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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정에서 만난 노동자
..... 법정에서의 최후진술
첨부파일 -- 작성일 2010-03-04 조회 881
 

법정에서의 최후진술

 신제주(가명, 법정방청인)

 절차적 민주주의가 진척되고 어느 정도 사법부 독립이 이루어짐에 따라 과거 독재시절의 법정투쟁과 같이 재판자체를 거부하면서 아예 사법부의 권위 자체를 부인하는 분위기는 거의 없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오히려 기간제 노동자들의 해고 소송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투쟁과 병행하거나 투쟁보다도 앞서 노동자들이 먼저 소송을 제기하기도 하는 등 사법부에 대하여 어느 정도 기대를 하기까지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속 및 실형 등의 형사법적 측면에서의 탄압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며 법원 역시 사실상 수사기관과 동일한 탄압기제로 작용함에도(누구나 알고 있듯이 구속이나 실형 등의 최종 결정은 사법부에서 하고 있습니다), 사법부의 권위를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확산됨에 따라, 재판 진행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다소 곤란한 입장에 놓이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구속사건의 경우에는 대부분 변호사들이 선임되고 있어 노동자들이 자신의 입장을 진술할 기회는 사실상 최후진술이 유일한데, 최후진술과정에서 “우리의 투쟁은 이러저러한 측면에서 정당한 것이다”라고만 입장을 밝힐 경우 혹시 형량으로 보복당하지 않을까라는 우려(최후 진술로 인한 것만은 아닙니다만, 상당시간 투쟁의 정당성만 설명한 한 노동자의 경우 실형 3년을 선고받았고 양형 이유에서는 “전혀 반성의 빛이 없는 점”이 설시된 바 있습니다)로 인하여 “이러저러한 측면에서 불가피했다. 그 과정에서 다친 회사 사람들 혹은 전경들에 대해서는 안타깝게 생각한다. 추후에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라고 하여 일정한 반성을 하면서 선처를 호소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됩니다. 심지어 변호사가 형량 특히 실형선고를 우려하여 다친 전경 등에 대해서는 사과의사를 좀 밝혀달라고 사실상 종용하기까지도 합니다.

실형선고로 인해 당사자나 가족 그리고 연대하는 노동자들이 겪게 되는 고통, 쓸데없이 구속당해 있는 기간 동안 활동하는 것만 못하다는 현실적인 판단, 사법부도 국가기구의 일부이고 노동자에 대한 탄압에서는 검경과 다를 것이 없어 심판자로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판사에게 정당성을 주장하고 그 판단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등의 고려로 일정한 수준의 반성의 뜻을 보이면서 선처를 호소하는 것이 언뜻 현명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투쟁이 정당했다면 그리고 그러한 정당성을 누구에게나 설명할 수 있는 것임에도 위와 같은 현실적인 이해관계로 인하여 자신의 생각과 다른 진술을 해야 하는 입장을 선택하는 경우, 최선을 다했던 행위의 정당성에 대한 스스로의 부정이 가져오는 고통, 사법부라는 기제를 통해 기존질서에 포섭되어 관리되는 것에 대한 모멸감 등 당사자에게는 감내하기 쉽지 않은 내상을 남기기도 합니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의 실형 3년을 선고받은 노동자의 경우 법정 방청을 하던 부인(부인 역시 당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존경받는 활동가이십니다)이 최후진술을 듣고 법정을 나와서 “아직 철이 덜 들어서 그래요”라면서 눈물을 비치시기도 했는데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어느 방향이 좋은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여전히 주저하게 됩니다. 아직은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노동자들이 위와 같은 처지에서 고민을 하게 되는 상황이 더 이상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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