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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남지역 1987년 노동자대투쟁
첨부파일 -- 작성일 1987-06-29 조회 223

성남지역 1987년 노동자대투쟁

 

 

1987년 당시 성남지역 공업단지가 갖는 특징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노동집약적이며 경공업 중심의 소비재 생산을 주로 하는 중소규모 업체가 대부분이었다. 공단을 중심으로 300인 이상의 대규모 업체가 간혹 있기는 하나 전체적으로 볼 때 중소규모 업체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둘째, 여성 노동자 비율이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인데, 이는 기업주측에서 주로 싼 임금의 여성노동력을 고용하고 있다는 점과 성남지역 내에 두텁게 존재하는 도시빈민층의 여성들이 취업전선에 뛰어들어 경제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셋째, 주거지역 내에도 상당수의 제조업체가 분포되어 있다. 이들은 지하실이라든가 건물을 임대하여 공장을 운영하고 있어서 노동자를 위한 작업환경, 임금, 작업시간 등이 기업주의 임의대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문제의 불씨를 항상 안고 있었다.

 

중소기업, 특히 30인 이하의 영세소기업이 주류를 이룬 성남지역의 경우 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사업장 이동이 잦았고, 지역 내 대규모 사업장이라고 한다면 동양정밀, 샤니, 콘티, 에스콰이어, 대한교과서, 삼양전자, 오리엔트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의 경우 관리를 철저하게 하고 대부분 어용노조가 설립돼 노동자들의 민주적 요구가 완전히 차단되고 있었다.

 

그러나 성남지역은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전에 전면적이지는 않지만 복직투쟁, 임금체불에 따른 투쟁 등이 전개되었다. 특히 1984년부터 1985년에 걸쳐 전개된 대영타이어, 라이프제화, 협진화섬의 경우는 투쟁을 통해 노동조합을 건설하고 투쟁을 통해 사수해 냄으로써 다른 지역보다 훨씬 많은 경험을 축적하고 있었다.

 

1987년 성남지역 노동자들의 대투쟁은 6월 민중항쟁과 직접적인 맥을 함께 하고 있다.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탄탄한 민주노조 투쟁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었던 이 지역 노동자들은 6월 항쟁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이러한 여세를 현장 민주화로 확장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629, 노태우 민정당 대표의 기만적인 ‘629선언이 나오는 날, 성남지역 26개 전 택시회사 노동자 200여 명이 임금인상과 완전월급제를 주장하며 가두시위에 돌입했다. 택시노동자들의 이 투쟁은 위 26개 업체 중, 노조가 있었던 11개 업체의 경우 ‘1987년 임금협정 공동교섭으로 630일 타결되었지만, 노조가 없는 나머지 15개 업체는 임금타결이 완료되지 못하고 불씨를 남겨둔 채 종결되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6월 항쟁과 같이 노동자들이 자신의 요구를 내걸고 가두투쟁을 전개한 것은 성남지역 노동자들의 분위기를 조금씩 반전시키기 시작했다. 72일 임금교섭이 공동으로 타결될 때까지 연일 투쟁이 계속돼 지역 분위기 반전에 영향을 미쳤다.

 

77, 동양특수기공()에서 노동조합 결성이 시도되었지만, 회사측의 완강한 저지로 실패했다. 79일에는 성아운수에서 44명의 노동자가 노조 창립 총회를 갖고 오후 3시 설립신고서를 관할 시청에 접수했지만, 바로 직전에 24명이 서명한 노조설립 신고서가 접수되었다는 이유로 접수를 거부당했다. 이날 총 36대 중 26대가 운행을 거부하고 농성투쟁에 돌입하자 710일 성남시청에서 양쪽의 신고서를 모두 접수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투쟁이 제조업 노동자들에게로 본격적으로 옮아 붙게 된 것은 718일 서우산업 노동자들의 보너스 쟁취투쟁이었다. 71640명의 노동자들이 서우 근로조건 개선위원회를 결성하고, 718일 전면파업에 돌입했던 것이다.

 

그리고 726일 동화통상, 727일 영진산업으로 이어져, 전 노동자가 참여하는 대중투쟁으로, 공장 내 파업에서 도로점거 시위로, 보너스 요구에서 임금인상 요구투쟁으로 발전해 갔다. 이어 812일에는 일당 1,200원 인상, 보너스 600% 지급을 요구하며 ()보원 노동자들이 파업농성에 돌입하면서 성남지역 노동자 투쟁은 광범위하게 전개되어 하루 25건 가량의 투쟁이 발생했다. 특히 814일 에이스침대 및 리오의 300여 노동자 파업농성에 이은 13일간의 투쟁과 817일 오리엔트 노동자 투쟁은 성남지역 노동자투쟁을 선도하는 쌍두마차 역할을 했다.

 

이들 성남지역 노동자대투쟁의 특징은 첫째, 과거에 투쟁경험이 없었던 곳에서 주로 발생했다. 1980년 이후 투쟁이 있었던 사업장인 협진화섬, 콘티 등의 경우 잠잠하거나, 라이프제화나 에스콰이어의 경우 대중투쟁으로 발전하지 못했던 반면 현장 투쟁사례가 없었던 사업장들의 투쟁이 폭넓게 확산됐다.

둘째, 200300명 규모의 중소기업이 투쟁의 주류를 형성했다. 오리엔트를 제외한 대부분의 대기업에는 투쟁이 없었는데, 동양정밀, 에스콰이어, 대한교과서의 경우 투쟁에서 대중동원에 실패하고 말았다.

셋째, 금속업종의 사업장에서 조직적이고, 지속적이며, 전투적인 싸움이 진행됐다. 이 특징은 영진산업, ()보원, 봉명산업, 일동제관, 일성기계 등에서 두드러진 현상이었다.

, 이러한 투쟁을 통해 새롭게 민주노조가 결성된 사업장은 서우, 영진산업, 동화통상, 보원, 일동제관, 에이스, 리오, 오리엔트, 안건사, 라이프제화, 월드아트, 반포산업, 봉명산업 등 12개 업체에 달해 지속적이고 강고한 투쟁을 펼친 사업장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사수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상과 같은 성남지역의 주요 투쟁은 다른 사업장에 비해 노동운동에 대한 폭넓은 시야를 가지고 강고한 연대투쟁을 전개한 사례다. 이들 투쟁의 일반적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들은 장기간에 걸친 농성에도 끝까지 전열을 흐트러트리지 않음으로써, 중간관리자를 내세우며 우롱하던 회사측에 우리는 결재권자와 대화하겠다고 맞서 회사대표를 마침내 노동자 앞에 끌어내 요구사항의 대부분을 관철시켰다.

 

둘째, 노동자들은 파업현장에서도 생산의 주인, 사회의 주인으로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루하루 회사측의 처분만 기다린 것이 아니라 노래자랑, 장기자랑, 게임, 영화감상, 조명과 음악을 곁들인 연극 등 생산적 문화활동을 창조적으로 진행해 나갔으며, 노동운동 사례, 인생 경험, 투쟁의 의미, 연대의 필요성 등을 발표하고 토론했다.

 

셋째, 파업과정에서 보여준 자발성에 기초한 강철같은 단결과 철의 규율은 관리자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규칙 따위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지를 보여주었다. 이들은 투쟁 첫날부터 수비대, 재정부, 운반제작부 등의 부서를 두고(에이스, 리오의 경우), 5개 소대의 결사대를 조직(오리엔트)하는 등 조직적 투쟁을 진행했다. 특히 에이스와 리오는 13일간의 투쟁 동안 매일 아침 출근시간에 대열에 맞춰 공단을 돌며 출정식을 거행해 출근하는 공단 노동자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았다.

 

넷째, 투쟁하고 있던 노동자들은 참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이들은 첫날부터 개별행동 및 음주금지” “모든 결정은 민주주의 원칙에 따른다” “동료애로 서로를 이해하고 돕는다등의 행동수칙과 투쟁원칙을 정해두고 파업진행을 민주적 토론을 통해서 꾸려나갔다. 이러한 민주적 행동이야말로 한꺼번에 모든 부분을 민주화하면 혼란이 온다는 자본과 권력측의 주장이 기만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다섯째, 노동자들이 힘을 강화하자면 연대가 필요하다는 사실과 어떻게 연대해야 하는 지를 보여주었다. 에이스와 리오의 하청계열 연대와 오리엔트의 지역연대 및 오리엔트 계열회사인 영송정기에 대한 격려, 공단 일대 연대시위, 농성 사업장 지지성명 등은 매우 모범적이었다. 특히 에이스와 리오, 오리엔트 노동자들은 25이석규 노동형제 추모 가두침묵 시위추모 가두집회를 함께 진행해 자신의 사업장 투쟁을 지역 노동자 권익쟁취 투쟁으로, 나아가 일천만 노동자의 단결로 승화시켜나갔다.

 

여섯째, 노동자들은 권익을 쟁취하는 데 그치지 않고, 노동자의 진정한 대표기구인 민주적 노동조합을 결성함으로써 일회적이거나 단절적이지 않은 지속적 싸움의 발판을 마련했다. 투쟁과정에서 전체 노동자들의 지지 속에 탄생한 노조야말로 진정한 민주노조의 표본이 됐던 것이다.

 

참고자료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편, <성남지역 실태와 노동운동>(민중사,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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