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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내 회원이 된 까닭은?
배문석 (한내 회원)
이런 뜬금없는 질문이 어렵다. 처음 회원신청서를 쓸 때의 마음이 무엇이었든 그 생각을 갈무리해서 글로 적는 게 쉬워보여도 내겐 무척 껄끄러운 일이다. 그래서 이런 글을 청탁받는 게 후회되었다. 모질게 잘랐어야 했는데... 덕분에 마감기한을 며칠 넘겨서야 이렇게 궁상맞은 말들을 첫 운을 떼어 본다.
나의 전직은 현장 영상활동가 -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그리고 지금 몸담고 있는 민주노총 지역본부 상근자를 그만두게 된다면 다시 그 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처음 캠코더를 들고 다닌 게 1996년이니 어느새 햇수로 15년이 되었다. 어디 내세울 변변한 작품은 없지만 98년 현대자동차 고용안정투쟁을 시작으로 울산에서 벌어진 수많은 노동관련 사건 사고가 내 카메라를 거쳐 갔다.
최근 몇 년 카메라를 놓고 살았지만 내가 찍었던 테이프들이 아직도 몇 박스 분량으로 쌓여 있다. 한창 작업을 할 때는 찍은 영상을 편집해 바로 속보동영상으로 인터넷으로 올리고, 투쟁이 한 단락 매듭지어지면 크고 작은 작품으로 재가공해 상영하곤 했다. 2000년 현대중공업 해고자 투쟁, 2001년 화섬3사 파업과 울산총력투쟁, 2002~3년 현중 어용노조 등장, 2004년 현중 사내하청 박일수 열사투쟁, 2005년 울산건설플랜트 투쟁 영상 등이 그 결과물들이었다. 현실 투쟁을 기록하는 것은 바로 역사가 된다. 몇 년이 지나 그 투쟁을 이야기 할 때 다시 화면을 통해 보면 그 당시의 모습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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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문석 감독 작품, 박일수 열사 투쟁을 다룬 <절망의 공장>, 2004년 작
그런데 나의 영상작업 중 숨겨진 주특기가 있다. 역사를 정리하는 편집하는 힘이다. 울산에 내려오기 전 아주 짧게 KBS에서 VJ생활을 경험 할 때의 작품이 ‘이제는 말한다 - 광주민중항쟁’이었고 그 경험들은 노동운동의 역사를 정리하는 데 고스란히 옮겨졌다. 현대중공업노동조합의 역사를 정리하는 일련의 작업을 시작으로, 전교조울산지부를 비롯해 지역 노동조합 역사나 민주노총울산본부의 사업을 정리하는 것이 늘 내 몫이 되곤 했다.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은 지금의 내가 딛고 있는 현재를 더 깊게 이해하는 과정이라 말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힘이 들 때 과거를 떠올리며 위안을 얻는 것도 하나의 방편일 테니. 하지만 넘치는 것은 모자라는 것보다 못하다는 공자님 말씀처럼 지난 시절에 매몰되는 것은 또한 마땅히 경계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나는 역사를 이해할 때 뼈아픈 순간들을 집어내고 되풀이되는 수레바퀴처럼 돌아오는 위기에 대처하는 법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역사를 기록하고 정리하는 직업의 특성은 지금 일하고 있는 민주노총 울산본부에서도 발휘되었다.
재작년 1987년 노동자대투쟁 20주년 기념사업을 1년 동안 진행하고 그 후속사업을 맡고 있다. 또 울산지역 노동열사 계승사업 담당이기도 하다. 그런 일들 속에서 한내와의 만남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한내가 준비되기 전부터 가깝게 지내며 도움을 얻었던 이들 때문이라도 회원가입을 미룰 수 없었던 이유였다.
요즘도 서울에 출장을 가게 되면 영등포 한내 사무실에 들러본다. 커피 한잔에 수다 몇 푼 떨고 돌아오는 길이지만 한내가 담고 있는 노동자 역사의 그릇을 고맙게 여긴다. 울산에서 노동자 역사 자료를 모으고 정리해온 지난 3년의 시간이 지지부진해서 성이 안차다 한내를 보면 살짝 고무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나는 한내가 큰 여울을 만들면서 흘러가기를 바란다. 서울에 한내가 그런 너비와 깊이를 갖춘 만큼 울산과 창원 그리고 대구, 광주, 부산 등 지역의 노동역사자료실도 만들어지고 크고 작은 흐름으로 합쳐질 수 있다고 믿으며 조력하고 싶다.
지금은 답답하고 또 고리타분하거나 때로 후져(?) 보이는 노동운동의 역사가 어떤 궤적을 그리면서 다시금 도약하고 전진해 나갈 것인가? 그 힘은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어디로 향할 것인가? 그런 역사를 똑똑히 지켜보는 일은 한내를 아는 우리의 몫이다. 내가 걸어 갈 삶이자 가장 잘하고 좋아하는 일 중 하나이기 때문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