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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C메타를 만나다(2)_소요 (108호)
첨부파일 -- 작성일 2018-04-17 조회 621
 

MC메타를 만나다 _ 두 번째

 

  소요(노동자역사 한내 회원)

 

MC메타의 대학시절?

 

당시에 저희 과에 여학생이 세명 있었어요. 그 중에 한명이랑 좀 친했는데. 그 친구 성격이 참 털털했어요. 그런데 이 친구가 매일 집회에 나갔어요. 입학식하고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계속 학생들이 빠져서 데모를 하고 있으니깐 공강이 나는거에요. 그래서 저는 좋았죠. 그냥 당구치러 가고 술마시러 가고. (웃음) . 좋네. 대학생활이 이런건가보다 하고 놀고 있는데.

어느날. 캠퍼스에 모여서 집회를 하고 있는데. 저희는 슬쩍 빠져서 돌아가는데. 그 학생이 저희를 불렀어요. ! 이러면서 어디가냐고. 뭐지? 하면서 그냥 가는데 저희한테 그러는거예요. 너네 되게 비겁하다고. 너네 되게 비겁한 놈들이라고. . 같은 과 동기한테 그런 말들으면. 그러셈! 하고 갈 수도 있는데 계속 남았어요 그게. 생각이. 아 우리가 비겁한가. 우리는 잘못한 것도 없고. 이것도 우리의 선택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고.

근데 그 학생이 너희 그냥 비겁해 이정도가 아니라 되게 화를 냈어요. 그 모습이 계속 기억나는거에요. 그래서 친구랑 같이 술 마시면서. 야 우리가 비겁한거야? (웃음) 비겁한가 보지. 우리 맨날 공강이라고 나가서 술 먹고 노니깐. 그래서 우리 한번 나가서 뭐라고 얘기하는지 들어보자 이렇게 된거에요. 그래서 집회에 가봤어요. 거기 앉아있는데 얘기를 듣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는거예요. 뭐 귀에 들어오는 거는 주한미군 철수얘기가 나오고. 근데 그때 딱 뭐 한개 걸렸던 게. 학교 재단의 문제점을 얘기하더라구요. 등록금이 다 재단 살찌우는 데 들어가고 있으며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는데 갑자기 울컥 하는거에요. 그래서 딱 그런 부분들이 건드려지면서. 그때 같이 갔던 친구도 아 이거는 우리도 얘기를 해야겠다. 잘못된 거는 우리가 알았으니깐 우리도 얘기를 해야할 것 같아. 그래서 그날 바로 가투를 나가요 (웃음) 그래서 다양한 데모현장에서의 모습들을 보긴 했었죠.

 

그러면서 의식도 많이 변화하지 않았나요?

 

의식이라고 말할 것 까진 아니지만 그런 생각은 있었죠. 고등학생 때와는 확실히 달라졌고. 군대를 다녀와서 94년도인가에는 복학을 하고 그러면서 저는 그런 경험과 인식들이 랩음악을 더 강렬하고 매력적으로 느끼게 한 것 같아요. 비속어나 욕설을 하면서 자기들이 느끼는 것을 강하게 어필하는 모습들이 잘 매칭이 된 것 같더라구요.

 

학교에서의 경험이 큰 영향이 있었던 거네요?

 

그렇죠. 돌이켜보니깐 그렇더라구요. 당시에는 전혀 감지를 못했어요.

 

그 다음에는 어떻게?

 

제가 삼남중에 맏이거든요. 아버지 입장에서는 빨리 사회로 나가라 이건데. 문득 제가 그렇게 되면 정말 그렇게만 살거 같더라구요. 뭔가 다른... 누구나 그런 생각하잖아요. 내 인생에 뭔가 재밌는 일 하나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있었는데. 그 상황에서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거는 진학 밖에 없었어요. 같은 학교 친구가 다른 학교로 편입을 한거죠. 그래서 아버지께 말씀을 드렸고. 허락을 받은거죠. 그리고 홍익대에 합격을 했어요. 그래서 96년에 1216일날 서울에 와서 동교동에 있는 하숙방을 구하고 그리고 이제 학교 생활을 시작을 했죠. 그러면서 이제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말씀드린 것처럼 서울에 오니까 제 생각의 변화가 많이 생겼어요. 특히 대구는 막 성향도 그렇고 뭔가 갇혀있어요. 서울에는 뭔가 계속 움직이고 에너지가 좋더라구요. 특히 홍대 앞에 그맘때쯤에 96년부터 DRUG 같은 데서 크라잉넛 같은 펑크밴드들이 길거리 나와서 연주하고 예술가들도 막 돌아다니고. 대구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그런 사람들을 보니까 갑자기 제 생각의 폭이 확 열렸죠. 그러면서 그 상황도 너무 재밌었고. 제가 듣고 싶은 음악도 쉽게 쉽게 구할 수 있고. 이런 것들이 저한테 새로운 뭔가를 열게 했죠. 그러면서 적극적으로 피시통신에서 단순히 정보만 주고받던 사람들이랑 오프라인에서 만나고 만나서 서로 주고받는 과정에서 적극적인 어떤 음악을 만드는 그런 경험들을 하기 시작하죠. 그러면서 그 시기 때 저는 래퍼로서 바뀌어가기 시작한거죠.

 

대학원에 가신 게 엄청 큰 계기인거네요?

 

그렇죠 대학원 진학. 그게 없었으면. 저는 아마 음악을 안했을 겁니다.

 

그러면서 바로 시작하셨어요?

 

. 그러면서 동호회 활동을 굉장히 열심히 했어요. 그게 969798년까지 3년 가까이. 너무 재밌었어요 음악을 하는 것 자체가. 힘들지만 랩하고 무대 올라가고 제 안에 있는 생각들을 가감없이 풀어내고. 이런 것들이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희열감이 있었죠. 그런 활동을 계속 하던 과정 중에 알려지고 나름 언더그라운드적인 활동이 시작되고. 마스터플랜이 981월부터 영업을 시작하게 된거죠. 그러면서 록기반이었던 홍대 음악시장에 새로운 것을 해보자 이렇게 된거고. 가리온이 982월에 데뷔를 하게 되었어요.

 

그러면 이제 밥벌이에 대한 판단을 확실히 해야하는 시기가 되지 않았나요? (웃음)

 

. 제가 그해 여름에 졸업을 하게 되는데 마침 IMF가 터져서 대학원 동기나 선배들도 다 튕겨져 나오는 거예요. 다 서른도 안됐는데 명퇴되고 그래서. 그렇다고 저는 음악으로 잘 먹고 잘 살거야 이런 생각으로 이쪽에 뛰어든 건 아니거든요. 정확하게 저는 음악을 했던 게 저한테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취미였어요. 왜냐면 98년 가리온 활동을 할 때도 저는 어떻게는 먹고사는 방법을 마련해야하잖아요. 저는 그래서 별일 다했어요. 지금은 쇼미더머니다 아니면 여러 다양한 대중적인 인지도나 선호도가 많이 높아져서 뭐 인기있는 스타급 래퍼들은 어마어마한 돈을 벌고 행사도 엄청 뛰잖아요. 근데 당시에 랩퍼들은. 특히, 비주류 음악을 하는 랩퍼들은 대중의 관심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어요. 그러니까 저희도 알죠. 이걸로는 돈을 벌 수 없고 그냥.

근데 동시에 저희가 싫어했던 것은 이거를 어떤 수단으로 쓰는. 그러니까 랩만 한다고 힙합은 아니거든요. 어쨌든 당시에 저희 기준에서는 랩퍼라고 해서 다같은 랩퍼는 아니다. 그리고 랩퍼라 하더라도 문화나 장르음악에 대한 애정과 존중이 있어야. 정확한 장르음악의 특성과 그게 어떤 식으로 구현되는지에 대해 예술적으로 구축을 해나가는 것이 당연한 건데. 당시에 저희가 싫어했던 랩퍼들은 그런거를 깡그리 무시해요. 뭐 그냥 외국 랩을 그대로 배껴온다던가. 또 전혀 랩퍼로서의 예술적 자존심이나 자존감 없이.

 

그게 힙합의 본질에 대한 감각 같은 거죠?

 

. 그렇죠. 기술적인 부분조차도 그랬어요. 한국사람인데 한국어랩에 대한 고민과 그런 것들을 발전시킨다던가. 사실 예술가들이 해야하는 게 기본적으로 그런 거라고 생각하는데. 뮤지션으로서. 근데 그런 게 아예 없이 하는 랩퍼들이 가요계에선 대다수였죠. 그래서 저희는 거기에 대해서 철저히 선을 긋고 거부했기 때문에. 아 이걸로 벌어먹고 살 수 있는 생각 자체를 버렸죠. 그래서 그냥 이 음악을 유지하기 위해서. 뭐 진짜 개처럼 벌어서 내 랩하자 이 느낌이었어요. (웃음)

 

. 저는 그게 그런 것으로 이해되는데 게토(Ghetto)’라고 부르는...저는 힙합의 정신이 뭘까 궁금해 하다가, 직관적으로 힙합의 정신이 어떤 해방정신과 맥락상 비슷하다고 느꼈거든요? ‘혁명, 해방에 대한 다양한 내용들이 토론되는 공간이 있듯이. 힙합정신에 대해서 뮤지션들끼리 토론도 하고 그러는 건가요?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그런 워딩으로 얘기하지는 않는데요. 비슷한 논지의 얘기들을 많이 나누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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