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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살아온 길
..... 양규헌의 ‘내가 살아온 길’ ㉙ 종배야, 정말 미안했다
첨부파일 -- 작성일 2023-02-21 조회 30
 

동지 이상이었던 그가 죽었다

1999827, 아닌 밤중의 홍두깨라더니 날벼락 같은 비보가 날아들었다. 김종배 동지가 죽었다고 연락이 왔다. 믿기지 않아 몇 번을 반문했지만 답은 바뀌지 않았다. 머릿속은 하얗게 되었고 차 안에서는 둥그런 눈알에 활짝 웃는 김종배 모습만 스쳐 지나갈 뿐, 아무 생각이 없었다.

원주까지 어떻게 달려갔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병원에 도착하니 사람들은 거의 없는데 저쪽에서 이황미 동지가 울고 있다. 이황미 동지와 나는 인사를 나눌 기력도 없었다. 왜 그렇게 죽었는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중요한 것은 죽었다는 사실이지만, 믿어지지 않았다. 금세 옆에서 위원장님!” 하고 나타날 것만 같이 환영(幻影)이 어른거렸다.

민주노총과 금속연맹이 출범할 때, 전노협 사무총국 동지들은 어느 조직으로 가는지가 중요한 관심사였다. 앞에 설명했듯이 일자리를 잃은 동지들도 여럿 있었다. 그때 김종배 동지는 금속연맹이나 민주노총이 아닌 전노협 청산위원회에서 진행할 전노협 백서발간사업을 선택했다.

김종배 동지가 백서발간이 좋아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나도 잘 안다. 그 이유는 우선 백서를 책임질 사람이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백서발간위원회 위원장은 나 양규헌인데, 나는 구속된 상태였으니 백서팀을 조직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결국 김종배 동지는 전노협에서 김상복이 그랬던 것처럼 내키지 않았지만 자청해서 자신에게 책임을 부여하고 백서발간팀을 맡았으리라.

여기서 김상복처럼(‘정책이 아닌 총무자청)이라고 한 것은 인사배치와 역할분담에서 나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동지애에서 비롯된 행동이라는 점이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동지들(김상복·김종배)은 한 번도 그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종배야, 정말 미안했다

백서를 마무리했으면 내가 나서서 이후 진로에 관한 판단도 같이 했어야 하는데, 김종배 동지는 혼자 공공연맹을 찾아갔다. 그리고 교육국에 몸담고 있던 중, 강릉병원에 계신 아버지를 간호하느라 밤잠 못 자고 그다음 날 회의에 참석하러 서둘러 서울로 오다가 고속도로에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로 가고 말았다.

김종배 동지는 늘 나의 처지를 앞서 생각하고 배려했으나 나는 김종배 동지에게 해 준 것이 단 하나도 없다. 그래서 그가 죽은 지 2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가슴 아프고 먹먹하다. 나도 나이가 있으니 멀지 않아 그를 만날지 모르지만 혹 만난다면 정말 미안했다는 말은 해 주고 싶다.

공공연맹 동지들이 병원에 도착하면서 시신을 서울로 옮기기로 했다. 하룻밤을 새운 뒤 서울에서 장례를 치르기 위한 준비를 했다. 그다음 날도 운구 차량과 영정사진 준비 등 밤을 새우는 동지들이 많았다. 새벽이 되어 대부분이 잠든 시간에 나는 김종배 동지와 소주잔을 주고받으며 조용한 작별을 나누었다. 동지와 함께했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종배야~” 부르며 긴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취해있었다.

모란공원에서 하관식을 하며 김종배 동지와 가슴 아픈 이별의 시간을 숨 막히게 보냈다. 하관식을 마치고 종배 바로 위 누나가 잠깐 보자고 하더니 양위원장님, 우리 종배 잊으시면 안 돼요. 종배는 늘 양 위원장 얘기하는 걸 보람으로 생각하며 살았어요. 아마 부부 사이어도 그렇게 정겹게 생각하진 않을 것 같아요.” 하시며 펑펑 우신다. 나는 할 말을 잃었고 무슨 위로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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