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입맞춤/ Ae Fond Kiss
이성철(노동자역사 한내 회원)
켄 로치 감독의 작품입니다. 혹자들은 이 영화가 감독의 다른 작품들과는 성격이 다소 다른 멜로 드라마라고 소개들을 하고 있으나, 제가 보기에는 이전의 작품들과 일정한 연관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영화의 소재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할 수 있겠으나, 단순한 남녀간의 문제로만 볼 수 없는 묵직한 사회적 주제들이 배경으로 깔려 있습니다. 영화의 원제인 <Ae Fond Kiss>는 스코틀랜드 민중시인이었던 Robert Burns(1759-1796)의 시 제목을 따온 것입니다. Ae(발음은 [ei]임)는 영어의 a나 an, 또는 one에 해당하는 스코틀랜드어라고 하네요. 주인공 카심의 여동생(타하라)이 다니는 글래스고우의 고등학교의 한 행사에서 번즈의 노래를 쓸까 말까를 두고 교사간에 약간의 언쟁이 있는 장면이 있기도 합니다. 저는 이영화를 보면서 Ae의 의미를 나름대로 생각해보았습니다. 뒤에서 밝히도록 하지요. 한편 이 시인이 쓴 'A red, red rose(붉디 붉은 장미)'라는 시의 원문을 보면 이 시인이 고국의 방언과 민중의 언어를 얼마나 귀중하게 여겼는 지 알 수 있습니다. 켄 로치 감독이 굳이 이런 제목을 제시한 이유를 짐작하시겠죠? 로버트 번즈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그리운 옛날)을 만든 사람이기도 합니다.
주인공 카심의 집안은 파키스탄에서 이주해온 파기스탄-영국인입니다. 그러나 일상적으로 주위 백인들로부터 '파키'라고 조롱받습니다. 여동생 타하라는 학교에서 겪는 이러한 조롱과 모멸을 하나도 참지않고 그때 그때 대응합니다만, 부모들은 굴종의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하교하는 타하라를 마중나가 우연히 보게되는 음악선생 로이신에게 첫 눈에 반한 카심.... 이로부터 사단은 벌어집니다. 로이신은 영국인이지만 출신은 아이리쉬입니다. 흔히 아일랜드 사람들은 '유럽의 흑인'으로 차별받고 있죠? 알란 파커 감독의 음악영화인 <커미트먼트>에서도 이러한 차별이 여실히 나타납니다.
이쯤되면 두 주인공의 사회적 위치가 짐작될 것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양가의 반대 때문에, 카심과 로이신은 갖은 파란을 겪게 됩니다. 한편 비정규 음악교사로 일하고 있는 로이신에게 정규직으로의 전환이라는 매우 기쁜 소식이 전해지나, 교구의 광신적인 신부 때문에 이마저 어렵게 됩니다(중요한 내용들이 들어 있으나 생략합니다). 요컨대 문화와 종교, 관습과 교육이라는 거대한 틀 속에 끼어버린 두 남녀의 애정분투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비극으로 끝나지 않고, 이 모든 난관을 돌파하는 두 사람의 용기가 돋보이는 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Ae Fond Kiss>에서 AE는 Arab과 England(또는 Europe)과의 만남, 포옹, 그리고 다정한 입맞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명의 충돌을 극복해보려는 작지만 의미 있는 몸짓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선은 켄 로치 감독의 <자유로운 세계>나 옴니버스 영화인 <티켓> 등에서도 공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재는 달라도 끈질기게 견지하는 켄 로치 감독의 앵글 또는 관점이 대단합니다. 사랑이 단지 개인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새삼스런 사실을 다시 확인하고 싶을때, 일견을 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