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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의 소리
삼성물산 일용근로자 파업사건
1984년 11월 5일 민주노동 제7호
최근 삼성에서는 구로 2공단 내에 막대한 자본을 들여 SS패션용 의류배송센타를 건설하고 있는데 올 10월 7일, 그곳에서 일용잡부로 일하던 100여명의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였다.
의류배송센타는 보통창고가 아니라 특별히 호화판창고로 건설하고 있는데, 일본 건축기술자를 월급 500만원에 초빙하여 호화판 호텔에서 잠자게 하고 있다.
반면에 그곳에서 일하는 우리 노동자들은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까지 무려 11시간 노동에 실수령액 6,800원의 일당을 받음으로써 8시간 기준으로 환산해보면 5,000원에 불과한 형편없는 임금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공사완료가 되는 12월이면 한겨울에 일자리마저 잃게 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아무리 노가다판이라지만 일요일 출근도 측근으로 인정해 주지 않는 악조건 속에서 며칠 일하고 그만두는 사람이 태반인 실정이었다. 지난 10월 5일 월급날은 평상시와 같이 7시에 작업을 마치고 월급을 주는데 한 명씩 호명해 가며 지불하느라 많은 시간을 기다리게 하였고 막상 월급을 손에 쥐어 보니 약속된 7,300원보다도 일당이 500원 적게 나오자 사람들의 불만이 고조되었다. 급기야 이틀 후인 10월 7일 점심시간에 회사 밖 골목에서 여럿이 모여 이와 같은 불만을 토로하게 되었고 조장들이 중심이 되어 요구서를 작성하였다. 그 요구서 내용을 보면 일당 500원 인상 및 조장 직책수당 지급하라, 노동시간을 8시간으로 단축하라, 휴일근무 시 특근수당 지급하라 등으로 4명의 조장들이 이 요구서를 사무실에 제출하였으나 관리자들은 이를 묵살하고 오히려 조장을 질책하였고, 나갈 놈은 나가라고 큰소리를 쳐댔다. 회소한의 요구도 거절당한 노동자들은 분노하며 동류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회사 밖으로 함께 걸어나오면서 만약 다음날도 반응이 없으면 시위 농성에 들어갈 것을 결의하고 헤어졌다.
그러나 다음날 출근하는 노동자들 앞에는 완전무장한 전투경찰과 삼성본사에서 나온 간부진들, 노동부 사무관 등과 그 외 사무실 직원들이 살벌하게 노동자들 주위를 포위하는 것이었고, 그런 공포분위기 속에서 삼성측은 노동자들이 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고발을 하겠다는 고소장을 읽어주고 노동자측에서 낸 요구서를 내보이며 이것은 분명히 불순분자의 소행이라면서 색출하겠다고 위협하였다.
한편 요구서를 제출했던 4명의 조장들은 형사들에게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고 현장에는 10여명의 전투경찰이 상주하였으며 또한 사복형사들이 마치 현장 감독처럼 돌아다니며 감시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감시 속에서도 노동자들은 태업으로 대항하고 일부는 작업 거부까지 하자 삼성측은 고참보다 더 많은 일당을 약속하면서 새로 노동자를 고영해 동료들간을 이간시키고 조장들에게는 건물 공사가 끝나면 삼성물산에 취직 추천을 하겠다는 등 속이 빤한 속임수로 회유하였다. 또한 노동자를 모이게 한 뒤 도산(도시산업선교회)이니 불순분자들의 소행이니 하는 교육을 매일 반복하면서 노동자들의 단결을 약화시켜 나갔다.
이러한 삼성측의 악랄한 방해공작으로 현재 노동자들의 사기는 저하되어 있고 열악한 작업조건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으므로 언제 다시 노동자들의 응어리진 불만이 표출될지 모를 일이다.
일본인 기술자 3명에 대한 월급과 접대비가 한국의 노동자 100명에게 지불하는 봉급보다 더 많은 기막힌 처지에서 가난하고 순박한 노동자들이 처절하게 요구하는 생존권을 노동부, 경찰, 회사가 일체가 되어 폭력과 협박, 회유 등으로 탄압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이 파업사건은 다름아닌 우리나라 굴지의 재벌회사인 삼성에서 일어났음을 상기해야할 것이다.
78년 제일제당(주) 김포공장에서 노동조합 지부가 결성되었을 때 삼성재벌의 이병철 회장이 남긴 극악한 말이 있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노동조합 꼴을 볼 수 없어.” 사장회의에서 이처럼 진노한 회장의 모습을 본 사장들은 자기 공장에서 노조가 조직될까봐 전전긍긍하게 되었고 제일제당측은 깡패와 경찰을 동원하여 노조를 파괴하고 말았으며 그 후 삼성그룹 산하 어떤 회사도 노조가 조직된 예가 없다고 한다.
소위 해방 후부터 제일의 재벌로 군림해 온 삼성그룹이 문화사업이니 교육사업이니 언론사업이니 하면서 마치 기업인의 사명을 다하고 사회에 봉사는 듯 떠들어대지만 삼성그룹 산하에 노동하고 있는 수만의 노동자에 대해서만은 유독 인색한 까닭은 무엇일까?
삼성그룹은 더 이상, 노동자의 피탐으로 이룩한 부의 축적을 생색만 내는 사업에다 쓸 게 아니라 약속한 임금을 지불하고 또한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수 있는 노조의 결성을 방해하지 말아야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