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뉴스레터
..... 칼럼
..... 박근혜 파면과 노동정치_양규헌 (98호)
첨부파일 -- 작성일 2017-03-16 조회 1058
 

박근혜 파면과 노동정치

 

 양규헌 (노동자역사 한내 대표)

 

지난해 1029일부터 지금까지 전국의 거리에서 박근혜 퇴진촉구로 1600만 명이 넘는 군중이 집결하는 기록을 세웠다. 국정농단에 대한 촛불의 항쟁은 새로운 사회에 대한 염원이 담긴 민중들의 항쟁이었다. 가을에 출발한 거리투쟁은 긴 겨울을 거쳐 봄을 맞으며 결국 헌재에 의해 박근혜 파면에 이르게 되면서 정치권은 대권을 향한 전략을 구상하는데 여념이 없다. 나아가 촛불항쟁에 참여한 민중들은 박근혜 탄핵으로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며 도처에서 환호와 축포를 터트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국정을 농단한 권력의 핵심이 민중의 힘에 의해 탄핵인용이란 결과를 도출했다는 것은 투쟁의 성과이기 때문에 함께 승리의 기쁨을 나누며 폭죽을 터트릴 수 있다. 그렇지만 함께 투쟁대오를 유지했던 대오들은 향후 정치일정과 정치행보는 제각각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탄핵투쟁에 참여했던 노동자들의 정치세력화. 노동정치는 안개 속에 묻혀 명암을 달리하고 있으니 말이다. 정치적 변곡점에 선 현 상황에서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승리의 함성에 드리워진 찬란한 빛과는 달리 어둠 속에 암울함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과거와 현재의 상황과 미래의 전망은 우리 앞에 어떤 모습으로 놓여 져 있을까.

 

정치세력화의 흔적들

 

87년 노동자대투쟁의 성과로 출범한 전노협은 민주노조운동의 긴 단절을 깨고 노동운동의 대표체로서 자리하게 되었다. 진보정치의 노선인 변혁지향을 자신의 이념으로 확신하며 노동자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에 집중하였다. 전노협은 출범 이전부터 시작된 자본과 정권의 탄압에도 불굴의 투지로 맞서며 노동자계급의 인간다운 삶과 정치적 권리를 확보하는 투쟁을 이어 나갔다. 자주성과 민주성, 투쟁성과 연대성을 바탕으로 노동정치를 향한 정치세력화는 선거투쟁과 가두투쟁을 통한 집회와 시위형태였다. 전노협의 모든 집회와 시위는 모조리 불법으로 규정되는 상황에서 가두투쟁의 전술도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기획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졌다. 많은 한계를 노출하며 노동자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는 선거를 통한 논쟁(독자적인 정치세력화, 비판적지지)속에서 시기상조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치고 말았다.

 

전노협 6년의 역사를 마감함으로써 미완의 정치세력화는 민주노총으로 이관되었으며 민주노총에서 노동정치가 자리를 잡는 듯 했다. 1997~98년 전개된 민주노총 주도의 노동법개정투쟁의 열기를 모아 민주노동당이 창당되었다. 민주노동당은 2004년 총선에서 10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했으며 한때 당 지지율이 13%를 상회하는 결과를 낳으며 노동자대중정당의 전망이 밝아 보였다. 한때 민주노동당의 깃발은 노동정치의 희망처럼 부각되었으나 10년간의 역사를 남기 우여곡절 끝에 그 깃발은 내려졌다. 민주노동당은 이념과 노선의 대립과 당 운영의 미숙, 당과 노조와의 관계설정 오류 등으로 그 후유증은 지금까지 진행형이며, 사분오열된 모습으로 2017년의 정치일정을 기다리는 형국이다. 그런데 최근 또 다시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노동정치의 새로운 틀을 모색하기 위한 논쟁들이 진행되고 있다. 민주노동당 초기에 “10만 명이 모인 집회나 가두투쟁보다 한 명의 노동자출신 국회의원이 더 위력적이다라고 했던 당시 일부 활동가들의 주장에서 이미 민주노동당의 운명은 위치 지워졌는지도 모른다. 진보정치를 자유주의 정치세력이 대행하는 것처럼 변질되는 상황에서 이 주장은 매우 편협하며 비제도적(집회, 가투) 활동을 통한 노동자계급의 의식향상과 노동정치의 이해를 넓혀다는 부분을 간과하고 있다.

 

진보정치는 사회에서 소외되고 은폐되었던 것을 드러나게 하고 존재하면서도 무시되고 있는 노동자, 이주노동자, 불안정노동자, 성소수자를 비롯 사회적 약자를 등장하게 하고 그들 자신이 주장하게 하는 것이다. 정치는 이질적인 것이 동질성의 공간에 침범하는 것이고 그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당사자가 아닌 자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로 만드는 것이다. 촛불의 뜨거움이 거리를 온통 달구어도 정치는 여전히 독점적인 그들만의 리그이다. 진보(노동)정치는 기득권에 안주하는 지배계급에게 도전과 해방의 가능성에서 찾아야 한다. 그리고 진보정치는 모순투성이인 현실(자본주의)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체제로의 변혁에 대한 분명한 입장과 노선을 드러낼 때 진보정치라고 할 수 있다.

 

 

반복되는 논쟁과 정치행보는 매우 혼란스럽다

 

노동정치란 노동자 계급을 기반으로 한 세력이 사회적으로 치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때 노동자정치참여는 두 가지가 병행되는데 제도적인 부분과 비제도적 과정으로 구분된다. 제도적 부분은 독자적인 정당을 만들어 선거와 의회, 정부 영역에 주안점을 두는 것을 말하며, 비제도 부분은 집회 및 시위 등을 통한 운동정치이다. 따라서 노동정치에 비제도적 영역(집회, 가두투쟁)이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노동자당은 동력을 구축할 수가 없다. 민주노총에 의한 민주노동당은 대중조직의 결의로 창당되었다는 장점이 있으나 민주노총의 결의와 실천이 대중적이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당과 노조와의 관계설정도 불분명하게 정리되었기 때문에 배타적 지지가 민주노총의 방침이 되는 오류를 낳았다. ‘정치는 당, 노조는 생존권투쟁이라는 구도가 지속되는 한 정치적 대리주의는 노동자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으로 노동자정치세력화는 점점 거리를 벌려나간다.

 

노동자정당으로 보다 중요한 것은 당의 주체가 소외계층(중소 영세사업장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미조직 노동자)이 되어야 한다. 아울러 노동운동이 안고 있는 조직적 과제(실제로 기업별 노조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한계)와 노동자 생존권(민생)을 위한 투쟁이 끊임없이 전개되어야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런 투쟁이 쉽지는 않다. 그렇다고 의회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것도 아니다. 따라서 현 시기 노동자정치는 비제도적 과정(광장, 거리투쟁)이 주요하다. 의회를 통한 정치나 정부 속의 노동정치를 통해 노동정치의 전망을 세워낸다는 의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상누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조직 불안정노동자가 보호의 대상으로 분류되어 비주체로 전락한 것은 진보정치의 미래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근혜 파면과 함께 다가온 정치일정은 대선국면이다. 이런 시기에 조급하게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기에 앞서, 20여년의 역사에 담긴 노동자정당과 그간의 노동정치에 대해 냉정한 평가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동일한 정치세력화의 논쟁이 역사적으로 반복되고 있고 선거철이 지나고 나면 민주노총의 조직력이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하는지도 평가되어야 한다. 대중조직인 민주노총이 일상에서 침묵하다가 선기시기만 임박하면 정치조직에 대한 논쟁을 계속하는지도 규명되어야 한다. 또 한 가지 반복되는 것이 있다. 노동자당에 몸을 담았다가 노동계급의 전선에서 이탈한 명망활동가(?)가들이 보수,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품에 안기는 정치행보 또한 선거철마다 반복되는지도 매우 궁금하다. 촛불의 열기가 식기도 전에 눈앞에 와 있는 대선에서 노동자계급은 정치세력화, 노동정치에 대해 무엇을 해야 할까.

 

 
 
 
 
 
목록
 
이전글 <창조와 보급>노동자문화패의 일상활동 강화_정경원(99호)
다음글 1933년 3월 경남 혁명적 교원노동조합 결성_안태정 (98호)
 
10254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공릉천로493번길 61 가동(설문동 327-4번지)TEL.031-976-9744 / FAX.031-976-9743 hannae2007@hanmail.net
63206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중앙로 250 견우빌딩 6층 제주위원회TEL.064-803-0071 / FAX.064-803-0073 hannaecheju@hanmail.net
(이도2동 1187-1 견우빌딩 6층)   사업자번호 107-82-13286 대표자 양규헌 COPYRIGHT © 노동자역사 한내 2019.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