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봄을 희망한다
양규헌 (노동자역사 한내 대표)
자본주의 위기극복을 위한 이명박정권의 공세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통해 지탱하던 자본주의는 또 다시 공황을 맞게 되었다. 반복되는 자본주의 위기는 부분적, 일시적 위기가 아니라 전반적이고 총체적 위기이다. 지금의 위기는 세계를 휩쓸어온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더 이상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황을 극복하기 위한 자본의 전략은 노동자들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면서 자본의 위기극복을 위해, 노동자들의 모든 권한을 앗아가기 위한 일방적 전쟁을 시작했다.
재벌의 감세로 발생한 세수부족분을 메우기 위해서는 노동자, 서민들이 부담할 수밖에 없는 간접세비율을 높이고, 세수의 감소는 소득재분배기능인 노동자, 민중의 복지지원 예산의 감소로 귀결되고 있으며, 신자유주의의 임종을 지켜보면서도 역주행만 고집하는 이명박 정권은 미국 등 강대국은 챙길 것 다 챙겨 빠져나간 판인데 막장으로 거품에 올라타 기록적인 국가부채를 노동자, 민중의 몫으로 남겨둔 채, ‘4대강’과 ‘세종시’에 묻지마 예산을 퍼붓고 재벌을 위한 특혜 잔치판을 벌리고 있다.
노동정책이라는 일자리 확충은 불안정노동만 확산되고, 비정규노동자들의 기본권을 압살하기 위해 제도적 장치를 더욱 악화시켜가고 있으며, 공공기관 선진화는 정규직 노조의 약화뿐만 아니라 비정규직의 고용을 더욱 불안정고용으로 몰아가고 있다.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공무원, 교육노동자들을 길들이기 위해 교사, 공무원의 정치활동 자유를 유린하며 대대적인 서버압수수색을 강행하며 공무원, 교육노동자들의 정당한 정치활동은 범죄시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러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건설노조와 운수노조, 그리고 공무원노조에 노조설립신고마저 반려하고 있으며 그간 투쟁으로 확보한 건설과 화물노동자들에게 주어졌던 개량의 떡고물마저도 모조리 앗아가려하고 있다.
대중적 동력이 보이지 않는 대중조직은 그 자체가 위기이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노동운동은 자본의 총체적 공세에 무기력으로 일관하고 있다.
민주노총건설 이후 15년이 경과하면서 조직적 과제인 산별건설은 마무리 단계에 와 있다. 그러나 연대의 질, 산별적 기능은 찾아보기 어렵고 민주노조의 생명과도 같은 민주성과 투쟁성, 변혁지향성은 고사하고 노동조합의 기본기능인 ‘일상활동’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산별건설과정에서 수반되어야 할 재조직화는 미조직, 불안정노동자를 조직하지 못했고, 계급적 산별의 질은커녕, 비정규악법이 노동자를 억압하고 불안정노동으로 노동자계급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내 몰려도, 신자유주의 전략에 대응할 노동자계급의 전략을 제출하지 못했다. ’전투적 조합주의‘, ’변혁지향 노동운동‘을 비판한 대가로 등장한 ’사회적 합의주의‘와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은 민주노조운동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결과로 나타났고, 이 틈을 비집고 자본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통해 고용형태에 따른 분할지배 구도를 만들며 민주노조운동의 정체성과 더불어 이념과 노선도 앗아갔다.
집회에서 힘 있게 펄럭이던 ‘노동해방’의 깃발은 민주노조운동의 노선과 함께 내려지고 말았으며 선거 때만 등장하는 전노협정신은 민주성조차도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배타적지지방침’으로 노동자 대중을 대리주의로 전락시켰으며 조합원의 정치적 자유조차 억압하는 결과를 초래함에 따라 노동자정치에 함께 투쟁하기 보다는 방관자로서 전락하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을 포괄적으로 집약하여 ‘노동운동의 위기’를 말하고 있으며 해결방안을 어떻게 찾아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의 목소리들이 도처에서 들려오고 있다.
노동운동의 현실을 진단하고 평가를 하는 이유는 평가 속에서 해답을 모색하기 위한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한때는 국제적으로는 ‘찬란한 희망’으로 평가되었던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이 불과 십 수 년 만에 위기로 규정할 수밖에 없는 현재의 상황은 역동적으로 운동의 발전과 침체라는 분수령의 중요한 지점에 서 있다는 뜻일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의 위기를 총체적 위기로 규정하는 것은, 위기조성의 근거들이 계급내적, 외적으로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는 의미와 그에 따른 대중적 역동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을 말살하기 위한 자본의 전략은 갑자기 등장한 게 아니다. 노동자계급이 ‘삶의 질 향상’과 ‘기본권 보장’이라는 요구가 제출되기만 하면 자본은 ‘잉여가치 사수’를 위해 폭압적 탄압을 멈추지 않았다. 변혁적 노조운동이 확산되는 전노협건설시기부터 노동자계급 동력과 기본권을 압살하기 위한 중장기적 전략으로 오랜 기간 모색해 온 자본의 계획된 음모는 역사적으로 계속되어 왔다. 때문에 문제는 자본의 전략에 대한 노동자계급운동이 전략을 만들고 올바로 대응하지 못했으며 계급적 단결과 투쟁을 통해 해방세상을 향한 노동자계급의 미래에 대한 전망 없이, 대중적 결집을 소홀히 한데 그 원인이 있다는 게 정확한 진단이라고 생각한다.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도 노동자의식을 마비시키기 위한 자본의 전략은 있었으며 자유주의 세력들이 권력을 장악했어도, 자본을 위한 자본의 전략은 한시도 중단되지 않았으며 노동자는 그들에게 늘 억압과 굴종, 탄압을 통한 착취에 대상이었을 뿐이다. 근본적으로 노예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을 통해 노동해방 세상을 쟁취하고자하는 ‘변혁노선’은 민주노조운동의 ‘필연적 노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비즈니스(실리주의)노선, ‘사회적 합의주의’(코프라티즘)에 갇혀 그 빛이 퇴색되는 것은 오늘의 위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민주노조운동에 대중적 동력이 소진된 상태에서 ‘변혁노선만을 올바로 세우자’ 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을 복원해내고 노선을 분명히 하자는 것은 노동자 해방세상을 향한 노동자계급의 길이기 때문에 노동자계급이 함께하지 않으면 메아리 없는 외침만 허공에 맴돌 뿐이기에 대중조직의 기본을 찾아야 한다.
노동운동의 중심인 민주노총에 전망과 노선이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 대중조직의 기본조차 보이지 않는다는데 심각성이 있다.
노동자계급의 전망을 향한 노선을 복원하고 현장 투쟁동력을 조직하자
지금과 같은 시기에 가장 어려움을 겪는 것은 대중적 동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명박정권의 부자를 위한 정책이 노동자계급을 벼랑으로 내 몰아도 분산된 형태로 어떤 대응도 할 수없는 상황에서 투쟁선언은 메아리 없는 허공에 대한 외침뿐이다.
결정적 투쟁시기 마다 ‘현장과 조합원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투쟁을 미루고 회피하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변명이다.
노동조합의 운영, 기능은 ‘기본활동’과 ‘일상활동’에서 비롯되며 그 결과는 운동의 조직의 단결력과 투쟁결의로 나타난다. ‘일상활동’에 대한 기본적인 사업계획과 집행이 없는 상태에서 노동자 대중의 조직화는 파편화될 수밖에 없고 결국 무기력한 상태로 나타나는 것은 필연적 결과일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의 조직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조는 필요한 것’으로만 규정되는 것은 일상활동의 실패이다. 노동자가 사회적 주체로서의 의식과 계급정치의식을 갖지 않았을 때, 민주노조운동은 기능조차 하기 어렵다. 아무리 급박한 상황이고 정세라고 해도 ‘조직’을 하지 않고 투쟁동력을 기대할 수 없다. 쟁점과 모순에 대해 선전, 선동하고 현장에 토론을 통해 분노를 모아내고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 노동조합의 기본이다. 모순에 대한 투쟁의지를 결의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없는 것은 노동조합의 기본 기능이 마비되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고 중앙조직이 해야 할 임무와 역할이기에 지도부와 간부들은 “대중 속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대중으로부터 배운다”는 자세로 전환하는 것이 시급한 상황이다.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을 일상활동으로 확보하자
과거를 통해 현재를 조명하는 것은 역사적 경험을 통해 현재를 발견한다는 뜻이다. 민주노조운동의 역사는 폭압적 탄압에 계급적으로 맞서 당당히 싸워온 처절한 투쟁의 역사였다.
투쟁을 통해 전망을 발견하고 투쟁을 통해 계급적 단결과 계급의식을 습득하는 과정이었으며 투쟁을 통해 야만의 자본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기업별 노조의 체제에서 산별적 질을 확보하기 위한 연대투쟁의 함성이 그치지 않았고 수 천 명의 노동자가 해고되고 구속되어도 ‘노동해방’이라는 전망과 해방을 향한 변혁노선이 노동자계급의 희망이었다.
민주노조탄압에 대한, 노동악법에 대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대한 저지투쟁은 중앙조직의 ‘지침’으로 조직되지 않는다. 투쟁을 조직하고 그 성과로 탄압과 악법과 구조조정을 저지한다고 해도 그것은 일회적인 성과로 축적될 수는 있어도 야만과 광란의 자본주의가 계속되는 한 노동자계급의 고통은 멈추지 않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희망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고통의 근본인 자본주의를 끝장내고 해방세상에 대한 전망을 세워내고 새 세상을 향한 노동자계급의 변혁노선을 전재로 계급정치의 필연성을 선전, 선동하고 노동자대중을 조직하기 위한 기본활동과 일상활동을 해야한다.
노동해방에 대한 전망을 세우고, 기본활동과 일상활동을 강화하는 것은 분리된 사안들이 아니다. 상호 유기적 관계이며 상호 추동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목적의식적으로 조직되지 않으면 전략에 따른 전술이라고 할 수 없다.
과거를 통해 노동자의 봄을 맞이하자
민주노조운동의 위기를 진단하는 현 시기에 모색되는 실천방안은 이 범위를 넘어설 수 없다. 자주성과 민주성, 투쟁성과 계급성, 변혁지향에 대한 기본정신이 소멸된 상태에서 노동자계급의 전략은 민주노조정신을 복원시켜내기 위해 대중의 품으로 돌아가 토론을 조직해야하고 토론 속에서 노동자계급의 희망을 발견하고 살아 숨 쉬는 현장문화를 살려내는 것이 4, 5월 총파업이 형식적 지침이 아니라 계급투쟁을 조직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민주노총은 ‘지침으로 건설된 결과물’이 아니라, 10여년에 걸친 민주노조진영의 일상활동을 통해 조직된 ‘투쟁의 성과’로 건설 되었으며 그 투쟁의 중심에 늘 대중이 함께 했기에 민주노총은 건설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돌이켜보자. 노선이 없는 노동운동은 운동일 수 없듯이 ‘기본활동’과 ‘일상활동’이 보이지 않는 노동조합은 살아있는 노동조합이 될 수 없다.
이념과 노선을 다시 세워내고 민주노조운동에 있어서 활동의 기본인 일상활동을 복원해 내는 것은 긴 겨울의 얼음을 깨고 노동자의 봄을 앞당기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