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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노대 결성
민주노조들이 하나로 모여 노조운동의 과제들을 함께 풀어갈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전노대)가 6월 1일 오전 9시 30분 서울 여의도 여성백인회관에서 공식 발족했다. 발족 당시 전노대는 1,145개 노조, 조합원 41만 명을 포괄했다. 발족식에는 전노협 8개 지역과 업종회의 9개 연맹, 현총련, 대노협에서 대표자와 간부들 70여 명이 참석해 “힘을 모아 민주노조운동의 지평을 확대하고 총단결의 조직발전전망을 열아나가자”는 데 뜻을 모았다. 이어 열린 대표자회의는 단병호 전노협 위원장, 권영길 업종회의 의장, 김동섭 현총련 의장, 김종렬 대노협 의장을 공동대표로 뽑고 집행위원장에 허영구 전문노련 위원장을 선임했다. 전노대는 두 달에 한 번씩 지역·업종·그룹의 대표들이 참가하는 대표자회의를 열어 공동사업의 가닥을 잡고 집행해 나가기로 했다. 당면 사업으로는 경제개혁투쟁, 임투, 노동법개정투쟁 등을 논의하고, 특히 임투와 관련해서는 쟁의 예상 사업장들이 모여 투쟁계획을 논의하기로 했다. 또 6월 1일부터 계속되고 있는 해고자들의 농성에 수도권 지역과 업종을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지지방문 하기로 했다. 전노대 결성이 추진되게 된 계기는 1992년 11월 전국노동자대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노협과 업종회의, 두 노동단체로 구성돼 1991년 10월부터 민주노조운동의 전국사업을 이끌어온 ILO공대위는 전국노동자대회를 공대위가 주최한 1991년과는 달리 전국의 단위노조들로 ‘조직위원회’를 꾸려 치르기로 했다. 이에 따라 16개 지역과 14개 업종의 1,071개 노조(조합원 40만명)로 대회 조직위원회가 구성됐으며, 전국노동자대회는 5만여 노동자가 참가한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 이후 1993년 2월에 조직위원회 대표자들은 수련회를 하고 대회 평가와 더불어 1993년 민주노조운동의 방향에 대해 논의를 계속해 갔다. 그렇게 해서 당면 과제를 함께 풀어나가기 위한 공동사업추진체를 구성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4월까지 계속된 몇 차례의 논의를 통해 구성방안과 사업계획의 뼈대를 잡아나갔다. 논의 과정에서 가장 쟁점이 된 것은 공동사업추진체의 성격과 이름이었다. 한시적인 공동투쟁기구이므로 이름에 공동투쟁과제의 내용을 명시해 ‘~을 위한 전국노동자공동대책위’로 하자는 의견과, 공동사업 추진체가 전국적인 상급조직은 아니지만 민주노조진영에 요구되는 포괄적인 사업을 최대한 공동으로 수행하는 기구이며 이를 통해 총단결의 발전에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는 뜻에서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로 이름 짓자는 의견이 제출됐다. 이러한 차이는 민주노조운동의 조직발전 전망에 대한 의견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기는 하지만, 조직발전 전망을 어떻게 설정하든 민주노조진영의 총단결투쟁과 사업의 축적이 전제돼야 하고 이는 결국 공동사업 추진체의 활동성과에 따라 구체화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했다. 대표자들은 논의 끝에 새 기구가 상급연합조직이 아니고 공동사업추진체라는 점을 확인하고 이름을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로 결정했다. 따라서 전노대는 단일한 강령과 규약을 가진 노동조합운동의 전국적 연합조직과는 성격상 명백히 구별됐다. 전노대 자체가 산별노조 건설 또는 산별노조에 기초한 전국연합조직 건설의 직접적 경로는 아니라는 것이다. 한편 ILO공대위라는 연대기구가 있는데도 전노대를 결성한 데는 몇 가지 배경이 있다. 첫째는 민주노조진영이 양적으로 크게 확대돼 이를 싸안을 수 있는 새로운 연대틀이 요구됐다는 점이다. 민주노조진영은 전노협과 업종회의를 중심으로 사안별로 연대해오다가 두 단체가 1991년 10월 ILO공대위를 구성해 전국적 공동사업을 펼치면서 총단결의 기운을 한층 높여왔다. 또한 이 기간에 현총련, 대노협 등이 활성화되면서 투쟁의 주체로 참여하고자 함에 따라 이를 폭넓게 포괄할 수 있는 새로운 틀이 필요했다. 둘째로는 임금인상, 고용안정, 노동법개정 등 노동자들의 당면 과제를 중심으로 총자본을 상대로 한 전국적 공동사업의 요구가 더욱 높아졌다는 점이다. 물론 ILO공대위도 이러한 과제를 수행해오기는 했으나, ILO공대위의 구성 취지가 ILO 기본조약 비준과 노동법 개정으로 제한돼 있었고 대공장노조들이 조직적으로 참여하고 있지 못하는 한계도 있었다. 셋째는 김영삼정권의 등장으로 비롯된 정세의 변화가 노조운동의 사회·정치적 역할을 높이고 민주노조진영의 정치적·조직적 구심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과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ILO의 노동법개정 권고와 9월 정기국회의 노동법 개정이라는 정세를 바탕으로 자주적 단결권 쟁취투쟁을 적극적으로 전개함과 아울러 민주노조진영의 전국적 조직발전의 토대를 획기적으로 강화할 필요성이 제기된 점도 전노대 결성의 배경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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