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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 결성
⦁ 시기 : 1987년 11월 27일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사금노련)은 보험, 증권 및 단자회사 등 제2금융권 노동조합의 연맹체로 1987년 11월 27일 결성됐다. 결성 당시 명칭은 ‘한국자유금융노동조합연합’이었다.
사금노련에 참가한 노동조합들은 당시 주로 전국금융노동조합연맹(금융노련)에 가입돼 있었다. 금융노련은 대부분 제1금융권인 은행으로 조직돼 있었는데 규약상 “노조당 조합원수가 400명 이상이어야만 금융노련의 대의원 자격을 가질 수 있다”는 제약 때문에 제2금융권에서는 단 한 명의 대의원도 파견하지 못했다. 1985년 금융노련 대의원대회에서 제2금융권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이 조항의 수정을 제기했지만 부결되자 1986년 대의원대회에서는 연맹의 비민주적 운영에 대해 공개적으로 제기하기도 했다.
사금노련에 참여한 노동조합은 1987년 이전부터 비교적 활발한 연대투쟁을 전개했다. 1984년 5월의 한일투자금융노조 탄압 저지투쟁, 1985년 2월의 현대해상화재보험노조의 부당인사발령 반대투쟁, 그리고 1987년 3월의 범한화재해상보험노조의 해고자 복직투쟁이 그것이다. 특히 범한화재해상보험노조의 해고자복직투쟁에서는 은행을 포함한 각 노조 간부 450여 명이 공동투쟁에 나섬으로써 연대 틀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사금노련 결성의 직접적인 힘이 되었던 것은 한국노총의 ‘4․13헌법개정반대조치 지지성명’에 대한 반박성명을 낸 13개 노조의 결집력에 있었다. 이들 노조를 중심으로 한 5개 산별연맹 산하 37개 단위노조가 한국노총을 포함한 모든 노동조합의 자주화와 민주화를 추진하기 위하여 1987년 7월 12일 ‘노동조합민주화실천위원회’를 결성했다. 그러나 위원회 조직으로는 노동조합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제2금융권 노조를 중심으로 새로운 연맹을 창립하기에 이른 것이다.
결성 당시 45개 노조 약 12,000명의 조합원으로 출범한 사금노련은 이후 합법성쟁취투쟁을 거쳐 1988년 8월 13일 신고증을 교부받을 때 총 55개 노조 2만여 명의 조합원이 가입되었고, 1989년 4월 30일경에는 94개 노조 조합원 30,377명(남성 18,228명, 여성 12,149명)으로 조직이 확대됐다. 이는 증권사 일부노조를 제외하고는 대략 95%가 가입한 것이다.
한편 제2금융권 외에 1988년 8월 16일 한국 IBM노조가 사무직으로서는 최초로 사금노련에 가입했고, 1988년 11월 16일에는 두산산업노조가 연합노련을 탈퇴하고 사금노련에 가입했다. 이를 계기로 노동부에서는 사금노련에 일반사무직 노조의 가입을 제한하는 행정지도지침을 시달했다. 노동부에 의하면 “독립된 사무직 산업이 존재할 수 없으므로 사무직 노조의 경우 생산직 노조가 속한 산별연맹을 상급단체로 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사금노련은 “현행 산별연맹 체제도 분류 자체가 명확한 기준이 없이 중복 혼합된 상태이며 업종구분이 뚜렷한 생산직 노조와는 달리 일반 사무직 노조의 경우 상급단체 선택을 강요해서는 안 되며 자유의사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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