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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지역의료보험노동조합 파업투쟁(1991년 5월)
첨부파일 -- 작성일 1991-05-09 조회 208

서울지역의료보험노동조합 파업투쟁


시기 : 199159~ 24

 

1989년 가을에 서울지역의료보험노동조합(아래 의보노조’)은 조합원 93%의 찬성으로 파업을 전개했으나 70일에 걸친 투쟁은 가시적인 소득 없이 끝나고 말았다. 무노동무임금 적용으로 조합원들의 사기는 떨어지고 임원·집행부는 해고됐으며 새로운 집행부 구성조차 쉽지 않았다.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의보노조는 전국 단일조직을 갖추어 연대의 틀을 정비하는 작업을 계속해 199011월에는 전국의 지역의료보험 노동자들이 장충단공원에 모여 단결을 다짐할 수 있게 됐다. 이후 19911월 대전 유성 신협연수원에서 열린 서노협 대의원대회에 참석한 의보노조는 열띤 토론으로 춘계투쟁을 결의했다. 19913월부터 지방노조들이 쟁의발생 신고를 하기 시작했고, 인천지역은 이미 파업을 결의하는 등 1989년 투쟁 이후 실추되었던 조직력을 회복해 가고 있었다.

 

1991년 투쟁의 목표와 계획

199146일 서노협 주최로 서울 도봉산 수련원에서 열린 수련회에서 의보노조의 시도 대표들은 1991년 봄 투쟁을 선언적이고 상징적인 투쟁이 아닌 구체적이고 실질적 투쟁으로 전화시킬 것을 논의했다. 이후 서울지역의보노조 상임집행위원회와 중앙운영위원회 회의에서 봄 투쟁의 당위성을 확인하는 한편 조직 가동의 난점 등 노조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대의원대회 개최 짧고 강도 높은 파업투쟁 조합원과의 직접 토론 집행부의 결연한 투쟁 의지 표명 조직의 면밀한 점검 상황의 빠른 전파 등을 추진키로 결정했다.

이러한 결정을 기초로 의보노조는 1991년 파업투쟁을 통해 당장 가시적인 성과물을 확보하는 것보다는 더욱 튼튼하고 방향성 있는 노조를 구축하는 한편 1992년 투쟁의 교두보를 마련한다는 차원에서 구체적인 목표와 계획을 수립했다.

투쟁 방향은 침체된 조직 분위기 활성화로 전투적 전환 조직침탈 기도에 대해 공식적으로 대응 우리의 절실한 문제와 반드시 찾아야 할 권익이 무엇인가 확실하게 부각 서노협의 중추로서 전국 조직의 선봉에서 책임 수행 투쟁 속에서 조합원들이 노동자로서 자신을 자각하여 노동자 의식을 확고히 견지함으로써 조직 내부의 단결력을 강화하고 외부와 연대의 틀을 두텁게해 조직 강화 및 선진 조합원 발굴로 잡았다.

세부 계획으로는 본 협약안과 별도로 조합원의 실질 요구인 인사 공동관리, 1989년 파업기간 임금보전, 월차수당, 별정직의 기능직화 등 7개항 보충안 제시 1991412일 대의원대회에서 쟁의 결의 1991415일부터 속보 수시 발간 1991422일부터 지구별로 조합원·집행부 직접 토론 자리 마련 집행부 임원·부서장들이 각 지부 총회마다 결합해 조합원과 직접 만나 의사 수렴하고 결속 다지기 등을 해나가기로 했다.

 

서노협 선봉에서 파업투쟁 전개

199144일 윤영근 위원장을 비롯한 2기 집행부는 사측이 대화를 거부할 빌미를 없애고 봄 투쟁의 대오를 새롭고 단일하게 꾸려내기 위해 3기 집행부에 전권을 조기 이양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노조는 3기 임원단으로 김한상-이수희-윤재하 후보를 조합원 80%의 지지로 선출하고 파업투쟁 준비에 나섰다. 3기 집행부는 노동운동 탄압분쇄, 의료보장 쟁취, 단체협약 쟁취를 기본방향으로 하고 파업 기간 임금 보전해고 시 원직 복직이라는 두 가지 현안을 투쟁으로 돌파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서울지역의보노조 내부에서는 서노협의 파업 결정에 따르는 것이 자칫 집중적으로 공격받는 결과를 낳지 않겠느냐는 반론도 제기됐다. 그러나 노조는 서노협은 우리가 기대고 의지하는 단체가 아니라 우리가 건설하고 우리가 발전시킬 우리의 단체이며, 오히려 산개되어 있어 결집력이 모자랄 수 있는 지방노조의 모범을 서울지역에서 담당해야 한다는 인식에 따라 서노협의 파업 대오와 행동을 같이 하기로 했다.

의보노조는 1991430일 조합원 임시총회에서 답보상태에 있던 사측과의 단체협약갱신 투쟁에 대한 찬반투표를 통해 조합원 73%의 찬성으로 파업을 결의했다. 파업투쟁의 돌입 시기는 가급적 서노협의 일정과 맞추기로도 결의했다.

노조 지도부는 사측에 지속적으로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노조의 노력에도 끝까지 교섭을 거부한다면 대표 이사와 그 조종자인 보사부를 타격하고 의료보험의 제반 문제점을 부각하면서 더욱 강력한 투쟁을 전개하겠다고 사측에 경고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의보노조는 마침내 199159일 오후 1시를 기해 파업에 돌입했다. 조합원들은 국민대회에 참가한 뒤 대규모 가두 홍보전을 전개했다. 의보노조는 파업에 돌입하면서 초반에 기선을 제압하는 동시에 조합원의 새로운 투쟁경험, 노동자 일반의 연대, 단결의식 제고를 위한 대규모 가두 홍보전을 계획하고 추진했다.

당시 노조가 요구한 보충 단체협약 내용은 1989년 파업기간 중 업무 처리에 대한 수당 1990523일 월차 후 징계·해고 원상회복 19901월 미지급 정근수당 지급 1990419914월 미실시 월차수당 지급 장기근속 수당의 호봉 산정 주택자금 즉시 대출 별정직의 승진 가능한 기능직화 등이다.

 

재파업 후 계속되는 노조탄압

노동조합이 파업에 들어가자 59일 저녁 사측은 해고자의 원직 복직은 아니나, 교체채용 형식으로 복직시키고 계속 나머지 보충협상을 하자”, “파업기간 임금 삭감은 없다”, “대신 파업을 철회해 달라는 내용을 갖고 새로운 제의를 해왔다. 상임집행위원회는 격론을 벌인 끝에 상황이 노동조합에 유리하지 않다는 객관적 조건과 투쟁일변도라는 내외부의 시각을 수용해 일단 모든 협상 제의를 거부하지 말자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렸다. 곧바로 파업 철회가 아니라 잠정복귀의 형식으로 수렴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510일 잠정복귀 지침을 각 지부에 시달했다.

그러나 그날 저녁 협상이 다시 결렬되자 노조는 잠정복귀 방침을 철회하고 재파업을 결의하게 됐다. 이에 따라 511일 한양대 노천극장에서 열린 노동운동탄압 분쇄를 위한 진군대회 및 김정수 장관 방문단 결단식에서 집행부는 파상파업을 강도 높은 전면파업으로 바꾸고, 선언적 투쟁에서 구체적 투쟁으로 전화하겠다고 밝혔다. 513일 의료보험연합회장과의 면담교섭을 추진하려 했으나 무산되자 노조는 연합회관 앞에서 연좌농성을 전개한 뒤 연세대로 이동해 철야농성을 벌였다. 514일에 전조합원이 중구조합에 집결해 책임있는 자가 협상 테이블에 나오지 않는다면 불의의 사고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점을 언론기관과 당사자들에게 공표하고 점거농성투쟁을 시작했다.

교섭권한을 위임받은 윤재하 부위원장과 대표이사 협의회장 송대원의 밤샘 마라톤협상이 15일 오후부터 16일 아침까지 이어졌다. 마침내 516일 아침, 윤재하 부위원장은 교섭 완료를 선언하고 교섭결과를 발표했다. 내용은 새로 제시한 단체협약 본 협약안의 완전 타결 파업기간 중 최대 3일 이하의 무노동무임금 적용 보충협약안은 이후 인식을 같이하고 최대한 성의껏 해결 등이다. 그러나 고소와 징계를 하지 않겠다는 확인을 받지 못해 이후 조합원들의 제기를 받기도 했다.

이후 노조 위원장은 결사대와 각 지부장을 함께 소집, 협상안의 수용 여부를 묻고 반론이 거의 없자 중구조합 전산실 점거 농성 철수를 결정했다. 51724일 가 조인된 단체협약안을 확정하기 위한 협상이 열렸다. 마지막 날 사측이 단체협약안의 주요 조항에 이의를 제기하며 약속을 번복했으나, 지난한 줄다리기 끝에 24일 결국 상호양보 형식으로 타결을 마쳤다.

그러나 사측은 이미 52080여 명을 고소하는 등 대량 징계를 시작했다. 협상이 타결됐지만 사측은 임금과 가족수당을 삭감하는 등 협상안을 무시했다. 게다가 다방, 중국음식점 등에서 기습적으로 인사위원회를 열거나 준비해 놓은 서류에 도장만 찍는 ‘2분 인사위원회등을 통해 각 지부장과 상임집행위원 4명을 직위 해제했다. 이러한 사측의 탄압에 집행부는 모든 탄압에 맞서 지속적으로 투쟁할 것을 결의하고 조직정비에 박차를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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