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물결> 창간호 정경원 (노동자역사 한내) <소리물결>은 서울지하철노조 노래패다. 1987년 8월 노동조합이 결성되고 난 후 문화대동제를 개최하여 프로그램의 하나로 노래극 공연을 했는데 이때 모인 조합원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었다. 88년 2월 출발할 때는 5~6명으로 시작해 평균 15명이 모여 노래 연습을 하고 노조 행사와 연대집회에 참여했다. 특히 1988년은 87년 노동자대투쟁의 열기로 중소영세사업장에 노동조합이 속속 생기고 임금인상 투쟁이 활발하게 진행될 때다. 서울 구로지역이 대표적으로 그 파업 사업장에 달려가 노래로 연대하던 팀이 소리물결이었다. 당시 연대는 품앗이였다. 서울지하철노조가 직제개편 합의 이행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고 민주당사와 평민당사에서 농성을 할 때 지역 노동자들이 연대방문을 한 것은 이런 연대를 바탕에 둔 것이었다. 소리물결의 노동자성, 투쟁성은 연대 속에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뿐만 아니라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민중문화운동연합 임정현을 ‘사부’로 모시고 화음을 연습하는 등 수준을 한 단계 높이기도 했다. 
노래패 소리물결은 자체적으로 회보를 발행했다. 그 창간호가 1991년 5월 16일에 나왔는데 회장 김대훈은 권두사에서 “개인은 역사에서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이땅의 역사를 걸머지고 있는 주체”임을 강조하며 지하철노조의 자주적 소모임으로서 소리물결이 실천에 나서자고 제안했다. 창간호에는 소리물결의 결성된 배경, 과정을 기록하고 90년까지의 활동을 정리해 실었다. 노래패에 편집부, 교육부까지 따로 두어 활동하였음을 소식지를 통해 알 수 있다. <소리물결>은 1992년 11월 28일 세종대 대양홀에서 ‘자갈을 다져 레일을 맞추며’라는 제목으로 공연을 했다. 그동안 각종 집회나 문화제 출연, 노동자가요제 특별 출연, 전국노동자대회 노래문선대 출연 등의 경험과 시간을 쪼개 연습하며 갈고 닦은 실력으로 공연을 올린 것이다. 노래패는 이름을 ‘소리물결’로 정했는데 구성원들은 ‘소주물결’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노래패 구성원이 노조 간부를 맡기도 하면서 실력보다는 운동과 어울림을 위해 가입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 회원은 노래 실력이 가장 낮았을 때가 가장 많은 이들이 노래를 하겠다고 모였던 전성기라고 했다. 근무형태가 다양해 함께 모이기 어려운 조건에도 소리물결은 여전히 지하철노조를 대표하는 소모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