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글은 한독금속 노동조합 농성시 결성된 호박부인회에서 투고하여 준것입니다.
출처 :< 인노협신문> 제6호 1988.10.14.
아침저녁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우리 순영이 감기 걸릴까 보아 연탄불을 피우려고 보니 묵은 연탄이 5장밖에 없었다. 지난달엔 추석이라고 보너스 100% 타서 고향가는 차비며 선물값에 쓰고 났더니 몇푼 남지 않았다.
없는 돈이지만 순영이 감기약값 나가는 것보다 연탄불을 빨리 피우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연탄가게에 갔다. 가게 아줌마한테 연탄 100장 부탁하고 쌀 1말을 들여 달라고 했더니 아줌마께서
"순영엄마, 연탄은 장당 200원이야. 쌀은 16키로상품이 이만원이구."
"뭐라구요. 아니 아줌마 정부에선 물가를 안정시킨다고 발표했는데 아줌마 가게만 유난히 먼저 올려 받는 것 아녜요."
공연히 아줌마에게 트집을 잡고 씩씩거리며 집에 돌아오는데 주인영감이 악을 쓰며 부른다. 방세 올려달라는것을 들은 척도 안 하고 며칠 지냈더니 악다구니를 쓰면서 100만 원 더 안 올려 주면 방을 비워달라는 것이다.
정말 이러다간, 추운 겨울을 어떻게 무사히 보낼수 있을지 한숨만 나온다.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끼어들고 올림픽도 개최해 이제 국민소득이 선진국 수준에 이른다는데 우리 노동자 살림은 하나도 나아진게 없으니 정말 알수없는 노릇이다.
순영이 아빠가 지난 봄에 임금인상 파업해서 일당이 천이백원 올랐지만, 씀씀이는 더욱 안달스러워지니 어찌된 이유인지 모르겠다.
매일 TV광고에서 쏟아지는 신제품들, 라면, 치약, 화장품 등 모든 생활품이 새것임을 내세워 가격을 올리고 있으니 결국 물가인상이 세련된 방식으로 우리 주부들의 눈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올림픽에 쏟아놓는 엄청난 돈이 인플레가 되어 방세며, 콩나물값이며, 담뱃값을 뛰게 만들고, 지난봄 우리 순영아빠가 파업투쟁으로 쟁취하였던 임금인상은 물가인상으로 인해 또 다시 기업주의 배를 두둑하게 해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내년 봄 임금인상에서는 우리 주부들이 팔 걷어 부치고 앞장서서 가족의 생계비를 확보하리라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