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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창노련 탄압과 이흥석 의장 석방투쟁
⦁ 시기 : 1988년 7월7일
마산창원지역에서는 1988년 7월 초부터 구사대가 한국소와를 시작으로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이에 한국소와노동조합민주화추진위원회는 마창지역 노동자들에게 한국소와노조 민주화투쟁을 지지해줄 것을 호소하며 살인적 폭력 만행에 맞서 싸웠다.
이러한 호소에 동광노조 위원장이 한국소와 노동자들의 식사를 위해 빵과 우유를 가지고 방문했으나 구사대에 끌려가 담뱃불로 지지는 등의 무자비한 폭행을 당했다. 이러한 폭행에 분노한 한국소와노민추 회원들은 다음날인 7월 7일 폭력만행 규탄집회를 열었고, 마창노련 소속 조합원 약 200여 명이 집회에 동참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소화기, 쇠파이프, 각목으로 무장하고 대기하던 한국소와 구사대들이 경찰과 근로감독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남성노동자들이 실신할 정도로 무차별적인 폭행을 자행했다.
이에 마창노련은 7.7폭력사태에 대한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으나, 도리어 7월 15일 오전 이흥석 의장 등 4명(장동현, 남양우, 이종관)이 연행되고 자진출두한 사람조차 전격 구속됐다. 이를 계기로 마창지역 노동자들은 10여 일 간 격렬한 가두투쟁 끝에 구속됐던 이흥석 의장을 기소유예로 풀려나게 함으로써 마창지역 민주노조운동을 정착시키는 단계에 들어갔다.
1988년 상반기 투쟁을 통해 마창지역은 마창노련을 중심으로 각 노조의 투쟁에 대한 상호지원과 연대, 그 투쟁성으로 전국노동자에게 모범을 보였을 뿐 아니라 내부역량을 강화시켜 왔다. 이에 정부는 안기부 등의 대공수사기관까지 동원해 이흥석 의장을 비롯한 마창노련 간부의 동태를 살피고 공갈협박까지 일삼아 왔다. 이번 구속사태는 지금까지 자행돼온 일련의 탄압을 본격화한 것으로 마창노련의 핵심 지도자를 제거함으로써 마창노련을 파괴하기 위한 계획된 탄압의 시작이었다.
나아가 마창노련에 대한 탄압은 각 지역이 지노협을 결성해 연대하는 것에 대한 탄압이기도 했다. 지노협에 대한 탄압은 인노협 황재철 의장과 서노협 배일도 위원장 구속에서 볼 수 있듯이 수개월 전부터 준비되었다. 이는 전국의 핵심이라 할 만한 지역의 지노협 활동을 핵심간부 구속으로 위축시키고, 상반기 임금인상 투쟁성과를 뒤엎겠다는 의도였던 것이다.
특히 이흥석 의장이 ‘전국노동조합노동법개정특별위원회’ 위원장이며, 지노협이 노동법개정 투쟁을 통해 전국 단일대오를 형성해나가는 한편 이를 발판으로 전국적 연대조직을 건설해 나가야 하는 중요한 과제를 앞두고 있던 때였다. 결국 이 같은 탄압은 단순히 각 지역에 대한 탄압을 뛰어넘어 노동자의 전국적 연대를 원천봉쇄하고자 한 것이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은 이 투쟁을 통해 탄압음모를 분쇄하고 구사대폭력 추방과 민주노조 사수, 노동조합의 지역적 연대의 강화와 전국적 연대의 전기를 마련해냈다.
⦁ 참고자료 : 마창노련, 「마창노련 이흥석의장 외 3명 석방투쟁 일지」(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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