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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상이의 일기
조선공사 노동자
1988년 5월 O일, 흐림
아침에 집을 나서려고 신발을 신는데 뒤통수가 따갑다. 온 식구의 시선이 일제히 내 뒤통수에 꽂혀있다. 일렬로 주욱 늘어선 마누라나 애들 입에서 나올 소리가 무슨 소리란 걸 알기 때문에 고개를 돌려서 똑바로 바라볼 엄두가 나질 않는다. 하도 여러 번 해보니까 저희들끼리 박자도 잘 맞고 화음도 정확하다.
“쌀이 떨어졌는데요.”
“아빠, 오늘은 꼭 참고서 사고 미술 준비물도 사가야 되는데요.”
너무나도 당연한 최소한의 요구이기에 짜증을 낼 수도 없고, 씨탕카인도 날짜가 어떠니 해봐야 통할 리도 없고, 웃음으로 얼버무리는 것도 하루이틀이다. 어떻게 좀 외상을 해보든지, 어디 가서 돈을 좀 빌려보라니까 대뜸
“장사하는 사람은 어디 땅 파서 장사는 줄 알아요? 돈 빌리기가 그래 쉬브모 당신이 좀 빌리오소. 기다리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일 해주고 돈 못 받을 회사 말라꼬 일해주노!”
불난집에 선풍기 돌리는 소리만 한다. 하기야 우리집 주위만 해도 전부 조선공사에 목을 매달고 있는 사람들이니, 서로 오다가다 골목에서 마주쳐 어디가냐고 물으면 우리집에 돈 빌리러 온다고 하는 형편이니 모두가 부처님 손바닥 안이다. 월급이 외상이니 20일까지 굶자고 할 수도 없고,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 되라고 학교 보냈으니 나무랄 수도 없고, 준비물을 못 챙겨가서 하루종일 선생님 눈치나 보고 기가 죽어있을 애들 생각을 하니, 내가 어렸을 때 기성회비 안 가져왔다고 울면서 집으로 쫓겨오던 생각이 먼저 나서 일이 손에 안 잡힌다. 그놈 참, 어버이날 선물살 돈 있으면 그 돈으로 미술 준비물이나 챙길 일이지. 그러나 비 맞은 중처럼 입속으로만 중얼거릴 뿐 말이 되어 입 밖으로 나오진 않는다.
즈그들끼리도 작당을 한 건지 웬놈의 것들이 떨어지면 꼭 그렇게 한꺼번에 떨어지는지 모르겠다. 쌀, 라면, 신발, 비누, 학용품, 화장지, 샴푸, 치약, 식용유, 거기다 양념까지. 고지서가 나와도 빌어먹을 것들이 짜고 그러는지 꼭 한꺼번에 밀어 닥친다. 전기세, 수도세, 전화세, 오물세, 변소세, 방세, 공납금, 방범비, 거기다 시집장가 가는 사람은 왜 그리 많고, 초상집은 왜 그리 많은지. 아, 피곤하다.
그렇다고 마누라한테 없었던 일로 하자면서 결혼을 물리자고 할 수도 없고, 이왕에 나온 애들을 도로 밀어넣을 수도 없고......
“왜~앵”
잔업 사이렌이 부는데 월급 나온다는 소리는 오늘도 없다. 안주는 걸까, 정말 못 주는 걸까. 왜 유독 노동력이란 상품만 이렇게 외상이 되는 걸까. 주인이 마음이 좋아서일까.
삼각관계처럼 풀리지 않는 고민을 씹으며 동문으로 나오려는데 술집 여편네가 외상값 받으려고 몸빼자락 휘날리며 저만치서 떡 버티고 서있는 게 보인다. 평소에 술 먹으러 들락거릴 땐 짜릿하게 육감적이던 그녀의 몸매가 오늘 보니 영 우체통이 서 있는 것 같다. 니미랄, 누가 떼먹는다나. 그래도 걸리면 재미없으니까 빙 둘러서 서문으로 나왔다. 이래저래 고달픈 나날이다. 내일은 어머님 묘소 이장문제 때문에 시골에서 아버님이 올라오신다는 전보가 왔는데.
*조선공사노조정상화추진위원회, [조공 노동자신문]제9호(1988.5.17.) / [현장문예]에서 재인용
- 조선공사는 지금의 한진중공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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