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라면 노동자의 기억 네 번째 88서울올림픽과 N라면 노동자 선거 결과는 너무나 싱거웠다. 과장 부장들까지 나서 연일 조회를 하거나 개별면담을 통해 회사에서 싫어하는 사람을 뽑을 경우의 불이익 등에 대해 회유와 협박을 하며 부서 이기주의를 부추겼으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경쟁자였던 최종화와 신성국의 표를 합해도 정동철의 표를 밑돌았던 것이다. 스낵1과 포장실의 송인자 역시 이숙자에 3배에 가까운 표차로 당선되었고, 이른바 민주파가 10명이나 당선되었던 것이다. * 1988년 올림픽이 다가오자 N라면 노동자들은 죽을 지경이었다. 안 그래도 몇 년 전 년 올림픽 지정식품으로 지정된 후 부쩍 바빠져 기진맥진하던 터에 올림픽이 다가오며 더 바쁘니 그야말로 라면에 치어 죽을 지경이었다. 올림픽이 라면올림픽이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올림픽이 원망스럽고 정신없이 먹어대는 소비자들이 미울 지경이었다. 공장안의 창고와 운동장까지 라면공장을 지어 일 년 열두 달 밤낮으로 만들어내고 곳곳에 지은 수천 평 수만 평짜리 창고에 산더미처럼 쌓아도 모자라는 건 마찬가지니 당연했다. 그 난리의 주역이 사발면이었다. 몇 년 전 처음 나왔을 때는 맛도 양도 시원찮아 도무지 팔릴 것 같지 않던 사발면이 이제는 새로 짓는 공장의 대부분이 사발면 공장일 정도였다. 사발면의 종류도 거의 10여 가지 가까이 되는 것 같았다. 그런 만큼 사발면 라인 노동자들의 불만이 제일 많았다. 도대체 누가 이 많은걸 먹는 거냐며 사발면을 가볍게 내던지며 푸념을 하기 까지 하는 것이다. 사발면은 짧은 시간에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간편함만큼이나 들어가는 첨가물이나 작업 공정이 복잡하고 까다로웠다. 팔팔 끓는 물에 10여분 끓여 먹어야 하는 것을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뜨거운 물을 부어 먹게 하자니 그만큼 무리가 따르는 것이다. 밀가루에 갖은 첨가물을 섞어 반죽을 해 라면으로 만들어 스팀에 찌는 것까지는 다른 라면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빈 사발면 용기를 하나씩 뽑아 포장기의 여덟 개 구멍에 투입하는 흡입장치부터 기계실에서 콘베어를 타고 내려온 라면을 정확히 빈 용기에 투하하는 것하며 어느 것 하나 까다롭지 않은 일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건파와 스프를 정확히 용기 안에 투입하는 일, 그리고 용기덮개를 하나씩 물어다 정확히 덮는 일, 그리고 용기가 정확히 히터와 수직상태에서 멈추는 일, 2-3초 컵 포장기가 멈추는 사이 히터가 내려와 정확히 또 적당히 용기덮개를 눌러 붙이는 일, 그리고 히터가 올라오기가 무섭게 컵 포장기가 한 칸 앞으로 이동해 멈추면 사발면을 위로 치켜 올려 콘베어로 밀어 내는 일 등 어느 것 하나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수십 가지의 동작들이 동시 다발로 이뤄지다 보니 어느 동작 하나가 0.1초만 늦거나 빨라도 기계와 라면이 쑥대밭이 되기 십상이었다. 하나씩 투입되고 덮여야 할 용기와 캡이 두세 개씩 내려오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을 기계가 알아서 하는 자동포장기지만 곳곳에 사람이 붙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하루가 멀다 하고 회의였다. 부장들은 이사 회의에, 과장들은 부장회의에 불려 다니기 바빴고, 일선 작업자들은 과장의 비상 소집령에 응하기 바빴다. 거의 대부분이 기계가동률이 낮고 생산성향상이 저조하다는 얘기들이였다. 가장 바쁜 곳이 자동정비반이었다. 안 그래도 정밀한 전자부품들로 구성된 자동포장기다 보니 복잡하고 까다로워 고장이 잦은데다 생산과 여반장들이 야금야금 기계속도를 올리니 더더욱 고장이 잦은 것이다. 운동장은 물론 창고까지 헐어 사발면 라인을 깔아 밤낮으로 뽑아내도 모자라니 이렇게 조별로 생산경쟁이 벌어졌다. * “집합하라는 말이 말 같잖아? 엉? 말 같지 않냐고?” 과장은 필요이상으로 흥분을 한 상태였다. 얼굴을 붉힌 채 목덜미의 힘줄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릴 정도로 소리를 지르는 걸로 보아 오늘도 회의 분위기가 심상찮은 눈치였다. 전혀 예상 못한 일은 아니지만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소나기를 피하는 기분으로 흘끔흘끔 눈치를 보며 잠잠히 있자 과장이 재차 물었다. “왜 위에서 회의만 하면 자동정비반, 자동정비반이지? 왜 자동정비반이 동네북이 돼야 하냐고?” 이 얘기 역시 사무실 회의만 다녀오면 듣는 얘기였다. 가쁜 숨을 내쉬며 좌중을 쏘아본 과장이 1급 블랙리스트인 정동철에게 시선을 박은 채 물었다. “스낵1과는 왜 항상 말썽인가? 왜 허구한 날 반장들과 티격태격인가?” 처음에는 이렇게 조금은 엉뚱한 문제로 시작해 온갖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들춰내는 게 과장의 수법이었다. 잘한 일은 하나도 없이 온통 잘못한 일들뿐이었다. 아니 터무니없는 트집이자 악선동이었다. 그러니 얘기를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맥이 빠졌던 것이다. 하나같이 눈만 껌벅거리고 있자 과장이 재차 다그쳤다. “왜 허구한 날 티격태격이냐고?” 생산과 반장들과 자동정비반원들의 불편한 관계는 2년 전 1년에 2번씩 생산성향상대회를 하며 현장게시판에 조별 생산량이 게시된 후부터였다. 2년 전, 라면과 스낵을 많이 만든 부서와 조에 포상을 하는 대회였다. 포상이라야 몇 십 명 조원들이 짜장면 집에서 회식 한번 하면 맞는 액수였다. 그럼에도 고과점수에 직결되는 부서장들의 관심은 지대했다. 그러다보니 하급 관리자들도 덩달아 눈에 불을 켰고, 작업자들도 출근하기가 무섭게 게시판부터 들렀다. 어제의 생산량과 함께 상대 조보다 많았나 적었나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다보니 반장들은 출근하면 기계속도를 올리고 퇴근할 때는 내리는 게 일이었다. 주야간 2개조가 하루 수만 개의 라면과 스낵을 만드니 똑같을 수 없으련만, 한 개조가 많으면 다른 조는 적게 마련이건만 이유 불문하고 항상 많아야 하는 것이다. 어제보다 오늘이 많아야 하고, 오늘보다 내일이 많아야 하는 것이다. 죽어나는 것은 작업자들인 여성 노동자들과 기계를 고치는 정비사들이었다. 분당 1-2개씩만 기계속도를 올려도 몸이 먼저 알아 손목과 팔뚝, 어깻죽지에 허리까지 삐꺼덕거렸다. 그러다보니 현장에는 아가씨들이 붙인 파스 냄새가 진동을 했다. 기계 역시 리듬을 잃어 불량품을 쏟아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작업자들을 초죽음으로 몰고 갔던 것이다. 자동포장기 운전자들은 손목은 물론 팔뚝, 어깨, 허리까지 파스로 도배를 하고 침을 맞아가며 일을 했다. 기계가 당장 어디가 부러지는 것도 아니고 작업자들 역시 힘들어 쓰러지는 사람이 없이 시키는 대로 하니 당연한 듯 그랬다. 그래서 자동정비반원들이 모여 모든 포장기를 매뉴얼대로 규정 속도로 맞춘 후 속도 조절 장치를 잠그기로 한 터였다. 대부분의 기계가 그렇듯 포장기도 규정 속도만 지키면 고장도 상당부분 줄일 수 있고 수명도 늘릴 수 있는 것이다. “스낵1과는 왜 생산성향상이 저조한가? 유독 기계 가동률이 떨어지는 이유가 뭔가?” 정동철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과장이 새삼스레 물으니 어이가 없는 표정이었다. 최근 여러 해 동안 야금야금 기계들이 늘어났음에도 정비사들은 그대로이고, 고장 난 기계들이 두세대씩 기다리고 서 있는 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스낵과와 공무과에서 노무과에 인원충원을 건의했지만 1년째 감감무소식이었다. 게다가 원가절감이란 이름으로 스낵을 박스에 담는 박스입을 줄여 운전자가 자동포장기도 보고 스낵도 박스에 담느랴 정신이 없었다. 그러니 기계가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었다. 그것도 모자라 생산성향상이란 미명하에 생산경쟁이 붙어 주야간 반장들이 서로 기계속도를 올리고 내려 정비사들과 잦은 언쟁을 하는 것도 안양공장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전혀 모르는 듯 시치미를 떼는 것이다. “기계 고장이 많이 나니까 그렇죠.” 정동철이 퉁명스레 말했다. 일부러 기계고장을 방치한 것도 아니고 둘이서 죽자 사자 고쳐도 손이 모자라니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근래 들어 부쩍 기계 고장이 많은 이유가 뭐냐고?” “기계 속도를 너무 많이 올리니까 그렇죠. 박스입도 없애고 운전자에게 기계운전과 박스입 두 가지 일을 시키니 기계가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죠. 생산경쟁이 붙어 여반장들이 서로 기계속도를 올리니까 그렇죠.” 정동철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올라갔다. “기계속도를 올려서 그렇다고? 사전 점검이나 사전정비를 철저히 하는데 기계속도 때문에 그렇다고?” “사전 점검이나 정비도 제대로 못하죠. 일요일도 없이 1년 12달 잡아 돌리니 사전 점검과 정비를 할 시간이 없죠.” “아가씨들과 쓰잘데기 없는 얘기를 할 시간은 있고? 남들은 정신없이 일하는 시간에 멀거니 책상에 앉아 있을 시간은 있고? 밖에서 담배나 피우며 잡담이나 할 시간은 있고?” 잠시 뜸을 들인 정과장이 이죽거리며 작업일지를 펼쳤다. “하루 8시간 근무 중 실제 정비시간은 절반도 안 돼. 생산과 작업일지와 기계가동시간이 너무 차이가 나. 그리고 고장 난 부위가 계속 고장이 나. 이거 문제 있는 거 아냐?” “우리는 실제 정비한 시간만 쓰지만 생산과에선 기계가 고장 난 시간부터 자기들이 기계를 돌리기 시작한 시간까지를 고장시간으로 잡으니 당연히 차이가 나죠. 정비를 마쳐도 금방 돌리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예요. 그새 작업자들을 다른 곳으로 돌려 작업을 시키니 그곳 일이 마무리돼야 하니까요. 그리고 자주 밖에 나와 바람을 쐬는 건 스낵분진으로 목이 칼칼하고 눈도 따가워 그러는 거예요. 기계소리에 머리가 띵해 그러는 거예요.” 16대의 기계들이 하나하나 포장할 때마다 불어 대는 바람 탓으로 스낵포장실은 분진의 바다였다. 마스크를 쓴 운전자들의 눈썹에 스낵분진이 뽀얗게 쌓일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16대의 포장기들이 천장이 무너져라, 떵이 꺼져라 우그랑탕탕거리며 돌아가니 견학을 오는 어린이들이 현장을 들어서며 입부터 손으로 막을 지경이었던 것이다. 목구멍을 타고 뜨거운 뭔가가 솟구쳐 올랐으나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내가 말했다. “기계를 고칠 때도, 고치고 나서도 시간부터 적지 않아요. 그럴 수도 없어요. 작업일지도 그때그때 쓰지 않고 퇴근직전 써요. 그때 정비시간도 대략 적어요. 그리고 기계를 고치려면 부품창고에 가서 신청서를 쓰고 타야하고. 사람이 없으면 기다려야 해요. 기계를 뜯어놓고 보면 딴 부품도 교환해야 할 때가 있어요. 그럼 다시 부품창고를 가야 해요. 또 공구도 챙겨야하고, 일하다보면 다른 공구가 필요할 때도 있어 여기저기 구하러 다니기도 해요. 그리고 기계를 고치고 나서도 1-20분 가동상태를 지켜보기도 해요. 어느 땐 그 이상을 확인할 때도 있어요. 그런 걸 다 빼고 실제 정비한 시간만 잡으니 그런 거예요. 잘 아시는 일이잖아요?” 정과장은 끼어드는 내가 의외라는 듯 멀뚱히 바라봤다. 나는 잠시 정과장을 훔쳐본 후 덧붙였다. “기계정비 시간이 많으면 회사가 망해요. 정비사가 편해야 기계가동률도 오르고 생산성향상도 오르는 거예요. 그리고 적당한 휴식과 사람들과의 대화도 필요하고요. 현장 구석에 정비사 대기석을 만들어 놓은 것도 자꾸 현장을 비운다고 해서 다른데 가서 쉬지 말고 현장에서 쉬며 대기하라고 만들어 놓은 거잖아요? 그런데 책상에 앉아있는 것도 안 된다면 잘 돌아가는 기계도 세워놓고 점검하고,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세워놓고 고치라는 얘기나 마찬가지잖아요? 안 그래도 가동상태가 이상해 가래로 막을 것 호미로 막으려고 기계를 잠깐 세워 점검을 해도 잘 돌아가는 기계 세워놓고 만지작거린다고, 생산성향상을 방해한다고 보고를 하는데 그럴 수는 없는 거예요. 그리고 기계운전자와 정비사들이 자주 얘기를 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예요. 아가씨들과 얘기하는 게 꼭 노조민주화 운동에 대한 얘기만 하는 게 아녜요. 다른 얘기들이 대부분이에요. 기계에 대한 얘기도 많이 해요.” 스낵과와 라면과 등 생산부서에서 생산목표량 달성 미달의 원인으로 꼽는 이유 중 하나가 기계가동률이 낮다는 얘기였다. 기계고장이 많아 생산을 못했다는 얘기였다. 심지어는 잘 돌아가는 기계를 세워놓고 만지작거리며 생산성향상을 방해한다는 말까지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비사들이 자리를 비우는 시간이 많고 아가씨들과 얘기를 하며 작업분위기를 흐린다는 애기까지 하는 것이다. 적정속도를 강조하며 반장들의 경쟁적인 기계속도 조작을 막는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심지어는 정동철과 내가 현장을 비운 시간을 체크하기도 했던 것이다. 이걸 퇴직하는 여반장이 귀띔으로 알려줬다. 저들은 이런 방식으로 노동자들을 분열과 반목으로 몰아넣었다. 대의원 선거 때마다 과장이 노골적으로 개입해 민주후보의 당선을 막는 일에 앞장서니 당연한 일이었다. 몇몇이 얘기를 하다가도 반대파 부서원이 오면 시치미를 떼고 딴 얘기를 할 지경이었다. 그러니 누가 이사를 하면 근무조원 모두가 하나같이 가 돕고, 끝난 후 고스톱을 치며 즐기던 분위기가 애달픈 옛 추억이 된 것이다. 오후 2시 퇴근하는 오전조 때면 이따금 돌아가며 집을 방문하거나, 먹고 마실 것을 싸들고 안양유원지로 가 고스톱을 치며 즐기던 일들을 잊어버린 것도 마찬가지였다. 주말이면 몇몇이 1박 2일 등산이나 낚시를 다니고, 추렴을 해 대야미에 사는 부서원 집에서 돼지를 잡아 실컷 먹고 마시고 나눠가던 일들도 마찬가지였다. 노동조합의 민주적 공개적 운영을 요구한 죄로 하나로 묶어 단합을 해도 모자랄 부서원들을 갈가리 찢어 불신을 조장하는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