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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달의 역사
..... 전노협 후원회와 "땀 흘리는 사람들을 위한 작품전"_정경원(114호)
첨부파일 -- 작성일 2018-12-16 조회 1808
 

1990913일 한겨레신문에 이런 기사가 났다. “전노협의 각종 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땀 흘리는 사람들을 위한 작품전'이 전노협후원회(공동회장 김진균 외) 주최로 서울 [19909]14~20일 서울 안국동 갤러리 문화중심에서 열린다. 전노협후원회는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NCC인권위원회, 전교조, 언론노련, 한국민예총, 한국여성단체현합 등으로 구성되었다. ......한편 전노협후원회는 이번 전시회의 기념상품으로 지름 40cm 크기의 징시계를 제작, 작품과 함께 판매할 계획이다.”

 

 

전노협후원회와 "땀 흘리는 사람들을 위한 작품전"

 

정경원(노동자역사 한내 사무처장)

 

연말이다. 장기투쟁사업장, 단체들이 후원주점, 후원행사를 곳곳에서 열었다. 노동자역사 한내도 자료관 확장과 사무실 이전, 노동박물관 건립을 위한 사업을 시작하며 기부금을 모금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심시일반 운동을 지원하고 그 행사에 참여하는 일은 노동자가 만든 하나의 전통이다.

후원, 하면 전노협후원회를 빼놓을 수 없다. 민주노조운동진영이 전국조직을 건설하겠다는 자기 계획을 제출하자 이에 적극 동조하는 단체, 개인들이 모여 전노협후원회를 결성했다.

 

전노협후원회는 19909월 결성되었다. 민교협, 민변, 인의협, 건약, 건치, 민예총, 기사연, 통불협, 가톨릭노동사목, 여연 등 전노협지원공대위 가입단체를 비롯한 제반 민족민주단체의 조직원을 중심으로 19905, 후원회 결성이 제안되었다. 그 제안이 받아들여 후원회 준비위원회가 625일에 발족되었고, 7월과 8월에 각각 준비위 회의를 거쳐 95일 마침내 그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후원회는 전노협 해산까지 전노협의 재정적 어려움을 덜어주고자 노력하였고 전노협이 국민들의 지지기반을 확대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활동했다. 전노협 창립을 앞두고 전노협 건설의 당위성에 관한 토론회를 열었으며 법률, 의료 등 각종 지원활동으로 제2의 전노협 역할을 담당하였다.



각계각층의 회원들과 후원자들이 회비를 내고, 땀흘리는 사람들을 위한 작품전, 일일주점 등 재정사업을 했다. 6년 동안 전노협후원회에는 430여 명의 회원들이 가입했으며 이름을 밝히지 않은 후원자가 10여 명이었다. 전노협후원회는 각종 재정사업과 회비, 후원금 등을 통한 수입 중 13,000여만 원으로 전노협 사업을 지원했고 결성 직후 그림전을 통해 1억 원의 기금을 마련, 지원하기도 했다.

 

땀 흘리는 사람들을 위한 기금마련전은 재정 지원과 전노협을 홍보하는 데도 큰 몫을 담당했다. 전노협 기금마련을 위한 땀흘리는 사람들을 위한 기금 마련전을 민예총, ‘민족미술협의회(이하 민미협’)’ 등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후원회 출범 직후인 1990914일부터 일주일간 안국동 갤러리 문화중심에서 열었다. 이 전시회는 준비위원회 시기부터 기획된 것이다. 전노협의 재정적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민족미술협의회의 협조로 기금마련을 위한 그림전을 추진한 것이다.

기금마련전에는 140여 명의 작가 20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민미협 작가, 기성작가들이 작품을 기탁했다. 신영복은 모두 10점의 서예작품을 기탁했다. 무더운 여름 내내 전노협을 위해서라면 나의 노동량을 최대한 투하해서라도 돕겠다3,000자에 달하는 <춘향전>을 흐트러짐 없는 글씨로 화선지에 옮겼다. 이우정 양성우 백기완 등은 소장품을 내놓았다. 강행원 김광옥 김지하 김호득 박문종 박재동 중광(이상 동양화 서예) 강요배 김경인 김인순 김정헌 김환영 민정기 박불똥 손장섭 송창 신학철 안보선 여운 이반 이종구 임옥상 주재환 최민화 황재형(서양화) 김경주 김봉준 김준권 이상국 이철수 유연복(판화) 김정서 강관욱 나상옥 심정수(조각) 김구한 김남수 변승훈(공예) 등이 출품했다. 미술가들은 그림을 그리고 후원회원들은 직접 발로 뛰면서 전노협 재정에 도움을 주었다.

준비위원들의 작품전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기획, 출품 의뢰, 전시 준비, 판매에 이르기까지 정성을 다하였다. 유홍준은 수업을 휴강하면 나중에 보충할 수 있지만 이런 전시회는 다시는 열 수 없다며 일주일 내내 전시회장을 떠나지 않았다.

일주일 동안 전시장에는 1,000여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행사 막바지에는 작품이 부족해 팔지 못할 정도였다. 기획상품으로 제작한 노동해방 징시계는 전노협 건설 기념의 상징성이 있어 당시 10만 원이었음에도 일찌감치 동이 났다.

이러한 활동은 독일에도 알려져 독일 교포들을 중심으로 재독 전노협 후원회결성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광산노동자, 자동차공장 노동자 등이 독일인들과 함께 199011재독 전노협후원회 준비위원회를 결성했다. 이들은 독일 동포들에게 전노협을 알리기 위해 전노협 후원회의 밤 노동자 문화 한마당을 열기도 했고, 전국노동자신문과 전노협에서 제작한 비디오테이프 <천만 형제>, <현대그룹 노동자투쟁> 등을 보급했다. 또한 전노협에서 제작 판매한 노동해방 달력, 일지, 수첩 판매사업을 벌여 170여만 원의 수익금을 전노협에 보내기도 했고, 구속노동자에게 편지보내기 운동 등을 전개했다.

 

전노협후원회는 1995123일 전노협해산에 앞서 전노협 6년 운동 평가토론회를 열었다. 전노협의 역사적 의의를 정리하면서 이후 민주노총이 나아갈 길을 밝히는 토론회였다. 그리고 전노협후원회는 남은 회비로 전노협 백서발간위원회에 복사기를 증정했다.

전노협 후원을 위한 조직 결성과 그 활동을 보면 당시 전노협의 지지기반이 노동자에 한정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 시절을 넘어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지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전노협의 지향하는 바가 노동자민중의 지향하는 바와 일치했기 때문일 것이다. 전노협이 투쟁하고 쟁취하고자 한 것이 이익집단의 그것이 아니라 노동자민중의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것들이었기 때문인 것이다. 그럴 때 후원은 빛을 발하고 후원하는 이들에게 의미를 선사한다.

 

 
 
이달역사_땀흘리는_사람전_1990091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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