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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속연맹 건설(1996년 1월)
첨부파일 -- 작성일 1996-01-21 조회 234

금속연맹 건설(19961)


금속연맹 건설 논의

금속산별노조 건설을 위해 민주노조 진영이 1993년부터 1년여 동안 전노협 내부를 중심으로 계속해온 논의는 금속산업 내 전국조선업종노동조합협의회(조선노협), 전국자동차노동조합총연합준비위원회(자총련준비위), 전국금속일반노동조합협의회추진위원회(금속일반추진위)가 업종별 단결의 틀을 갖춰 나가던 1994년 말~1995년 초에 본격화됐다.

논의는 3개 조직으로 나뉜 금속산업 노조들을 어떻게 하나의 조직으로 묶어 산업별 노조 건설에 힘차게 나서느냐에 집중됐다. 1994년 말 3개 업종 대표자 간담회가 열려 처음으로 금속산업 노동조합 재편에 관한 논의가 시작됐다.

조선노협이 19952월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업종조직으로 민주노총에 가입하는 것을 유보하고 금속산업별 조직 건설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특별결의문을 채택하고, “금속산업 공동 임금인상 투쟁과 공동투쟁을 통한 금속산업별 조직 건설의 토대 구축을 위해 금속산업 단위노조 대표자 공동수련회와 정기적인 대표자회의를 갖자는 제안을 하면서 민주노총 건설과 함께 금속산업 노동조합운동의 조직재편 문제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이는 이후 임금인상 투쟁 시기 조선노협·현총련·대노협(대우그룹노조협의회) 공동수련회(423, 언양)와 전노협이 주관한 금속산업 임금인상 투쟁 간담회(423, 언양)를 통해 구체화했다. 그리고 520일에 노동운동 탄압 분쇄 및 임금인상 투쟁 승리를 위한 전국 금속노동자 결의대회120여 개 노조 1,500여 명의 참여 속에 광주에서 열렸다.

 

금속연맹추진위 구성

임금인상 투쟁이 마무리되어가던 7월 초, 조선노협이 금속연맹 건설을 제안했다. 이에 대한 논의과정에서 민주노총 건설에 금속산업이 적극 나서야 한다는 점, 금속산업은 단일한 금속산업별 노조를 지향하는 가운데 하나의 틀로 투쟁해 나가야 한다는 점 등을 전체 금속노동자들의 의견으로 모아갔다.

그러나 민주노총 가입방식과 관련해서는 금속연맹을 통해 하나의 조직으로 가입해야 한다는 조선노협과 업종별로 민주노총에 가입해야 한다는 자총련의 견해로 차이가 드러났다. 7월 한 달 동안 금속 3개 조직 대표자 간담회를 두 차례 열어 금속산업별 조직 건설과 민주노총 가입문제를 논의했다. 하지만 금속산업이 민주노총에 적극 결합할 것과 금속산업별 단일노조 건설을 목표로 공동 노력하자는 점을 재차 확인했을 뿐, 민주노총 가입 경로에 대한 이견은 좁혀지지 않았다.

19958월 자총련준비위가 민주노총 가입을 결의한 후 금속산업의 민주노총 가입 문제는 조선노협, 금속일반추진위 등이 하나로 가입할 것인가의 문제로 집약됐다.

금속일반추진위는 81712차 전국 대표자회의에서 금속연맹을 통한 민주노총 가입 자총련이 함께 하기 어렵다면 함께 할 수 있는 조직이라도 크게 묶어 민주노총 참가 이를 위해 금속일반추진위는 민주노총 건설 일정에 맞춰 신속하게 조직 건설 추진, 3가지 기본 방향을 결정했다.

조선노협과 금속일반추진위는 818일 민주노총준비위 사무실에서 조선노협 백순환 부의장, 박재근 사무총장, 금속일반추진위 문성현 추진위원장과 두 조직의 실무진이 배석한 가운데 대표단 연석회의를 열었다. 연석회의에서는 1111일 민주노총 건설을 앞두고 금속산업별(연맹)조직 건설에 시급히 나서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두 조직의 합의사항에 동의하는 대표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금속산업별(연맹) 조직 추진 일정을 논의하기 위해 823일 전국 금속산업 단위노조 대표자회의를 열기로 했다.

 

금속연맹 건설

823~24일 열린 전국 금속산업 단위노조 대표자회의에 참여한 30여 개 노조 대표자들은 오랜 토의 끝에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추진위원회(금속연맹추진위)를 결성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임시추진위원장에 문성현 금속일반추진위원장, 윤재건 조선노협 의장을 선출했다. 금속연맹추진위는 9월 말 5명의 집행위원을 선임하고 전노협 사무실에 임시 사무실을 마련했으며, 105일에는 울산에서 신경영전략 이렇게 맞서자는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이어 106~7일 금속연맹추진위 1차 전체회의에는 그동안 상임집행위원회 수준의 결의를 거쳐 금속연맹추진위에 참여신청서를 제출한 84개 노조 가운데 62개 노동조합 대표가 참석해 연맹 건설을 위한 본격적인 사업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결정을 내렸다.

 

첫째, 명칭은 한국노총 금속노련과 구별하기 위해 전국민주금속노동조합연맹추진위원회로 한다.

둘째, 추진위원장은 문성현, 윤재건으로 한다.

셋째, 충분한 준비를 거쳐 19961월 창립하고 추진위 단계에서 민주노총에 가입한다.

넷째, 지역별로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지역 대표자회의를 운영한다.

다섯째, 조합원 수 20%를 목표로 발기인을 모집한다.

여섯째, 의무금은 민주노총 의무금을 포함해 1천 원으로 한다.

일곱째, 1112일 전국노동자대회까지를 추진위 사업 1단계로, 창립까지를 2단계로 잡아 사업을 진행한다.

여덟째, 강령규약 소위원회를 두어 창립 준비에 차질이 없도록 한다.

 

이후 10월까지 12개 지역에서 추진위를 구성했고, 발기인 배지를 만들어 발기인 모집에 박차를 가했으며, 단위노조별로 간부와 조합원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진행했다.

한편 김영삼 정권은 1111일 민주노총 창립을 앞두고 금속연맹 건설이 실천적으로 추진되자 문성현 추진위원장을 국가보안법으로 구속했다. 이에 금속연맹추진위는 1122차 전체회의에서 김영삼 정권의 탄압에 강력히 맞서기로 결의했다. 구체적으로 단위노조와 지역별로 청와대, 국회, 내무부 등에 항의서한을 보내는 한편 단위노조별 규탄 집회, 지역별 철야농성 투쟁을 전개했고 민주노총의 명동성당 농성투쟁에 적극 결합해 항의투쟁을 전개했다.

114일 출범한 자총련과 공동사업을 내실 있게 벌여 이후 통일단결을 위한 기초를 마련해 나가기로 했다. 1996년 임금인상 투쟁 준비 대책회의를 두기로 했으며, 창립 일정을 1996121일로 확정했다.

이어 1111일 금속연맹추진위는 민주노총에 정식 가입하고 민주노총 창립 대의원대회에 49명의 대의원을 파견했다. 다음날인 1112일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1만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금속연맹 건설, 구속노동자 석방, 518 특별법 제정 전국 금속노동자 결의대회를 개최하고 조선노협 작업복 부대를 앞세워 여의도까지 행진해 민주노총 창립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여했다.

한편 금속연맹 건설이 추진되는 것과 관련하여 금속일반추진위는 그동안의 성과를 금속연맹에 적극 계승키로 하고 해소했으며, 전노협도 123일 대의원대회에서 조직을 해소하고 민주노총과 금속연맹에 그 성과를 계승키로 했다. 조선노협도 119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 금속연맹 업종분과(협의회)로 전환키로 기본방향을 잡았다. 현총련 소속 금속노조들도 금속연맹 건설에 적극 나서기로 결의했다.

금속연맹 창립 전까지 금속연맹추진위는 단위노조 상임집행위원회의 결의를 거친 120개 노조 82,857명이 참가해 사업을 진행했다. 이 가운데 1996120일 현재 81개 노조 57,734명이 가입을 결의했고, 1996년 상반기 내 가입을 결의한 노조는 33개 노조 13,699명이었다. 이러한 결의를 바탕으로 전국민주금속노동조합연맹이 1996121일 출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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