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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작성일 2009-07-07 조회 912
 

[법정에서 만난 노동자] 법전과 양심

우안지연(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

재판장이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2003년 사건으로 1심에서는 징역 10월을 받았는데, 2심에서 징역 1년 6월이 되었다는 말인가요?" "네." 피고인의 답은 짧았습니다.

그는 불법집회 혐의로 법정에 섰습니다. 검찰에 따르면 누범기간 중이라 했습니다. 누범인지 확인차 전과기록을 넘겨보던 재판장은 2003년 사건 재판에서 2심 형이 두 배나 늘어난 것을 보고는 의아해했고, 피고인이 말해주지 않자 고개를 갸웃거리다 재판을 마쳤지요.

법정을 나서자 피고인이 웃으면서 말해주었습니다. 2003년 당시 재판부로부터 노동운동을 계속할거냐는 질문을 받았다구요. 그는 망설임 없이 계속할 거라고 대답했습니다. 누구나 법정에 서면 정답처럼 읊조리는 잘못했습니다는 말은 하지도 않았겠지요. 그 결과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파업 관련 집행유예 기간인데 반성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원심의 두 배에 가까운 형을 선고하였습니다.

그는 노동조합이 무엇인지도 모르다가 회사의 잔업과 착취와 비인간적인 대우에 맞서 스스로 노동조합이 되고자 했던 동료들을 기억합니다. 2003년은 그 동료들 중 두 명의 동지가 열사가 되어 떠나간 해였습니다. 그는 비록 자신이 집행유예 기간이었지만 자중하지 않고 열사투쟁을 하였던 것을 단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법전도 있고, 양심도 있습니다. 재판부는 형량을 정하는데 참작하기 위하여 피고인의 마음 속에서 법전의 무게를 꺼내어 달아볼 수는 있지만, 양심이 법전과 다르게 생겼다고 해서 양심을 법전 안에 구겨넣게 할 권리는 없습니다. 양심이 실현되어 실정법 위반으로 나아가기 전에는 그 누구도 양심을 간직하고 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이 우리의 헌법이니까요.

물론 법정에 처음 서는 노동자들, 재판부의 형량에 따라 갇힐 수도 직장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노동자들이 형사법정에서 자신의 양심을 당당하게 말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입니다. 잃을 것이 없기 때문에 두려울 것도 없던 그들이, 그래서 두려움 없이 싸울 수 있었던 그들이, 난생 처음 연행되고 외롭게 재판을 받으면서 두려움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것은 그 자체로 마음 아픈 일입니다.

하지만 법정에서 만난 노동자들을 한명씩 떠올려보면 그들이 알아가는 것은 두려움만이 아닐 거라 기대해봅니다. 어쩌면 그들은 사실은 사실대로 인정하면서 양심은 양심대로 간직하는 법을, 모두가 잘못했다고 한순간의 실수였다고 아우성치는 형사법정에서 자신의 양심을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법을, 배울 수도 있겠지요.

첫 형사법정에 섰던 날, 피고인이었던 노동자 J는 “변호사 동지! 법정에서는 제가 주눅드는 만큼 주눅들고, 제가 당당한 만큼 당당하시면 됩니다.”하고는 편안하게 웃었더랬습니다. 무시무시한 공소사실 앞에서 한참을 쭈뼛거리던 신참변호인이 안쓰러웠나 봅니다. 그 말에 저는 다음 재판부터 그녀만큼이나 당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잊지 않는 한, 앞으로도 그들만큼 당당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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