성장하면서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반동적 재편이 있었느냐의 문제”라고 보고 있다.
누가 폭력을 휘두르는가
삶 자체가 전쟁인 요즘이라지만, 쌍용자동차에는 노동자끼리의 목숨을 건 일진일퇴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쌍용차 자본은 자신들의 위기를 노동자에게 전가시키면서 그것도 모자라 노동자간의 싸움을 만들고 있다. 향후 3년간 기본급을 동결하고 상여금과 일체의 복지를 반납할 것을 서약하여 말이 살아남았지 숨만 쉬고 있는 해골이나 다름없는 노동자를 한편으로 하고 다른 한편은 정리해고 통보를 받아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인 노동자들이 서로 바리케이드를 마주보고 섰다.
이미 끝이 어떻게 될지를 예상하고 가족을 한 칼에 정리하고 신라군과의 결전에 나선 계백과 같은 심정으로 집을 나선 노동자라 할지라도, 자본에 꼭두각시가 되어 현장에 진입한 동료 노동자들에게 차마 쇠파이프를 휘두르지 못해 갈등하고 눈물을 흘린다.
언론들은 평택공장에 난입한 수백 명의 용역들이 휘둘려댄 쇠파이프와 수십 개의 절단기 얘기는 하지 않는다. 죽을 각오로 투쟁을 결의한 노동자들을 조롱하고 협박하면서 노동자들에게 쇠파이프를 들게 만든 쌍용차 사측과 용역들의 폭력은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용역들의 난입 소식을 듣고 한 걸음에 달려온 가족들의 절규와 호소에 침을 뱉으며 차가운 땅바닥으로 그들의 안타까운 손을 내동이친 관리자들에 만행에는 침묵한다. 단수를 하고 전기를 끊겠다고 위협하면서 백기 항복을 하라고 외치는 자본의 반인권적 작태는 마치 당연한 것처럼 알려내는 보수언론과 사측은 그저 노동자들을 폭력집단으로, 연대하는 단체들을 좌파불법집단으로 매도할 뿐이다.
이명박 정권은 어떤가. 쌍용자동차의 중국 상하이 자본이 노동자를 박살내도 좋고 아니면 현장탈환을 못해 회생 요건이 안 돼 파산을 해 철수를 해도 좋은 꽃놀이패를 쥐고 앉아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 이제 일진일퇴의 공방이 끝나고 현장에서 철수한 자본은 경찰력을 불러들이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실업, 밥벌이 용역들
비정규법 시행을 앞두고 이명박 정권은 앞장서서 해고를 선동한다. 공공기관부터 비정규직 해고를 자행하고도 ‘비정규직의 일자리를 책임지기 위해 비정규법을 유예해야 한다’는 위선을 떤다. 대량해고의 근거를 만들어준 민주당은 거품을 물고 ‘우리가 만든 법은 비정규직 보호입법’이었다며 노동자들의 수호자인 양 굴지만 이미 노동자들은 비정규법이 제정되기 전부터 이 법이 비정규직을 자르는 법이 될 거라고 경고한 바 있다. 그때 민주당은 노동자들의 주장을 외면하면서 이 법을 만들었다. 그럼에도 세월이 얼마 가지도 않아 민주당이 비정규법을 추가로 개악하는 한나라당과 전쟁을 치르고 있으니 이 또한 개탄스러울 뿐이다.
실업을 넘나드는 파리 목숨 비정규직, 그나마 최악의 생계를 유지할 정도의 최저임금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불안정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양산되고 있다. 복지예산은 줄어들고 사회적 안전망이라곤 더 축소되는 이 시절에 그들 불안정노동자의 양산이라는 칼날은 단지 이명박 정권으로만 향할 것인가. 공황시기 자본의 위기를 반동적인 국가동원체제로 극복하려는 한 유형으로서 파시즘은 룸펜프롤레타리아트를 그 기반으로 한다고 했을 때, 파시즘이 논의되고 있는 이 시점에 비수는 누구를 겨냥할 것인가.
손호철 교수는 다른 글에서 우리 사회에서도 최근의 경제공황과 관련해 국가폭력의 증가와는 별개로 독일과 같은 파시즘적인 대중운동이 나타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해병대 구국결사대, 여군전우회, 특별경호단으로 구성된 민간극우조직인 애국기동단을 들고 있다. 지난 3월 출범한 애국기동단은 대한문 앞에 설치되어 있던 고 노무현 전대통령 시민분향소를 철거하는 전과를 올린 바 있다.
요즘 용역의 용처가 사방에 늘어나고 있다. 용산참사를 통해 잘 알려진 용역은 서울에서만 260군데가 넘는 곳에서 재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으니 가히 호황기라 할 수 있다. 노동현장에서도 노조파괴 공작이 이루어지는 곳이나 노동쟁의가 있는 곳이면 늘 등장하던 용역이라지만 쌍용자동차에서 보듯 공황 시기 용역의 수요가 늘고 있는 것이 당연지사일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아르바이트로 나서는 학생에서부터 실업의 나락에서 헤매는 불안정노동자들이 그 수요를 메우고 있다. 끼니를 위해 나선 용역은 생존을 위해 공장을 점거하여 투쟁하는 노동자에게 적의를 가지고 덤벼들고 있다.
노동자계급의 요구를 건 강력한 투쟁전선 구축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보수언론을 보면 자본가들과 이명박 정권이 비정규직들을 옹호하고 양노총은 정규직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기주의자들이다. 공장을 점거하고 있는 천명의 쌍용차 노동자들은 4천명의 노동자들, 부품업체를 죽이는 이기적인 집단이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투쟁은 자본에 위기를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위기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지우는 자본과의 투쟁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구분하지 않고 노동자가 함께 살자고 하는 투쟁이다. 자본 살리기를 하지 말고 노동자 살리기를 해서 기업을 회생하자고 하는 투쟁이다. 쌍용차 경영파탄의 주범인 상하이자본의 권한을 뺏고 책임을 지우자는 투쟁이다. 이것은 1천 명이 시작한 투쟁이지만 전체 노동자들을 위한 투쟁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과 정권이, 보수언론이 사활을 걸고 이 투쟁을 죽이려 한다.
비정규법 추가 개악 또는 유예에 맞서 ‘비정규 차별 철폐와 악법 폐기’를 주장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은 850만에 달하는 비정규노동자들의 고용과 생존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다. 이 투쟁이 어떻게 이기적인 투쟁일 수 있나. 3개월 단기 아르바이트로 일자리 창출을 떠들어내고 있는 정권에게 안정된 일자리를 요구하는 이 투쟁이 어떻게 이기적인 투쟁인가.
이대로 두면 노동자들이 서로를 원망하면서 등을 돌릴 수도 있다. 결국 해답은 무엇인가.
비정규법 추가개악과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저지투쟁에 함께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분노가 어디로 모아질 것인가는 장담하기 어렵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저지투쟁에 그렇게도 외치던 단일산별 금속노조가 하나 되지 못한다면, 비정규입법과 최저임금법 개악 저지투쟁에 민주노총이 하나 되지 못한다면 오히려 분노의 화살이 노동조합운동으로 향할 수도 있음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