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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살아온 길
..... 양규헌의 ‘내가 살아온 길’ ㉕ 전노협은 역사 속으로
첨부파일 -- 작성일 2022-12-29 조회 49
 

민주노총 준비위원회 출범

1994년 노동자대회 하루 전날인 11월 12일 경희대 노천극장에서는 전야제가 펼쳐졌다. 전야제는 ‘건설 민주노총, 자주적 단결권 쟁취’라는 불 글씨가 점화되고 불꽃놀이가 펼쳐지면서 절정에 달했고 새벽 2시가 되어서야 막을 내렸다.
전노대(업종회의·자총련) 쪽에서 다음날 열릴 민주노총준비위원회(아래 ‘민주노총준비위’) 출범식에서 낭독할 대회사를 사전에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빗발쳤다. 전노대 때부터 대회사는 민감한 부분이었는데, 내용보다 누가 할 것인지가 관건이었다. 논란 끝에 노동절대회는 업종회의 대표가 노동자대회는 전노협 위원장이 대회사를 하기로 정리된 바 있다. 노동자대회에 민주노총준비위 출범을 선언하기로 했으니 순서상 내가 대회사를 할 차례였다.
왜 대회사에 관심을 두는지 대충 알고 있었다. 조직발전 전망과 관련한 민감한 쟁점들이 있기에 우려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전노협과 업종회의의 정서에 차이가 있다는 점의 반증이기도 했다. 나는 대회사를 사전에 보여주지 않았다. 지금까지 권영길 위원장과 교대로 대회사를 해왔으나 한 번도 사전 검열을 받은 적은 없기 때문이다. 11월 13일 경희대학교, 민주노총 추진위원회가 주최한 ‘민주노총 건설을 위한 전국노동자대회’가 시작됐다. 나는 대회사를 낭독했다.
“동지 여러분! 24년 전 오늘, 한 점 불꽃이 되어 산화해 가신 전태일 열사를 비롯한 모든 노동 열사들의 피맺힌 한을 담고, 1천만 노동자의 노동해방 열망을 담아 벅찬 가슴으로 선언합니다. 1994년 11월 13일 오늘,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가 발전적으로 해소되고 민주노총준비위가 발족했음을 여러분 앞에 엄숙히 선포합니다!”

전노협은 역사 속으로
민주노총이 건설되는 시기에 나는 수배 중이었고 문성현 총장은 구속 중이었다. 그 상황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사무총국 동지들의 업무배치였다. 사무총국 동지들은 민주노총과 금속연맹으로 가는 동지들과 못 가는 동지들로 나뉘었다. 복잡한 상황에서 수행을 책임졌던 김종배 동지가 자청해서 <전노협 백서> 발간에 몸을 담갔다. 대부분의 사무총국 성원들이 운동의 열정을 녹여 낼 일자리를 찾는 와중에 ‘전노협 6년’을 백서에 담아 노동운동사적으로 커다란 흔적을 남긴 동지들의 헌신과 운동성은 제대로 평가되어야 한다.
숱한 토론과 논쟁을 거치며 민주노총이 출범했다. 준비위 기간에 강령규약과 임원진, 사무처 등이 꾸려졌기 때문에 어려움은 없었지만, 민주노총 초기에 진행해야 할 사업 때문에 회의는 분주하게 돌아갔다. 그러는 와중에 ‘제3자 개입’으로 수배 중이던 권영길 위원장이 구속됐고, 민주노총 회의는 서울 시내 대학을 돌아다니면서 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대에서 민주노총 회의를 하던 중 부위원장 한 명이 밑도 끝도 없이 “전노협은 왜 해산을 안 하는 거야?” 라고 한다. 순간 회의를 진행하던 내 얼굴이 험악해진 모양이다. 전노협 해산대의원대회가 잡혀 있는 민감한 시기에 기분이 언짢은 것은 당연했다. 일부 임원들이 정회를 요청했고 10분 쉬었다가 속개하기로 했다.
전노협 해산 운운하는 발언을 한 민주노총 부위원장을 옆 교실에서 잠깐 보자고 했다. 그 교실에 들어가는 순간 손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간신히 참는 대신 욕을 퍼부었다. “네까짓 게 전노협에 한 게 뭐가 있다고 전노협 해산을 들먹이냐. 한 번만 더 그런 소리 하면 가만 안 두겠다”고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
전노협 6년은 민주노조운동의 격동기를 달려왔으며 길지 않은 동안 살인적인 탄압에 맞서면서도 숱한 논쟁과 아울러 많은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전노협이 해산되고 역사의 뒤안길에 나풀거리고 있지만, 운동의 발전을 위해서 전노협 6년은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 평가 내용은 전노협 해산대의원대회 전날(1995년 12월 2일)에 진행한 ‘전노협 운동 6년 평가와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과제’ 토론회* 자료에 잘 정리되어 있다.
* 전노협후원회, 민교협, 학술단체협의회가 주최하고 김진균(서울대) 전노협 고문, 임영일(경상대) 영남노동운동연구소 부소장의 공동발제했으며, 양규헌, 윤재건(현대중공업노조), 남구현(한신대), 윤진호(인하대) 등이 토론자로 나섰다. 4백여 명의 노동자, 시민, 학생들이 토론회장을 가득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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