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을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려고 하는 문재인 정부 양규헌(노동자역사 한내 대표)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월 30일 경기도 화성에 자리한 삼성전자에서 ‘시스템 반도체 비전 선포식’에 참석했다. 이 행사는 삼성전자가 아닌 청와대가 주관한 행사였다는데 문제가 있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정부 행사를 하필 삼성전자에서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이날 삼성 이재용부회장이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에 133조 원 투자 및 1만 5천 명 채용계획을 발표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25조의 세금을 깎아주겠다고 막대한 선물보따리를 풀어 화답했다. 투자에 대한 보답인지, 수 만 명을 고용하겠다는 발표에 고마움의 표시인지 아니면 경제회복 가능성에 고무된 것인지 그 이유를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삼성은 작년 8월에도 향후 3년간 180조 투자와 4만개 일자리를 약속했으나 실제로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고 오히려 줄었다. 재벌은 정권 교체기나 선거기간, 또 위기의식을 느낄 때마다 투자와 고용을 내세우는 행태를 반복해왔는데도 여전히 재벌에게 기대를 걸고 매달리는 꼴이 이해 가지 않는다. 더군다나 수백 조의 사내유보금을 보유하고 있는 삼성재벌에게 25조라는 어마어마한 선물보따리는 재벌특혜가 분명하다. 재벌 바짓가랑이 잡고 매달리는 문재인 정부 대통령 선거 때부터 목소리 높였던 혁신과 소득주도 성장은 이미 철지난 이벤트가 되어 버렸다. 소득주도 성장은 양극화 해소가 기본인데 양극화가 해소되려면 최저임금이 인상되고 일자리가 보장되며 실업보험이 확대되어야 한다. 그래야 소비가 늘어나고 내수가 살아나면서 성장이 가능한데 지금은 완전 역주행 액셀을 밟고 있는 꼴이다. 1만원을 약속했던 최저임금 인상은 보수 언론과 자본의 눈치만 보다가 전면적인 재검 후, 최근엔 동결을 운운하고 있다. 탄력근로제를 포함한 노동시간 단축은 근로조건 개선이 아니라 개악으로 치닫고 있으며, 공무원, 교사를 포함한 노동자들의 노조 할 권리는 찾아볼 수가 없다. 노동관련 공약을 전면 파기한 상태에서 소득주도성장은 그 근거를 상실했다. 소득주도 성장이 되려면 ‘노동주도’가 되어야 하고 노동자, 서민의 소득이 늘어야만 가능하다. 재벌의 바짓가랑이만 붙잡고 매달리는 것은 “혁신성장과 경제 활력 제고”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면서 박근혜·이명박 정부 정책으로 회귀하는 것이며 과거 박정희 정권의 프레임을 답습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세월이 흘러도 재벌존중은 계속된다 문재인 정부는 혁신성장이라는 화두로 출발했다. 혁신이란 ‘과거의 잘못된 관행과 조직이나 방법을 완전히 바꾸어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다. 혁신할 의지가 있다면 혁신을 실행할 사람과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 경제, 노동 분야에서 정책단위는 관료 일색이다. 이전 정권 기획재정부에서 일하던 사람들의 정책이 어떤 혁신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최근 노동정책이 이전 정권보다 나아진 게 없고 오히려 노동자들의 무권리를 강요하고 있다. 박근혜의 창조경제, 이명박의 SOC와 규제개혁, 더 나아가 이승만의 재건과 박정희의 쇄신, 유신과 현상에 차이는 있으나 노동자, 민중을 현혹한다는 본질은 다르지 않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잘못된 관행을 혁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에 걸맞은 인적 배치와 그에 따른 경제, 노동정책이 실행될 수 있는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 2년을 경과한 현시점의 진단은 노동존중에 의한 소득주도가 아니라 과거 역사를 답습하는 재벌존중으로 유턴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잘못된 관행을 숨기기 위해 보여주기식 이벤트로 노동자 민중의 시야를 흐리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안하는 것을 하는 것처럼, 성과가 없는 것을 성과가 있는 것처럼 선전을 하지만 실제로는 혁신을 안 하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재벌개혁을 강조했던 문재인 정부도, 재벌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재벌들은 자신들이 불리한 처지에 놓이면 투자, 고용이라는 카드로 허위배팅을 반복하며, 실천보다는 사내유보금만 쌓아놨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들이 훤히 보이는데 재벌의 투자발표에 관심과 애정을 보이는 것은 순전히 정치적이라는 판단이다. 그게 아니라면, 삼성이 무너지면 경제에 치명타를 맞는다는 우려 때문일지도 모른다. 경제지표의 비관적 전망은 문재인 정부를 더욱 조급하게 하는 요인일 수는 있지만, 국정농단과 분식회계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용에게 아량을 베풀어 법원에 시그널을 보내는 것은 나가도 너무 나갔다. 문재인 정부가 이전 정부와 다른 모습을 보이려면, 혁신성장 시늉이라도 하려면, 재벌과 삼성이 몰락해도 살아갈 수 있는 구조를 정착시키는 게 중요하다. 재벌특혜 뒤에는 반노동자성이 담겨 있다 중장기적으로 한국경제가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서는 사회시스템과 경제의 체질을 바꿔나가야 한다. 재벌중심의 경제정책은 박정희 정부의 철지난 정책이고 장치산업, 가격경쟁 위주의 경쟁력 제고는 낡아빠진 레코드판이다. 지금은 가격경쟁의 시대가 아니라 품질의 고도화와 새로운 장치를 개발해야 하는 시기이다. 삼성전자만 보더라도 메모리 업체의 경쟁력은 한계에 도달하여 수요도 급감하고 있다. 삼성화성공장에서 홍보했던 비메모리 업체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삼성에게 수 십 조원의 세금혜택을 줄 것이 아니라 중소기업에 주어야 마땅하다. 25조 혜택은 비메모리 사업에 기술적으로 연관된 중소기업들의 연구개발비로 지원하고 재벌에게는 오히려 법인세를 인상과 사내유보금을 사회화해야 한다. 이것이 신성장동력에 가닥을 잡아나가는 것이다. 역대 정부의 노동경제정책은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것 보다 단기적이며 가시적인 효과만 노려 왔고 그 본질은 노동자 민중의 삶보다 정치적 효과에 치중되었기 때문에 약속이라는 공수표를 남발해 왔다. 문재인 정부 2년을 경과하면서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가 지난 정부들의 악습을 되풀이 한다는 것이다. 대기업과 재벌에 의존하는 형태로 기획하는 정책의 운영기조가 관료들이 주도하는 상황에서 자본의 이윤을 위해서는 노동자 기본 권리가 갈수록 악화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재벌개혁과 소득주도성장을 외치며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을 빼앗아 재벌에게 나눠주는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할까. 이 관점은 노동자 계급이 향후 문재인 정부에게 갖는 허접한 기대를 버리고 계급적으로 대응해야 할 투쟁기조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