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의 시대 소방관의 눈물 소요  
재난의 시대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는 오랑이라는 도시에 불어 닥친 재난과 그에 맞서 싸우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카뮈는 이 소설에서 ‘재난’이 물리적으로 재생산되는 것은 물론 정신적으로도 개인이나 공동체 내부에 ‘가능성’의 형태로 잠복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작가는 흑사병이 상징하는 공포의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사실은 체제가 품고 있는 습성이나 그것을 내면화한 개인 간의 갈등을 통해 재난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후쿠시마, 세월호, 메르스, 경주지진 등의 재난이 닥쳤을 때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을 보자면 흡사 「페스트」의 재현이 아닌가 할 정도로 수많은 갈등과 반목의 양상이 반복되는데,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자본의 끊임없는 이윤추구가 인간(동물)과 환경을 얼마나 끔찍하게 파괴하는지를 목격했다. 더욱이 이 파괴는 정서적 형태로 남아 피해당사자와 그가 속한 공동체에까지 흑사병과 같은 속도로 번지며 그 영향을 확대해가고 있다. 그야말로 ‘재난의 시대’인 것이다. 소방관의 눈물 2016년 촛불투쟁으로 박근혜가 물러나고 주요 대선후보들은 앞을 다투어 생명안전사회 건설을 주요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그동안의 한국사회가 얼마나 많은 생명과 안전의 위협 속에 방치되어 왔는지를 반증하는 일이기도 했다. 이어서 대통령이 된 문재인은 소방관들을 만나 “소방관이 눈물 흘리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라고 이야기했지만, 생명과 안전의 최전선에 서 있는 노동자들의 눈물은 노동자들 스스로가 닦을 일이지 정치인 한 명의 시혜적·선심성 발언으로 정리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이에 세월호 학살 이후 생명과 안전의 문제가 한국사회의 주요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골든타임 1초의 기적’의 저자 박승균 소방관을 만났다.  국가직 VS 지방직 “현장이라는 곳은 재난이 이미 끝났거나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나가는 거예요. 소방관이 안가는 곳은 없어요. 그만큼 위험한 일이기 때문에 그런 곳에 뛰어들 수 있는 안전에 최적화된 장비와 인력이 필요한 거예요. 그런데 이것이 지방직이기 때문에 재정의 어려움으로 지역 간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말이 안되는 것이죠.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차별할 수 있나요? 그렇기 때문에 국가에서 직접 지원해야한다는 것입니다. 현장에는 사인(sign)이 없고 이미 벌어져 버린 일 뿐입니다. 바로 그 때 소방관이 나가는 거예요” 문재인 정부 들어서 소방관의 국가직 전환이 사회적 이슈가 되자, 일부 언론은 이 문제를 경찰공무원과 소방공무원 간의 갈등으로 몰아가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하지만 소방관들은 흔히 알려져 있듯이 불을 끄는 일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재난들에 맞서는 역할을 맡고 있다. 따라서 소방관의 처우 문제는 단순히 예산과 비용의 갑론을박을 벌일 사안이 아니라, 정부가 인민의 생명과 안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중요한 척도로 여겨야할 사안이기도 한 것이다. 소방관의 노동환경은 사람들의 안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트라우마(Trauma) “이런 지원으로 인해서 한 명의 인원을 살리지 못했을 때, 그것이 미치는 영향은 그를 구하지 못한 자책감에 시달리는 소방관은 물론 그 유가족과 주변 지인들까지 상상할 수 없는 피해를 미칩니다. 소방관은 젊은 시절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일하는데 이러한 고강도 노동에 대한 트라우마를 계속해서 경험해요. 보통사람들은 가족이나 친구가 죽었을 때 특수한 경험으로서의 죽음을 체험하지만 이들은 1년에도 몇십번씩 죽음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거죠. 평생으로 따지면 수백번이 되요. 하지만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은 배척당하는 거예요. 트라우마로 건강과 정신의 질환에 시달리는 사람들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해요. 지금 당장.” 20년 가까이 소방관 생활을 한 박승균 소방관은 틈이 나는 대로 공부를 병행해 상담심리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지난 4월부터 경기도 북부 소방재난본부의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전담 TF팀인 ‘소담’을 이끌고 있다. 소담팀은 소방 공무원들의 심리상담을 하면서 현장의 고된 노동과 정신적 트라우마에 일상적으로 노출된 동료들의 정신적 치유에 힘쓰고 있다. 어느 날 동료의 부고 소식을 전해 듣고 건물에 난 불보다 먼저 꺼야 할 불들이 그의 마음에 들어왔던 것이다. 그는 동료들의 고충을 상담하는 일과 함께 소방안전에 대한 예방적 차원의 글을 써서 책을 내기도 했다. 또한 FILO라는 학생들로 구성된 문화예술창작기획팀과 함께 소방안전에 대한 문화·예술적 접근을 통해 한국사회에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얼마 전 공공의 안녕을 위해 헌신하는 소방관이 잠깐의 짬을 내어 컵라면을 먹는 사진이 이슈가 된 일이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소방 노동자들에 대한 감상적 태도를 넘어서 그들이 실제로 어떤 어려움에 부닥쳐 있는지, 또 그것이 우리의 삶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파악하는 일일 것이다. 「페스트」의 주인공인 의사 리유가 쥐들의 죽음에서 재난의 사인(sign)을 보았듯이 소방관의 컵라면이 주는 징후를 제대로 읽어내야 하는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