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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살아온 길
..... 양규헌의 ‘내가 살아온 길’ ㉒ 현상금까지 걸린 수배생활
첨부파일 -- 작성일 2022-08-31 조회 148
 

전지협과 ‘3자개입금지법

공동 임단투의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던 1994년 투쟁의 중심에는 전지협이 있었다. 전지협은 서울지하철노조, 부산지하철노조, 전기협(전국기관차협의회)이 결성한 조직으로, 당시에는 서울지하철노조가 투쟁의 열쇠를 쥐고 있었다. 서울지하철은 또한 전노협 소속사업장이기도 해서 역량을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창신동 허름한 식당에서 김연환 서울지하철노조 위원장을 여러 번 만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지협 투쟁을 조직했다는 이유로 김영삼 정권은 권영길 위원장과 나에게 현상 수배와 체포경찰관 특진까지 내걸고 체포에 열을 올렸다. 국제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3자개입금지법은 정상적인 입법절차를 거친 것이 아니라 전두환 정권 시절 임시 행정기구인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서 노동자 투쟁을 압살하기 위해 만든 악법이었다. 그런데도 김영삼 정권이 국제적으로 지탄받는 3자개입금지법 위반으로 현상 수배까지 한 것은 대로가 아니라 정치적 전략이었으리라.

하루는 파출소 앞을 지나는데 게시판에 붙어있는 수배자 전단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 적힌 나에 대한 현상금은 500만 원이었는데, 나란히 붙어있는 흉악한 살인범 현상금도 500만 원이 넘지 않았다. 거기에 우리는 체포경찰관 특진까지 걸렸으니 ‘3자 개입은 살인범보다 더 흉악한 범죄자라는 뜻일까? 잠시 씁쓸함이 스쳐 갔다.

수배상태가 활동에 불편을 초래하는 건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활동을 안 할 수는 없었다. 투쟁의 파고를 높이는 것이 김영삼 정권에게 타격을 가하고 조직적으로는 민주노총건설의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판단했기에 비밀리에 지역순회를 통한 투쟁사업장 조직화에 집중했다.

 

체포된 동지를 남기고

명륜동에 있는 성균관대에서 전노협 중앙위를 마친 뒤 양재동에서 저녁을 먹고 과천 쪽으로 넘어가다가 검문을 당했다. 차에는 수배 중이던 나와 권영길 위원장, 단병호 위원장, 그리고 경기노련 사무처장 오관영(원태조·박성호 열사투쟁으로 수배)이 타고 있었고, 이창환 전노협 문화부장이 운전하고 있었다. 차에 탄 5명 중 이창환을 제외하고는 모두 수배상태였다.

경찰이 신분증 제시를 요구했고 권영길, 단병호, 이창환, 나는 신분증을 공손하게 건넸다. 그런데 오관영이 신분증을 안 가져 왔다고 버티다 주민등록번호를 알려줬는데, 자신의 형인 오우영의 번호였다. 4명의 신분증을 가져가서 신원조회를 마친 경찰은 협조해줘서 고맙다고 하더니 오관영에게는 내리라고 하며 집 전화번호를 물었다.

경찰이 오관영 집으로 전화를 하니, 어머니가 전화를 받으셨다. 어머니에게 오우영 씨가 여기 있어서 확인 차 전화했다고 하자 어머니는 우영이 지금 자고 있는데 무슨 말이냐고 했고, 경찰은 죄송하지만 좀 깨워서 바꿔달라고 했다. 결국 오우영 씨가 전화를 받았고 경찰이 여기 오우영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본인 아니죠?”라고 물으니 오우영씨 왈 어떤 개새끼가 늦은 시간에 다른 사람 사칭하냐고 항변하는 바람에 오관영은 꼼짝없이 잡히고 말았다.

문제는 차에 앉아 있는 3명의 수배자였다. 동지가 한 명 잡혔으니 당연히 항의하고 싸워야 하지만 진퇴양난이었다. 잠시 논의한 끝에, 치사하지만 우리는 이 자리를 빨리 피하는 게 현명하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경기노련 박은호 동지에게 연락해서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빨리 와서 조치하라는 말만 남긴 채 우리는 그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 같이 이동하던 동지가 체포되는 상황을 보면서도 항변조차 할 수 없어 더러운 기분이었다.

 

삐삐가 울리면

현상수배에 특진까지 걸리면 경찰서별로 전담반이 구성되고 또 경찰관들이 사비를 털어서 별도의 수배전단을 만들기도 하고 영상까지도 제작한다고 했다. 특히 50대 이상 경찰관들은 한평생을 경찰 생활을 해도 계급이 경사를 넘지 못한다. 그런데 경찰대학을 나온 경찰관은 곧바로 경위를 달고 경찰서에 배치되니, 20대 후반이 50대를 지휘하는 꼴이다. 경찰은 계급 사회이다 보니 진급이 그들의 꿈이지만 쉽지 않았다. 다만 특진이 걸린 공안사범이나 강력범을 체포하면 그들이 평생 안고 살아가는 설움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특진이 걸린 수배자에게 수사망은 끊임없이 좁혀온다.

팔뚝만 한 전화기를 하나 가지고 있었지만, 그 전화기를 사용하기는 어려웠고 핸드폰이 대중화되지도 않은 시절이었다. 통신기기는 주로 삐삐’(무선호출기)를 이용했는데, 번호 열두 자리를 최대한 활용해 연락을 주고받고 약속장소와 날짜, 시간을 정하기도 한다.

상대방이 나에게 보내는 번호에 미리 약속을 정해둔다. 난수표와 비슷한데, 장소가 주기별로 달라지지만 10곳의 장소에 고유번호가 있고 날짜 칸과 시간 칸을 정해서 활용하는 것이다. 나에게 통화를 요청할 때는 전화번호를 그대로 넣는 것이 아니고 1, 2, 3, 4, 5, 6을 더하기도 하고 빼기도 하는데, 홀수 날짜와 짝수 날짜에 따라 덧셈과 뺄셈이 달라진다.

쌍문동 안가에서 홍은동 힐튼호텔 회의에 가는 도중에 삐삐가 울렸는데 들어온 번호가 생번호였다. 생번호라는 것은 변조(덧셈이나 뺄셈)를 안 한 번호가 들어왔다는 것이다. 모든 지역 번호는 0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변조가 안 된 번호는 앞자리를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모처럼 생번호가 들어오니 호기심이 발동했다. 정릉 길 도로 옆 공중전화 부스에서 삐삐에 들어온 생번호로 전화해서 삐삐하신 분 있냐고 했더니 친절하게 위원장님, 이 정도면 거의 끝난 거 아닙니까? 기왕 정리하시는 거 저희를 통해 정리하시죠?” 한다. “개새끼야 엿이나 먹어”(실제는 더 심한 욕) 하고 끊었다. 삐삐는 보름 이상을 소지하고 있으면 그 자체가 노출되는 모양이다. 그 후로 삐삐의 수명은 1주일로 단축됐고 그만큼 주변의 동지들이 힘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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