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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기록으로 : 왜 '구술'인가
정경원 (노동자역사 한내 자료실장)
몇 번의 글로 백서 만들기 일반을 소개했다. 이번호부터는 없는 기록을 만들어내는 방법으로 구술채록, 구술사에 대해 소개하려 한다. 구술을 노조사나 투쟁사에 활용할 필요성, 주의할 점, 방법론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10년 전 일이다. 구술사를 알게 되고 무작정 서울대 교육대학원을 찾아가 수업을 하고, 노조사, 투쟁사를 만드는 데 활용하기 시작한 게.
1996년 전노협 백서를 만들면서부터 고민이 생겼다. 남아있는 기록과 서술 분량이 비례하게 되고 그러면 중요도가 높은 것으로 되는 게 문제다. 균형을 맞추고자 노력을 해도 자료가 많으면 백서에서 차지하는 분량도 많아지게 된다. “기록을 남기는 자, 역사에 남을 것이다.”
그런데 노동자 민중을 보자. 치열하게 싸우는 과정에서 자료를 남길 수 있는 데는 극히 드물었다. 오히려 열심히 싸운 데 보다는 그렇지 않은 곳이 자료를 더 남겼더라.
무엇으로 그들의 기록을 남기지? 글로 뭔가를 쓰는 게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 하지? 글로 남아있지 않다고 해서 그들의 역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 고민을 하면서 우연히 접하게 된 게 구술사다. 문자 이전, 인류가 역사를 남겨왔던 방법. 구술(口述)...... 말......
구술사의 사전적 의미는 구술기록에 근거한 역사 기술이다. 좁게 보면 말, 이야기는 구술사료이며 재구성되었을 때 구술사가 되지만 구술사라는 개념을 넓게 보아 사료 자체도 포괄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접하는 생애사, 생애이야기, 회상기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구술은 말과 말로 표현되는 기억이며 감정을 담고 있는 사료이다. 그런데 말과 기억을 바탕으로 서술하는 역사를 객관성을 중요시하는 역사의 범주에 넣어줄 수 있는가, 이런 게 학자들 사이에서는 논란인 적도 있었단다.
상식으로 생각해보면, 기록된 역사 이전의 역사는 원래 구술사 아니었을까.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보면 추장이 자신들의 조상과 부족의 역사에 대해 말로 줄줄이 읊어주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신화, 전설도 말로 전달되다가 기록되었다. 글이 없으면 말로 역사를 이어왔던 게 인류다. 그런데 우리는 자료로 실증하는 역사만을 ‘역사’로 접해왔다. 19세기 이래 역사연구방법론이 ‘중립’ ‘객관’을 내세우면서 문헌사 중심의 역사서술을 독점적이며 전문적인 것으로 확립해왔던 탓이다. 그러나 구술은 역사 유물이나 사적만큼 일차 자료이다.
문헌사 중심의 역사서술은 문자를 독점했던 지배계급의 역사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실증주의 사학 전문가에게 홀대받던 구술은 그간 민중들, 일부 사학자나 사회과학자의 학문에서 유지되어 왔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는 우리나라도 학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듯하다. 학문적으로야 어쨌거나 우리 노동자 민중은 기억을 기록으로 만들어내는 일이 ‘필요’하다.
‘왜 구술사인가?’라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 거꾸로 물어보자. 왜 구술사를 하지 않는가?
역사를 지배해온 자들은 구술사가 역사의 민주화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말과 기억을 통해 밑으로부터의 생생한 목소리가 전달될 수 있다는 것, 더욱 위험한 것은 그 말 속에 민중들이 희망을 담아 전한다는 것. 그러니 구술이 역사로 기술되는 것에 대해 사전에 차단하였다. 하지만 구술사의 전통은 민중들의 역사를 복원하려는 노력들에 의해 이어졌다.
구술을 바탕으로 한 프랑스혁명사가 쓰여졌고, 엥겔스의 [영국노동계급의 상태]는 구술 방법론과 사회주의운동이 결합한 결과였다. 이탈리아에서는 반파쇼 빨치산투쟁을 기록하고 노동계급의 사회운동, 공산당사 등을 서술하는 영역에서 그 전통이 이어졌다. 잘 알려진 톰슨의 [영국노동계급의 형성]은 1950년대 노동계급의 삶과 일상에 대해 접근하였고, 1960년대에는 노동자들의 자서전쓰기 열풍이 불었단다. 미국에서는 대공황시기 민중의 반란을 막고 실업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미연방정부가 나서서 과거 흑인노예, 노동자, 소작인, 실업자 등으로부터 방대한 생애사 기록을 수집하여 사회문제를 봉합하는 데 쓰기도 했다. 미국은 그 후로 컬럼비아 대학에 구술사연구실이 만들어지고 원주민 역사, 흑인사, 여성사, 소수민족사 및 민권운동 관련 구술기록을 수집하여 왔다.
한국에서는 전쟁 이후 말을 통한 기록도 차단되었다. 민중들은 쉬시하며 살아야 했다. 구술사가 발전할 수 있는 바탕 자체가 없었다. 그러다가 80년대 초 뿌리깊은 나무에서 민중들의 생애를 듣고 기록하기 시작하였다. 제주 4.3증언 등 현대사에 대한 대대적인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일제강점기 전평 활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해방정국의 좌우 문제를 이야기했다. 70년대 여공들은 그때를 다시 회고하였고 개인들도 노동자로서의 삶을 이야기하였다. 이런 기록들은 그 자체로도 역사며, 종합되어 역사로 재구성될 자료가 되기도 한다. 글뿐 아니라 말을 남기는 것도 사료를 축적하는 중요한 일이다.
구술사, 구술사료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강조하듯 구술은 평범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역사의 주체로 끌어내는 데 기여한다. 또한 기억과 경험을 자료로 축적하여 문헌을 보완하고 일상문화·감정·계급의식 등 문헌사로 접할 수 없는 역사를 복원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특히 노동운동사에 있어서는 노동운동 자료의 부재, 한계를 극복할 방법이기도 하다.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아 확인 불가능한 사실을 개록으로 남길 수 있고, 기록이 남아있다고 해도 해석이 안 되거나 행간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료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구술자는 말하기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함으로써 자기 해방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자도 상호교류를 통해 변화할 수 있기에 구술사가 회고록과 비슷하지만 다른 것이다.
노동자역사 한내는 곳곳에서 노동자 스스로 투쟁과 문화와 생활을 기록하자는 운동을 위해 만들어진 단체다. 노조사, 투쟁사를 쓸 때도 발간된 자료뿐 아니라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당사자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기록들은 이후 노동운동사 재구성에 중요한 사료가 될 것이다. 다음호에는 구술채록 실무에 대해 다룰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