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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지구노동조합협의회 출범
⦁ 시기 : 1989년 4월 28일
성남지역은 서울지역의 도시철거민과 도시빈민들이 정착하면서 형성되기 시작한 도시다. 이곳 산업체는 대체로 30명 이하의 영세기업(이른바 ‘마찌꼬바’)이 주류를 이루었고, 노동력 이동도 매우 잦았다.
이런 성남지역에서도 1987년 노동자대투쟁을 계기로 노동운동이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1988년 1월초 오리엔트노조 위원장의 주도로 ‘노조연대 시무식 및 구속노동자 석방 환영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모인 노동자들은 월드아트를 지원방문하기로 결정하고 실행하였으며, 월드아트 투쟁이 승리하자 연대활동이 한층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그후로 ‘노동조합 대표자 모임’ 등이 정례화되면서 연대의 발전방향에 관한 논의가 진전됐고 합동전자노조 사수투쟁, 구속자 석방투쟁을 거치면서 공장정문 앞 연대집회와 공단 시위를 펼쳤다. 3월 초 한 달 가량 계속된 옥산봉재 위장폐업 철회투쟁에서 노조마다 교대로 규찰대 편성해 다양한 연대집회, 시위, 가두진출 투쟁을 전개함으로써 노동자들이 연대투쟁에 점점 많이 참가했다. 이렇게 대중투쟁이 고조되는 여세를 몰아 4월 24일 ‘성남지역민주노동조합협의회 준비위원회’를 결성했다.
임투 열기를 모아 조직적 토대를 구축해 나가는 한편 고려피혁 최윤범 열사의 분신을 계기로 조합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지지연대 활동이 이어졌다. 이러한 대중적 연대투쟁의 경험과 조합원들의 투쟁열기를 토대로 6월 25일 성남지역노동조합협의회(성남노협)가 창립됐다.
성남노협과 한국노총 산하 성남시협의회가 광명전기노조 탄압에 맞선 공동규탄대회, 공동체육대회, ‘노동악법철폐 및 임금인상 투쟁 승리를 위한 다짐대회’ 등을 통해 1988년 말 ‘통합추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이후 1989년 3월 15일 ‘성남노련 준비위원회’로 전환하였으며, 4월 28일 78개 노조 138명의 대의원이 참가해 성남노련 결성을 위한 대의원대회를 개최했다. 5월 1일에는 60여 개 노조 7,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성남지구노동조합총연합’ 결성을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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