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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노협 최동식 의장 구속과 인천지역 총파업 시기 : 1989년 11월 11일 ~ 11월 17일 1988년 인천지역노동조합협의회(인노협) 준비위원회 황재철 의장의 구속과 그의 석방 투쟁을 경험한 인천지역 노동자들에게 1989년 11월 11일 인노협 최동식 의장의 구속은 투쟁의 불길에 기름을 붓는 꼴이었다. 최 의장은 11일 아침 7시경 전국노동자대회 전야제가 열리는 동국대에 들어가려다 70여 명의 노동자와 함께 연행됐다. 다른 사람은 모두 석방됐으나 최 의장은 11월 12일 2시경 부평경찰서로 이송됐고, 이때부터 인천지역 노동자들의 투쟁이 불붙기 시작했다. 소식을 접한 인노협은 즉각 비상운영위원회를 열어 최 의장의 석방을 요구하는 한편 석방되지 않으면 11월 16일 인천지역 총파업을 벌이고 11월 17일 전국 동시 총회투쟁에 적극 참가하기로 결의했다.
1989년 11월 15일 저녁 인노협 조합원들은 “최동식 의장 구출”을 외치며 서운동, 작전동, 효성동 일대에서 격렬한 가두투쟁을 전개했고, 총회준비를 위해 노조별 상집회의가 밤늦게 열리고 있었음에도 20여 명의 위원장이 철야농성에 참여해 총파업을 준비했다.
그리하여 11월 16일, 인노협 소속 45개 노조 5,0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최 의장 구출을 위한 총파업투쟁에 돌입했다. 전투경찰 1,500여 명이 투입돼 130여 명의 노동자를 연행했음에도 다우정밀 앞에 모인 1,200여 명은 시종일관 열기 있는 투쟁을 전개했다. 11월 17일에는 오후 3시부터 47개 노조가 총회 투쟁을 전개한 후 인하대학교에 1,000여 명이 모여 집회 후 투쟁을 전개했다.
총파업투쟁 중에 드러난 안기부 프락치공작
인노협 산하 노조들이 최 의장 구속에 항의하여 총파업을 전개하던 중 인노협과 인천지역 민주노조운동을 파괴하기 위한 경찰, 노동청, 치안본부의 프락치공작이 변태옥(27, 대흥기계노조 전 파업대장, 인노협 제4지구 대장)의 양심선언으로 낱낱이 드러났다. 변태옥이 평민당사에서 “대흥기계, 인노협 조합원, 그리고 1천만 노동자들에게 사죄한다”며 양심선언을 한 것이다. 변 씨는 양심선언문에서 “현재 구속 수감중인 위원장을 ‘국가보안법’으로 구속하게 하였고, 노조활동 일일기록이 작성되어 노조에서 발생되는 사항을 손바닥 안에 있는 것처럼 명확히 보고하게 해 노조 와해공작을 지원했고, 경찰관계에 있어서는 협우실업노조 사무장, 교육부장, 문화부장 등 연대활동에 앞장선 노조간부의 구속을 도왔고 인노협의 모든 집회활동과 인노협 조직붕괴를 도왔습니다. 안기부를 통해서는 전 홍상철 대흥기계 위원장이며 인노협 상황실장 구속을 구체적으로 도왔고 그로 인해 현재 구속수감 중이며 노동부를 통해서는 인노협간사들의 활동보고 및 타사업장 방문후 노조핵심임원을 포섭, 파업타결을 촉구하고, 협우실업 핵심노조임원을 구속시키는 증거를 진술하여 와해작전을 시행하였습니다”라고 고백했다.
대흥기계노조는 곧바로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단 구성과 관련자 처벌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자체조사에 착수했다. 21일에는 부평·부천공장의 전 조합원 600여 명이 참여해 총회를 열어 작업을 전면 중단했으며, 22일에는 서울행을 저지하는 부평경찰서의 방해에도 평민당으로 찾아가 변태옥의 생생한 증언을 들었다. 이 자리에서 변태옥은 삭발하고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이어 23일에는 회사측 관련자를 소환해 프락치공작에 대한 청문회를 개최했다. 인노협에서도 규탄성명을 발표하고, 20일 비상운영위원회를 열어 21일부터 24일까지 ‘최동식 의장 구속과 프락치공작을 규탄하는 지구별 간부철야 농성’을 전개했다. 전국회의 단병호 중앙집행위원장도 평민당 김대중 총재를 만나 진상조사단 구성을 강력히 요구했고, 11월 30일 2명의 국회의원이 인천시청 시장실에서 관련자를 소환해 조사활동을 벌였다. 회사와 부평경찰서, 인천지방노동청은 물론이고 치안본부 대공요원까지 연루된 변태옥 프락치 사건은 인천지역은 물론 전국적으로도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인천지역 총파업투쟁 의의
최 의장 석방을 위한 총파업은 임금인상 투쟁 이후 계속 침체하던 인노협과 단위노조들에게 새로운 활기와 자신감을 불어넣었고, 인노협에서 지구별 중심노조 형성의 가능성을 보여 주는 성과를 거두었다. 남동공단 10여 개 노조(미가입 노조 포함)는 점심시간 총회, 병원노조들은 보고대회 등 여건에 맞게 투쟁에 참여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파업 과정에서 총파업에 참여하기 어려운 노조들에 대한 조직적 지도의 부재, 지도력의 미숙함, 단위노조의 취약한 집행력으로 인해 지구집회와 16일 부평역 투쟁이 무산되는 등의 허점을 보이기도 했다. 이에 인노협 집행부는 총파업과정에서 부족했던 것을 채우고 조직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조들을 순회방문하는 한편, 투쟁 열기를 유지하기 위해 지구별 철야농성을 벌였다. 지구별 철야농성에는 21일부터 4일간 50여 명의 간부가 참여해 총파업투쟁 평가와 이후 투쟁 방향을 토의하는 등 지속적인 투쟁방안을 마련하고, 변태옥 씨에게 편지쓰는 순서를 갖기도 했다.
한편 총파업 이후 무노동무임금, 징계 회부 등의 탄압을 당하는 노조들이 곳곳에서 발생했다. 명성전자와 동신공업은 회사측의 16일 무노동무임금 실시 입장에 잔업 거부와 공청회 등으로 맞서 철회시켰다. 진성전자는 회사측이 전 조합원을 징계위에 회부했고, 마이크로전자는 무노동무임금에 위원장 등 간부 4명을 징계위에 회부했다. 인노협은 총파업 이후 이러한 탄압에 대한 대응책 마련을 위해 노력했으나 교섭권이 개별자본가와 개별노조로 분산된 한계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참고자료 : 인천지역노동조합협의회, <인노협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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