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진승우 회원이 회사 블로그에 실었던 글을 약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한내를 후원하는 이야기를 실은 것이지요. 진승우 회원의 양해를 구해 싣습니다.
우리의 ‘불온한 움직임’을 역사로 만들기 위해서는
자료가 곧 역사다 <노동자 역사 자료 ‘한내’>
진승우(노동자역사 한내 회원)
학교를 다니며 한 여러 아르바이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성공회대 민주자료관’에서 2년 가까이 일한 경험입니다. 당시 저는 연구보조원으로 자료를 정리하고 분류하는 업무를 담당했었습니다. 처음 ‘민주자료관’이라는 곳을 방문할 때만 해도, 자료관이라는 곳이 뭘 하는 곳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도서관 같은 곳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죠. 학교를 다닐 때 가장 친했던 선배가 기록관리학 대학원을 나와 마침 성공회대 민주자료관에서 일하고 있었고 제가 ‘진보정당사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되면서 자료관이라는 곳에 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자료관에 들어서는 순간 양면에 꽉 찬 모빌랙(mobile rack)에 시선을 압도당했습니다. 모빌랙이란 자료를 효율적으로 보관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일종의 이동식 책꽂이 같은 거죠. 모빌랙에는 한국의 민주화운동 관련 자료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습니다. 그 이후 시간 날 때마다 자료관에 들러 자료들을 구경하는 게 즐거운 취미가 되었습니다.

<노동자역사 한내 모빌랙 모습>
진보정당 관련 자료들을 정리할 때에는 재미있는 것들도 많았습니다. 92년 총선 때 가수 민혜경이 민중당 후원금을 냈다는 기사부터, 지금은 이명박의 최측근이 되어 있는 이재오 전 국회의원의 민중당 후보 시절 팸플릿과 포스터, 심지어는 지금 한국의 대표적인 보수 이데올로그가 되어 있는 이문열의 민중당지지 광고까지(당시 이재오를 지지하는 광고를 실었더군요)…. 2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 과거의 자료를 들춰본다는 것은 고고학자들이 발굴하는 것과 같은 두근거림을 주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은 진보정당이 한국에서도 공식적으로 활동하고 있고, 국회에 진출까지 했지만 90년대까지만 해도 분회의 형식을 각 지역에 산재해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강원도 한 지역의 분회 자료를 보던 중 이런 대목을 발견했습니다. “술 너무 마시지 않는다. 도박을 하지 않는다. 마을 일에 솔선수범한다.” 일종의 분회 행동 강령 같은 것이었는데 현재 진보정당 분회 모임의 초기 형태를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너무 재미 위주로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이런 자료 말고도 당시 정세를 분석한 글과 그 분석을 기반으로 어떻게 활동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자료들도 많았습니다. 특히 87년, 91년과 같은 국내의 격변기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소련이 해체되었을 때와 같은 세계사적으로 굵직굵직한 사건이 터졌을 때 각 운동 그룹과 정파들이 어떤 분석을 거쳐 판단을 내렸는지를 조금씩이나마 엿볼 수 있었습니다. 흔히 우리가 ‘문건’이라고 부르는 자료들이 이곳에 모여 있지 않았다면 결코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없었던 기록들이죠.
역사는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사건입니다. E. H. 카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말했듯이 일어난 모든 사건이 역사로 남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사건을 역사로 만들 것인지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매번 역사교과서 파동이 일 때마다 진보와 보수 진영이 격렬하게 대립하는 것도 각자의 ‘현재’에 기반이 되는 역사를 정립하려고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과거의 역사는 지배자의 시각으로 쓰여져 있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역사를 남긴 사람이 바로 지배자였기 때문이죠. 근대 이후 민중사, 사회사 혹은 서발턴 연구라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연구는 지배자의 시선에서 배제되었던 사람들에게 주목하고 그들을 복원시키려는 시도이기도 합니다.
제가 후원하고 있는 <노동자 역사 ‘한내’>를 설명하기 위해 꽤나 먼 길을 돌아 왔습니다. <노동자 역사 ‘한내’>는 1999년 ‘김종배추모사업회’에서 시작해 2008년 노동자 역사 자료관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지금까지 주류 역사에서 배제되어 왔던 노동자들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서이죠. 주류 역사는 노동운동을 일부 좌파들의 선동, 자신들의 이익만 챙겨 온 역사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보수언론과 정부가 쌍용차 노조원들의 정당한 요구를 어려운 회사 사정은 생각지도 않고 자기 뱃속만 챙기려는 행동으로 몰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사건에 대한 기록을 모아 놓지 않는다면, 먼 미래의 사람들은 보수 언론과 정부의 자료만 보고 정말 그렇게 판단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자금력과 여타 모든 요소에서 열악하지만 보수 세력에 맞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우리의 자료를 모아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역사를 만드는 것이기에 제가 <노동자 역사 ‘한내’>에 후원하는 것이 기쁘게 느껴집니다. <노동자 역사 ‘한내’>와 같은 자료관이 더욱 많이 생겨야 합니다. 자료관의 역사가 오래된 유럽에서는 다양한 자료관이 있다고 합니다. 노동자 자료관뿐 아니라 환경, 여성, 소수자 등 여러 분야에서 자료관이 자리잡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자료들은 역사를 구성하는 데 훌륭한 도움이 됩니다.
제가 좋아하는 역사가 중에 로버트 단턴이라는 미국 프린스턴 대학 교수가 있습니다. 프랑스혁명이 전공인데 국내에는 『고양이 대학살』과 『책과 혁명』 등이 번역되어 있습니다. 흔히 우리에게 문화사라고 알려진 방법을 통해 프랑스혁명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읽어내고 있습니다. 그의 연구는 로베스피에르, 당통, 마라와 같은 혁명가들의 활약에만 주목하던 우리에게 혁명 전야의 프랑스 민중들의 ‘불온한 움직임’을 주목하도록 합니다. 그 결과 프랑스혁명이 몇몇 혁명가들의 공이 아니라 당시 꿈틀대던 민중의 변화 속에서 위치할 수 있도록 한 것이죠. 단턴의 이런 연구를 가능하게 했던 것이 바로 프랑스 공문서 자료관의 수많은 서류들이었습니다.
한국에서도 노무현 정권 당시 ‘자료보존에 관한 법령’이 통과되어 국가기관에서는 의무적으로 자료를 보존하게 되어 있습니다. 국가의 업무를 기록에 남겨 이후 제대로 공과를 평가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국가의 잘못된 정책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행정소송을 제기해도 해당 자료가 없다는 핑계로 요리저리 책임을 회피하던 국가를 생각하면 정말 꼭 필요한 제도입니다. 그러나 이런 법도 이명박 취임 이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하더군요.
<노동자 역사 ‘한내’>는 지금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계속 자료를 모집하고 정리하고 전산화하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모든 분들이 열람이 가능하고 후원회원이 되시면 원문 열람까지 가능합니다. <노동자 역사 ‘한내’>의 홈페이지(http://hannae.org/)에서 좀더 살펴보실 수도 있습니다. 아, 후원회원도 열심히 모집하고 있습니다. 함께 후원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