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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신전선 노동자들의 투쟁
⦁ 시기 : 1987년 8월 7일
1987년 8월 7일, 오후 1시부터 대전공단 내 동신전선 노동자 200여 명은 ‘폭력 어용노조 퇴진’과 ‘최저생계비 보장’을 요구하며 회사 식당에서 농성에 돌입했다. 사건의 발단은 이 회사 여성노동자 이봉순이 동료의 밀린 퇴직금 문제 해결을 위해 노동조합 사무실을 찾아가 호소한 데서 시작됐다. 노조가 이를 묵살했을 뿐만 아니라 회사측에서는 해고하겠다고 위협하고, 이에 편승해 노조간부 김영종이 이봉순을 폭행한 것이다.
이에 노동자들은 산적한 회사 문제를 더 이상 어용노조에 의존해서는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회사의 앞잡이인 폭력 어용노조의 즉각적인 퇴진을 요구하며 ‘노조민주화 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8월 7일 점심시간 이후에도 200여 명의 노동자가 작업을 거부하고 농성에 돌입해 △폭력 어용노조 퇴진 △강제 잔업·철야노동 폐지 △남자 일당 3,500원, 여자 일당 3,400원의 저임금을 최저생계비인 일당 7,000원으로 인상 △상여금 400% 지급 △식사와 복지시설 개선 등을 요구했다. 이에 각 사업장에 남아있던 200여 명의 노동자도 합세하려 하자 회사측에서는 관리직원을 동원하여 이를 제지하고, 작업을 중지하고 모두 퇴근시켜버렸다. 또한 회사는 어용노조와 결탁해 ‘노조민주화 대책위원회’의 요구에 대해 현 노동조합을 통하지 않고는 협상할 수 없다고 거부하며, 회사 밖에서 농성에 동참하려는 노동자들을 제지했다. 이에 다수의 노동자들은 노조집행부를 강력히 규탄하며 빵과 우유 등 음식물을 담장 안으로 넣어주며 노동자들에게 성원을 보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투쟁이 미리 준비된 것도 아니고 내부에 투쟁 경험이 있거나 또는 투쟁을 계속 이어갈 단결력이 확보되어 있지 못한 상태에서 일어난 투쟁이었기에 조직적이고 체계적이지 못했다. 결국 동신전선은 상여금 600%로 인상, 임금 100% 인상 등을 확보했으나 그후 투쟁을 계속 지속할 조직체로서의 ‘노조민주화 대책위’는 포기한 채 협상을 종결하게 되었다.
⦁ 참고자료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7~8월 노동자 대중투쟁>(민중사, 1987), 1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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