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충주의 잡지 『아우성』 김미화(노동자역사 한내 회원) 사회주의 잡지는 1919년 3.1운동 이후 발행됐다. 전국적인 조선 민중의 저항에 놀란 일본 제국주의는 무단통치를 문화통치로 바꾸고 기만적인 유화정책을 펴나갔다. 또 일제는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일부 허용했다. 신문과 잡지는 발행부터 편집, 배포에 이르기까지 일제 당국의 허가와 검열을 받아야 했다. 따라서 휴간과 속간을 거듭하는 등 발행환경이 매우 좋지 않았다. 발행금지와 원고 압수가 빈번히 발생하는 악조건에서도 발행인은 사회주의 잡지 발간을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그것은 이들 잡지가 사회주의 사상단체나 조선공산당의 기관지로서 발행되어 사회주의 사상과 운동을 확산하는 운동의 방편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당시 사회주의자들 스스로 좌익적 잡지라고 평가한 잡지는 『조선지광』, 『비판』, 『신계단』, 『사상운동』, 『집단』, 『전선』, 『노동운동』, 『이론투쟁』, 『대중』, 『현계단』, 『이러타』 등이 있었다. 이러한 출판물은 사상이 같은 사람들이 토론과 논쟁을 전개하고 이를 통해 식민지 조선의 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방편으로 활용됐다. 이들 잡지는 주로 서울에서 발행하여 전국으로 배포하는 구조였다. 한편 『사상운동』 같은 경우는 일본에서 발행하여 국내로 들여왔다. 지역에서 발행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1933년 1월 24일 <동아일보>에 충주에서 잡지를 창간한다는 기사가 실렸다. 당시 충주읍 본정 271에 사무실을 둔 아성사(亞聲社)는 월간 잡지 『아성』 창간호를 2월에 발행하고 이를 일반 시민들과 같이 읽으며 학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간에 잡지 제목을 『아우성』으로 바꾸고 매달 출간을 목표로 했으나 일본 경찰의 압수와 검열로 번번이 출판하지 못했다. 1933년 일 년 동안 겨우 4호(12월)까지만 발행했고 그다음 호는 이듬해 4월에야 출간됐다. 그나마 4호의 목차가 남아있어 『아우성』의 주요 내용을 가늠해볼 수 있다. 1. 경제의 역사적 변천 2. 사회주의 기원과 발달 3. 노동의 역사적 의의 4. 인플레슌이란 무엇 5. 기타
잡지 『아성』 창간호 기사 <동아일보> 1933년 1월 24일 당시 조선일보 충주지국에서 기자로 활약한 지복문, 변석근을 중심으로 이훈, 박세화, 서상진, 유상렬 등이 아성사에서 활동했다. 20~30대 청년들로 이들은 지역 운동에 관계를 맺고 있었다. 특히 발행인인 지복문은 1938년 경성콤그룹 활동으로 구속된 박진홍, 공성회, 김순진 등의 재판에 2번이나 증인으로 출두하기도 했다. 김삼룡 역시 같은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자료의 한계로 아직 그 실체를 다 밝힐 수는 없지만 1930년대 충주는 작은 소도시임에도 사회주의 잡지가 발간되었다. 잡지를 통해 사회주의를 학습하고 지역에서 선전하는 활동가들이 있었다. 2022년 3월 치러진 20대 대통령선거에 사회주의를 공약으로 내건 후보가 등장했다. ‘빨갱이’라는 이데올로기 공세에 개의치 않고 이념과 지향을 담은 사회주의를 선거기간 내내 선전했다. 사회주의 대중화는 대중에게 사회주의를 선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100여 년 전 사상잡지를 통해 사회주의를 학습하기 시작할 때부터 사회주의를 알리려는 실천과 노력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