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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노협 선봉대
시기 : 1989년 ~ 1993년
1987년 7~9월 노동자대투쟁 이후 빠르게 성장한 민주노조운동은 ‘폭력과 대항폭력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식칼과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구사대와 최루탄, 지랄탄을 앞세운 경찰의 폭력에 맞서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시작했다. 이런 투쟁 경험을 바탕으로 1989년 각 지역에서 지역정방대, 파업자위대, 선봉대 등이 결성됐다. 지역선봉대는 1989년 마창노련의 정방대 활동에서 시작됐다. 마창정방대는 1989년 4월 세신실업 구사대 폭력에 바로 출동해 구사대를 물리치고 연행노동자를 석시키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후 구사대 폭력에 대한 공동대응, 공동선전·선동을 하는 선봉대 활동의 모봄을 보임으로써 서울과 인천의 파업자위대, 경기와 부천 등 여러 지역에서 선봉대를 구성하도록 자극했다. 광노협도 1989년 노동해방선봉대로 출발해 선진노동자 대오가 만들어졌다. 전북노련은 1989년 하반기 가두투쟁에서 공권력에 무력하게 당한 뒤 선봉대를 결성했다.
전노협 건설을 앞두고 있던 1989년 말 ‘제9차 지역․업종별 노동조합 전국회의’는 선봉대의 위상을 조직선봉대로 규정하고 전노협 강화와 탄압 돌파의 역할을 부여했다. 이에 따라 전노협 선봉대는 전투와 선동 및 파업자위대를 통해 투쟁을 확산시키고 집회를 사수하며 지도부를 경호하는 임무 외에도 △취약한 단위사업장과 지노협의 지도력 보완과 준 간부로서 역할 수행 △일상부서 체계의 집행력 보완 및 소모임 활동의 주체 △미가입 노동자들의 조직화에 기여 등을 주요 임무로 수행했다. 그렇게 선봉대는 기업별 의식을 실천적으로 극복하고 전노협과 지노협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일꾼으로 자리매김했다.
선봉대가 지역별로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선봉대장단 회의를 안정적으로 진행하며 선봉대의 위상과 방향을 더욱 분명히 해나갔고, 전노협 강화와 탄압 돌파라는 역할에 걸맞게 다양하고 중요한 사업을 전개했다.
서노협을 비롯하여 10개의 지노협(지역)에서 활동한 선봉대의 활동내용 다음과 같다.
첫째, 전노협 선봉대의 위상 정립과 인식 확대를 위한 사업으로 ‘지역순회 선봉대 간담회’를 개최했다. <전노협의 불꽃! 선봉대가 부른다!> 홍보용 소책자를 발간했으며, <선봉대 자료집 1>과 <선봉대 활동 사례집> 발행했다.
둘째, 전투·선동·경호·투쟁지원. 전노협 선봉대는 1월 22일의 전노협 창립대회에서부터 5월 20일 광주 노동자대회, 11월 11일 전국노동자대회에 이르기까지 경찰의 침탈에 맞서 대회를 사수하고 투쟁 결의를 촉발시키는 등 투쟁을 전개했고, 5월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골리앗 투쟁 때는 전국 선봉대원을 울산으로 집중시켜 약 200여 명이 지원 투쟁을 전개했다. 이 외에도 일상적으로 대국민 선전선동을 월 1회 이상 전개하고, 지역집회 투쟁에서 선동·규찰·전투 역할을 담당했다.
셋째, 전노협, 지노협, 단위노조의 조직강화 사업. 노조 지도부를 보강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취약한 지역과 단위사업장의 활동을 지원하고 보조하는 역할도 담당했다. 또한 노조가 없거나 노조 집행부가 어용인 사업장의 미조직 노동자, 탄압으로 해고된 노동자들을 가입시켜 전노협과 지노협을 묶어 세우는 역할을 수행했다.
넷째, 선봉대 확대·강화를 위한 조직화·대중화사업을 진행했다. 이러한 사업은 주로 선동 조직자 훈련을 통해 실시했으며, 이밖에도 선봉대장단 회의 정착화 및 선봉대 수련회를 통한 조직강화 사업을 전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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