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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체제라는 역사와 현재의 노동운동_양규헌 (103호)
첨부파일 -- 작성일 2017-10-20 조회 836
 

87체제라는 역사와 현재의 노동운동

 

양규헌(노동자역사 한내 대표)

 

지루하고 답답한 더위 속에서 아픔과 절망이 공존했던 시간들은 아련한 기억들만 촘촘히 남겨둔 채 야속하게 흘러갔다. 돌이키고 싶지 않은, 돌이킬 수도 없는 슬픔과 안타까움이 공존하는 현실을 여름과 함께 뒤로하고 10월 중순을 더듬고 있다. 청명한 가을하늘, 서늘해지는 이성, 단풍, 들녘, 코스모스, 들국화 등이 떠오르며 계절 속에는 일반적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 그것은 각자가 걸어온 삶의 일부를 돌이켜보는 것이며 그 속에는 개개인은 물론 집단과 계급의 역사 또한 계절의 언저리에 서로 엉켜있음을 회고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역사와 언어

 

역사란 현재와 과거와의 대화, 그리고 살아있는 현재라고 한다. 역사는 모든 단계마다 고유한 의미와 함께 그 시대 언어로 소통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흔적을 남긴다. 원시공산제 사회에서도 모든 인간은 사회 속에서 태어났고, 또 아주 어린 나이에서부터 사회에 적응해 나갔을 것이다. 시대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는 개인적 유산이 아니라 그들이 성장한 집단에서 얻은 사회적 획득물이다. 언어는 직립보행과 마찬가지로 문화적 발명품이 아니고 일반적 능력을 보여주는 증거물도 아니다. 말하는 것은 본능이며 말하는 사람의 생각을 표현하는 방식이기에 언어구사는 철학, 환경과 직접적 연관이 깊다.

 

어릴 적 생각과 말은 부모나 다른 사람에게서 온 것이다. 그러나 성인이 되었을 때의 언어는 그의 생각과 내용을 결정하기 때문에 언어는 생각이나 느낌을 말이나 글로 전달하는 수단 및 체계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사회에서 동떨어진 말이 없고 현실과 무관한 사고도 없다. 노동자계급에게는 노동자 언어가 있고, 지배계급에겐 그들의 언어가 있으며 이 언어들이 충돌하는 지점은 대립지점이며 쟁점이 된다. 가장 거대한 집단이면서도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는 노동자계급은 노동운동역사를 인식하며 투쟁한다. 현재를 포함, 미래에 대한 전망을 갖기 위해 자신들의 역사인 노동운동사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반성과 계승이라는 바탕에서 언어를 구사한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과거는 반복된다는 말을 교훈 삼으며.

 

노동운동과 역사인식에 대한 유체이탈

 

올해 여름 ‘6월항쟁’,‘노동자대투쟁 30주년이 각 지역에서 다양한 행사로 치러졌다. 지난 96일 민주노총도 87노동자대투쟁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노동자 대투쟁의 특징과 성과에 대한 발제가 있었고 이어 민주노총 중집위원(산별위원장, 지역본부장) 일부 토론이 있었는데 민주노총의 핵심조직인 연맹위원장의 토론문이 눈길을 끌었다.

토론문의 두 번째 꼭지에 “87정신은 계승하고 87체제는 이제 청산하자는 소제목이 있다. 그 동지의 분석은 87노동자투쟁의 배경이 반합, 비합법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에 때문에 동지 간에 결의가 높았고 그런 결의가 대투쟁을 가능하게 했다고 진단하였다. 나아가 그는 정파로 굳어져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지금 현재의 상황이 노동운동의 갈등과 분열의 원인이며 시대의 변화와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정파운동이 대중조직의 질서를 파괴하고 진보정치, 산별재편 등 모든 부분이 정파적 이해로 좌우되는 상황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진단했으며 다음과 같은 주장을 열거했다.

 

전태일열사의 정신을 계승하고 자주성, 민주성, 계급성, 투쟁성, 변혁성인 87노동자대투쟁의 정신을 복원하자. 그것이 진보정치를 단결시키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노동운동 그리고 민중운동에 영도계급으로써의 노동자가 자기 책임과 역할을 할 수 있다. 87노동자 대투쟁이후 이제 87년 세대도 체제도 청산하자”(원문 옮김)고 주장한다.

정신은 계승하고 세대와 체제를 청산하자는 주장은 논쟁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며 납득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정신은 계승하고 세대와 체제를 청산하자는 언어는 전형적인 유체이탈이기 때문이다. 충격적인 토론문 속에 담긴 우려스러운 분석과 주장이 조직의 입장이 아니라 개인의 순간적 생각이기를 바랄뿐이다. 그럼에도 노동운동 역사에 대한 인식과 언어가 이 지경이라는 사실이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상황이 달라졌어도 본질이 다르지는 않다.

 

일반적으로 표현하는 1987년 체제란 87항쟁을 통해서 도입된 정치사회적 체제라고 정의할 수 있다. 87년 체제란 민주화운동의 성장이라는 정치조건의 변화를 배경으로 이루어진 정치적 민주화에 다름 아니며 그 정치적 민주화란 군사독재정권에 의해 사라졌던 형식적, 절차적 민주주의 즉 부르주아민주주의의 회복을 의미한다. 필자는 부르주아민주주의를 노동자계급의 최후의 지향점으로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청산이라는 잣대를 들이댈 수 없다. 청산을 주장하는 것은 투쟁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며 일각에서 떠들어대는 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냐는 맥락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특히 87년 노동자대투쟁은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을 담아내고 노동자계급에게 희망을 제시한 투쟁이다. 그 투쟁의 조직적 성과가 반노동자적 역사로 점철된 한국노총을 노동자 조직으로 인정하지 않고, 노동자계급의 요구를 수렴하여 관철하려는 전노협과 민주노총으로 모아졌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일부 활동가들은 87대투쟁 30주년을 접하면서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고 한다. 다르다는데 동의한다. 고용형태가 다층적으로 변화하여 비정규노동자, 불안정 노동이 가속화되고 있는 형태가 다르다. 또 노동자계급의 대표체로서 민주노총이라는 중앙조직과 산별이 건설된 것도 그 때 상황과 다르다. 그러나 지배계급과 노동자계급의 대립지점의 본질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을 주시하지 않는다면 상황이 다르다는 말은 현실운동 위기에 대한 자기변명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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