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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을 생각한다』김용철 지음
첨부파일 -- 작성일 2010-03-04 조회 872
 

『삼성을 생각한다』를 생각한다

 양돌규(노동자역사 한내 조직국장)

세 가지 의미의 ‘사건’

2007년 10월 삼성 비자금을 폭로했던 김용철 변호사가 지은 『삼성을 생각한다』는 올해 1월 29일에 나왔다. 그리고 한 달여 동안 이 책의 출간은 ‘사건’이 되었다. 광고 없이도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지금도 굳건하게 그 위치를 이어가고 있다. 내가 생각하기엔 『삼성을 생각한다』는 세 가지 의미에서 사건이다.

첫 번째, 이 책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사건이다. 삼성에 칼을 대 그 속을 낱낱이 파헤친 이런 책이 나온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삼성은 몰랐나? 이 책을 낸 출판사는 겁도 없나? 등등의 의문이 내게는 있었다. 사실 이 책의 원고는 많은 출판사를 전전했다고 한다. 하지만 ‘고뇌’ 끝에 거절했다 한다. 솔직히 말하자. 삼성이 두려워서였다. 명예훼손 소송도 두렵고, 수많은 숨은 삼성맨들이 ‘암약’하는 국세청이 세무조사 들어올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고, 그리고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갖은 방법으로 (작든 크든) 책을 낸 출판사를 기어이 내려앉힐 거라고들 생각했을 거다. 좋은 책을 내겠다는 소신 있는 출판사도, 대박 책만 내겠다는 야심 있는 출판사도 모두 이 원고를 거절했다는 건, 삼성에 대한 두려움이 사회 곳곳에 또아리를 틀고 있다는 사실의 방증이 아닐까. 그래도 어쨌든 책이 나왔다.

두 번째, 삼성이 가만히 있었는데도 이 책에 대한 이야기가 떠들썩해졌다는 것도 사건이다. 삼성은 이 책에 대해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물론 뒤에서는 원고를 구하기 위해 이 사람, 저 사람을 들볶았을 것이고, 원고를 구하고 나자 법무팀 직원과 변호사들이 날밤을 새워 가며 법률적 검토를 했었을 것이다. 어쨌든 공식적으로는 별 반응이 없다. 그런데 떠들썩해진 건 삼성에 대해 알아서 ‘긴’ 언론 때문이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뿐만 아니라 경향신문, 한겨레신문까지 줄줄이 광고를 거절했다. 『삼성을 생각한다』의 내용보다는, 혹은 삼성의 탄압 때문이라기보다는, ‘광고 논란’으로 이 책은 입소문을 거세게 탄 거다. 이쯤 되면 삼성에 대한 두려움은 인지상정이다.

세 번째, 네티즌들이 이 책을 사건으로 완성시켰다. ‘광고 거절 논란’ 기사들을 집중적으로 퍼나른 건 네티즌이었다. 이들은 블로그, 트위터를 활용해 책을 홍보하고 광고를 거절한 언론을 비판했다. 사람들의 그런 ‘손가락질’이 경향신문 편집국으로 하여금 사과를 하게끔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굳건하게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지키게 만들었다.

 『삼성을 생각한다』는 무엇을 말하고 있나?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목이 1부는 ‘불의한 양심에도 진실은 있다’, 2부는 ‘그들만의 세상’, 3부는 ‘삼성과 한국이 함께 사는 길’이다. 1부에서는 삼성 비자금 문제 폭로 이후 1년 동안의 비자금 수사, 그리고 이건희가 무죄로 판결 받는 얘기가 담겨 있다. 2부가 백미다. 2부는 삼성 전략기획실이나 삼성의 로비 방법, 삼성에버랜드 편법 상속, 대선 비자금 등 삼성 내부 핵심이 아니면 파악하지 못하는 얘기를 속속들이 꺼내보인다. 여기에 “이건희가 불러도 오지 않고 오히려 돈 내고 콘서트장에 오라고 했다던 나훈아”, “무릎 꿇고 시중 받는 이건희” 등 입이 떡 벌어지는 일화들도 담겨 있다. 3부는 저자가 특수부 검사 시절 경험과 이야기 등이 있다.

그중 한 토막,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 구조본 팀장회의에 ‘노무현 정부의 명칭’건이 올라왔고, 당시 회의에서 ‘참여정부’로 의견을 모았는데, 그것이 실제로 노무현 정부의 공식명칭이 됐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삼성과 결탁하지 않은 정부는 없었다. 이 책에서는 기업이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는지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삼성을 생각한다』는 무엇을 말하지 않고 있나?

그런데 책을 덮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책에 빠져 있는 얘기가 있다. 노동운동 얘기다. 사실 한국에서 모두 다 ‘1등 기업 삼성’을 칭송할 때 지속적으로, 끈기 있게, 삼성을 비판하고 기업보다 인간을 더 우선 가치에 두어야 한다고 온몸 던져 싸워온 사람들이 있다면 그건 노동운동이었다. 이 책은 그 눈물겨운 노력이 중심에 있지는 않다.

그 얘기는 달리 보자면 삼성의 핵심부에서는 그런 노동운동의 노력과 시도를 자신 있게 ‘간과’했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우리 노력이 진실하지 않았다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다만 우리의 힘이 약하다는 것일 뿐이다.

『삼성을 생각한다』가 노동운동의 지난했던 투쟁에 소홀하다고 비판할 생각은 없다. 『삼성을 생각한다』는 기업의 핵심 컨트롤 타워에서 본 삼성, 아니 이건희 가문 독재기업이 어떻게 한 국가를 좌지우지 하는가 하는 얘기를 다루는 것이고, 그건 더 연구해야 할 풍부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 중요하다. 오히려 독자가 이 책의 ‘여백’을 어떻게 다른 독서로 채워갈 것인가가 중요하지 않을까?

 『삼성을 생각한다』 너머의 사건

대박, 아니 초대박을 치고 있는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는 것은 삼성에 대한 탐구, 그리고 삼성과 같은 기업이 국가를 지배하고 있는 현실을 생생하게 깨닫기 위한 단초다. 여기서 멈춘다면, 그 독서는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류의 한탄에서 멈춘다. 세상이 그렇다는 걸 몰랐나? 누천 년동안 그랬다. 그러면 누천년 동안의 결론이 ‘술’이어야 할까?

그래서 독자들이 삼성에 대한 다른 책들로 더 깊은 여정을 이어가야 하지 않을까 한다. 예컨대 『삼성반도체와 백혈병』(박일환, 반올림 지음), 『골리앗 삼성재벌에 맞선 다윗의 투쟁』(김성환 엮음), 『아시아로 간 삼성-초국적기업 삼성과 아시아 노동자』(말레이시아 노동정보센터 등 지음), 『삼성왕국의 게릴라들-삼성은 무엇으로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가』(김성환, 김용철 외 지음)과 같은 책이 눈에 띈다. 우리 독서의 눈과 범위는 더 넓어져야 하고, 그럴 때만이 기업이 우리 삶을 조종하는 현실을 어떻게 뒤집을 것인가에 대한 답이 더 구체화될 거다. ‘삼성을 생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큰 ‘변혁의 전망을 생각하는’ 것으로 나아갈 때, 이 책이 대중적으로 읽히는 것보다 더 큰 ‘사건’, 더 큰 ‘의미’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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