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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살아온 길
..... 양규헌의 ‘내가 살아온 길’ ㉔ 안전하지 않은 안전가옥
첨부파일 -- 작성일 2022-11-01 조회 109
 

안전하지 않은 안전가옥

 

수배자들에게 안가(안전가옥)는 매우 중요하며 구하기도 쉽지 않다. 절대적인 보안이 유지돼야 하기 때문이다. 체포 압박이 심해질 때는 안가를 1주일 이상 사용할 수 없어서 수시로 거처를 옮기는 불편을 감당해야 한다. 

상계동으로 안가가 정해졌다고 해서, 수행(이창환)과 둘이 워드프로세서와 단출한 짐을 꾸려 상계동으로 갔다. 그 집은 유초하 교수의 아파트였다. 유 교수가 반갑게 맞이했고 이내 술병을 들고 나왔다. 8월 중순 찜통더위로 숨이 막힐 지경인 데다 술 생각도 별로 없었지만, 집주인이 마시자는데 어쩌겠는가. 

나와 수행 동지와 유 교수는 상견례 겸 술을 마셨다. 대병에 담은 소주를 반병 정도 마셨을 때 사모님이 오셨다. 술상을 들여다보면서 하는 말이 “남자들이 왜 이렇게 쪼잔시럽게 술을 마시냐”며 소주잔을 걷어가고 맥주 컵을 들고 나왔다. 거기다 소주 대병을 한 병 또 들고나오며 하는 말이 “이렇게 더운데 옷은 왜 입고 있냐. 벗어라.”고 한다. 벗으라는 기준이 유 교수 정도였을 것이다. 

유 교수는 홀랑 다 벗고 팬티 하나만 걸쳤는데, 우리는 아무리 술을 마셨고 더워도 벗을 수가 없었다. 사모님은 편하게 해 주신다고 몇 마디 더 하신다. “와서 있는 동안 내 집같이 편하게 지내셔라”고 하는데 그 말이 더 불편하게 들렸다. 

저녁 늦어서야 술자리가 끝났다. “우린 어느 방을 써야 하냐”고 잠자리를 물어봤다. 사모님은 그 질문을 얼른 받아 “같은 식구인데 무슨 방 얘기를 하냐”며 “거실에 자고 싶으면 거실에서 자고 아무 방이나 들어가서 자고 싶으면 들어가서 자라”고 한다. 그러며 덧붙여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앞으로 술은 많이 마시지 말고 1인당 대병 한 병씩만 마시자”고 하는 말에 질려버렸다.

문간방에 들어와서 수행과 둘이 이 사태를 어찌할 것인지 논의했다. 이 집에서는 업무처리와 점검 등을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내일 아침 일찍 안가를 옮기기로 했다. 예정대로 안가는 옮겼는데, 그다음 날 신문에 유 교수 집은 사민청(사회민주주의청년연맹) 조직사건으로 압수수색 당하고 유 교수는 안기부에 잡혀갔다는 기사가 떴다. 하루만 더 머물렀으면 나도 안기부에 잡혀갈 뻔했다.

 

 

통닭구이 될 뻔했다

 

안가를 부정기적으로 사용했던 곳은 홍대 입구에 있는 ‘착한 집’이었다. ‘착한 집’이라는 이름은 수행팀이 붙인 것인데 그 집 부부가 워낙 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착한 집’에서 인천 쪽에 있는 안가로 옮기는 날이었다. 차에서 덜덜거리는 소리가 들려 카센터에서 수리를 하고 경인 고속도로를 따라 인천 쪽으로 가는데 사이드 브레이크 틈새로 불길이 확확 올라왔다. 차 안은 열기로 가득하고 차량 하부에 불길 번지는 소리가 달리는 속도에 따라 후룩후룩 들려왔다. 급히 고속도로 출구로 나갔는데 바로 공단이었다. 부평공단이었던 것 같다. 처음 보이는 회사 정문으로 무작정 진입했는데 경비가 가로막았다. “차 아래에 불이 붙어 통닭 되게 생겼다”며 쓰레기장이 어디냐고 소리쳤다. 당황한 경비가 손짓하는 쪽으로 차를 몰고 가서 쓰레기장 옆에 있는 수도 호스로 차 밑바닥에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차량 마후라(소음기)를 중심으로 불길이 많이 번졌지만 굵은 호스 덕분에 불길이 잡혔다. 

경비가 왜 그러냐고 묻는다. 내가 차량 수리 전문가도 아니고…. “이유를 모르겠는데 고속도로에서 불이 붙어 어쩔 수 없이 여기로 왔다”고 했다. “쓰레기장에 수도꼭지가 있는 건 어떻게 알았냐”며 신기한 듯 쳐다보는데, 수배자 처지로는 쳐다보는 자체에 긴장할 수밖에 없다. 

경비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다시 안가 쪽을 향해 출발했는데 사이드 브레이크 틈새로 또 불길이 올라온다. 급히 근처 카센터로 가서 불을 껐다. 확인해보니 홍대 입구 카센터에서 덜덜거리는 소리를 잡는다고 마후라 전체 틈새에 기름걸레를 꽉꽉 채워 마후라를 고정시켜 놓은 것이 사달이었다. 

멀쩡할 때 같으면 당장 그 카센터를 찾아가서 난리를 쳤겠지만, 수배자라는 신분 때문에 그냥 넘길 수밖에 없었다. 카센터에서 마후라에 붙은 기름보루를 치우느라 난리를 떨고 있는데 인천 안가를 소개한 신재걸 동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왜 이렇게 안 오시냐”고. “안가고 지랄이고 오늘 통닭구이 될 뻔했다”고 했는데도, 알아듣지 못한 건지 알아듣고도 그러는지 별 반응이 없었다. 그것도 성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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