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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살아온 길
..... 양규헌의 ‘내가 살아온 길’ ⑰ '전노협 중심성' 둘러싼 치열한 사투
첨부파일 -- 작성일 2022-03-16 조회 345
 

양규헌의 내가 살아온 길⑰ 

 

전노협 중심성둘러싼 치열한 사투

 

조직발전소위 구성해 밤샘 토론

1992년 전노협은 안팎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에 직면했다. 자본과 권력의 침탈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른바 진보를 자처하는 지식인들이 전노협을 향해 짖어대는 공격 때문에 전노협 내부는 어느 때보다 어려웠다.

그들은 진보적 노동조합주의, 사회발전적 노동운동론 등을 들이대며 전노협의 전투성에 공격을 퍼부었다. 전노협이 너무 과격하다는 것이고, 그러한 전노협의 운동방식은 노동조합 대중조직으로 적합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대화를 통한 해결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전노협 지도부의 정치적 의도까지 들이대며 전노협 노선을 전면적으로 수정하라는 충고들이었다. 이들의 관점에서 전노협이 처한 상황에 대한 고민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들은 노동운동에 대한 고민보다 지배계급과 노동자계급 사이에서 거간꾼 역할을 하며 결과적으로 노동자계급 내부를 분열시키는 데 혈안이 된 듯했다.

전노협 내부의 혼란을 조장한 것은 진보를 자처하는 지식인들이며 그들은 지배계급의 행태를 답습하고 있었다. 지배계급이 자행하는 탄압에는 개인과 노동조합조직의 결의로 맞설 수 있었지만, 그들의 주장에 대한 해결방안은 끝없는 토론과 지리한 논쟁을 계속해야 했다. 비생산적인 논쟁은 조직 내부의 혼란과 조직력의 약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노동조합의 조합원이 다물단원이 되어 회사 쪽에 치우쳐 노동조합 투쟁을 가로막는 것처럼 말이다.

전노협은 어쩔 수 없이 조직발전소위(조발소위)를 꾸렸고 나도 참여했다. 전노협은 계급적 산별을 건설하기 위한 과도적 조직이므로 산별노조의 성격과 방향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서 시작된 토론이지만, 논쟁의 중심은 전노협 중심인가 대공장 중심인가’, ‘전노협 중심인가 업종회의 중심인가였다.

전노협에는 수배자가 있는 상태여서 조발소위 소집도 쉽지 않았다. 정보기관의 눈을 피해 종로 뒷골목 허름한 여관을 전전하며 밤을 새우기도 했다. 소위원들은 여러 차례 만나 논의를 이어갔고, 조발소위가 모아낸 결론은 전노협 중심성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노협 조직발전 전망은 중앙위를 거쳐 확정했지만, 김영대는 출소 이후 정세의 변화를 빌미로 현실론을 들이대며 끊임없이 조직발전 전망에 문제를 제기했다.


1992년 6월 세일중공업노조의 총액임금제 분쇄 투쟁(좌), 9월 삼미특수강노조 파업 현장에 투입된 경찰병력(우). 노동자들은 자본과 정권의 집중 탄압에 맞서 생존권 사수, 민주노조 사수 투쟁을 전개했다.  

 

동지들 결의 모아 경기노련 의장 출사표

경기남부지역노동조합연합(경기노련) 대의원대회가 준비되고 있는 와중에 의장이었던 임석순 동지가 석방됐다. 경기노련 창립부터 의장을 맡았던 임석순 동지가 긴밀히 얘기 좀 하자고 해서 만났다. 임석순 동지는 자신이 더는 경기노련 의장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며 양규헌 사무처장이 경기노련 의장을 맡아야 한다고 했다.

임석순 의장이 더는 경기노련 의장을 할 수 없다는 근거는 첫째, 경제적으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둘째는 지속된 활동에 지쳐 건강상태가 심각해졌기 때문에 운동을 계속할 의지가 없다는 것이고, 세 번째로 다시 경기노련 의장을 맡으면 이혼해야 할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제안을 받은 나는 차기 의장을 얘기하는 건 지금 상황에 맞지 않으니 일주일간 더 고민해 보고 얘기하자고 했다. 1주일 후에도 임석순 의장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대의원대회 일정은 다가오는데 계속 미룰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내가 결의를 하고 판단할 수 있는 문제는 더더욱 아니었다.

경기노련 동지들과 얘기도 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대우전자부품노동조합 내부에서 결의를 모아야 가능한 상황이었다. 당시 지노협 의장을 한다는 것은 해당 노조가 집중적인 탄압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내부의 결의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조직 사수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논의는 지역과 소속노조 두 갈래로 진행되었는데 소속사업장의 논쟁은 예상외로 길었다. 활동가 그룹에서는 이견 없이 노동운동 차원에서 모든 걸 사고하자는 쪽으로 결론이 났으나 확대간부들 생각은 두 가지로 나뉘었다. 간부들은 다가올 탄압에 대한 두려움이 컸던 것으로 보였다. 지부별로 편차가 있었는데 정주지부는 대체로 동의하는 상황이었고, 안성과 안양에 이견이 있었다.

논쟁이 계속되자 연우회에서 발 벗고 나섰다. 연우회는 노동자 문화 단위지만 대부분이 소모임에 소속되어 있는 동지들이었고 가투에서는 늘 선두에 서는 동지들이었다. 연우회 소속 모임들은 소모임 명의로 여성부 명의로 청년부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지역에서 대우전자부품노동조합의 역할을 내세우며 여론을 모아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 다가올 탄압에 대해서는 간부들과 조합원이 극복해야 할 과제이지 주눅 들고 두려워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으로 뜻이 모아져 내가 경기노련 의장직을 맡아야 한다는 쪽으로 정리되었다.

경기지역 논의에서도 다른 방안이 없고 사무처장(양규헌)이 적임자이니 힘있게 차기 집행부를 꾸리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지노협 첫 경선, 3차 투표 끝에 당선

경기노련 대의원대회를 준비하는 와중에 임석순 의장이 개별적으로 만나자는 연락을 해 왔다. 임석순 의장은 매우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이전에 했던 말 취소하면 안 되겠냐는 거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몇 번씩 확인하고 의견을 모아왔는데, 도대체 왜 그러냐고 반문하자 본인 상황이 변화된 것은 하나도 없는데 모 단체에서 집으로 찾아와 밤새 잠도 못 자게 하면서 경기노련 의장을 계속하라고 협박하는 바람에 나랑 약속을 지킬 수 없다는 거다. “경기노련 의장은 전노협 부위원장인데 이런 식으로 말장난하듯 하면 어떡하느냐고 했더니 그럼 안 나오겠다고 하는 둥 횡설수설했다. 나도 지금까지 논의와 결의 단위가 있었으니 동지들과 논의해보고 다시 만나자고 헤어졌는데 이게 도대체 뭐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머리에서 띵 울림이 전해 왔다.

조합에 들어가서 간부들과 활동가들에게 상황설명을 하니 경기노련이 무슨 취미 써클이냐?”는 등 별별 이야기들이 다 나왔고, 지역 동지들도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며 지금 단계에서는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들이 완강했다. 임석순 의장을 만나 상황을 설명하자 임 의장 하는 말이 그럼 둘 다 나가서 경선해보자고 한다. 본인은 하기 싫은데 단체 사람들이 워낙 못살게 굴어서 형식으로 나갈 테니 그렇게 하자는 것이다. “연극도 아니고 짜고 치는 고스톱도 아니고 꼭두각시도 아니고 뭐냐?”고 따졌다.

지노협 의장을 하고 안 하고를 떠나, 개인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폭력적’(임석순 동지 표현)으로 경기노련 의장을 심하게 압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파의 이해득실 앞에 지역운동의 전망은 아랑곳없다는 것인지. 그런 단체를 이해할 수 없었고 그런 압박에 당당히 맞서지 못하는 의장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역과 조합 내의 논의를 다시 할 수밖에 없었는데, 패권에 맞서는 것도 노동운동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 기회를 통해 지역 운동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모이면서 전노협 건설 이후 지노협이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경선의 길을 가게 되었다.

경기노련 대표자회의 분위기는 매우 어색했으며 정견발표 후 투표에 들어갔으나 쉽게 결정되지 않았다. 1차 투표는 기권 2명이 생기며 딱 반반이었다. 2차 투표는 내가 한 표 많았지만 과반수 미달이었고, 3차 투표에서 과반을 살짝 넘어 경기노련 의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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