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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자계급에게 새해는 오지 않았다
첨부파일 -- 작성일 2010-01-05 조회 865
 

노동자계급에게 새해는 오지 않았다

양규헌(노동자역사 한내 대표)

강한 북풍과 폭설이 한파를 몰고 와 세상을 삼킬 듯 몰아치지만 그 바람에 맞서는 앙상한 가지들은 씽씽거리는 함성으로 저항하고 있다. 1년 가깝게 모르쇠로 일관하던 용산학살 건이 우여곡절 끝에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용산투쟁을 승리라고 할 수는 없으나, 장례를 치를 조건을 확보했다는 정도에 만족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5명의 철거민들이 학살된 후 1년 가까이 진행된 투쟁의 성격은 이명박 정권의 반민중성과 폭력성을 폭로해 내고 살인진압에 대한 진상을 규명한다는 기조로 짧지 않은 투쟁을 해 왔으나, 투쟁동력의 한계로 말미암아 ‘승리’보다는 일정한 성과에 만족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우리의 객관적 조건이다. 미국 발 금융위기로 시작된 공황은 우리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본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자본주의의 위기 자체를 모조리 노동자계급에게 전가해 왔다. 이 같은 상황이 쌍용자동차에 적용되면서 자본과 정권은 자신들의 잘못을 책임지지 않고 오로지 노동자를 희생시켜 위기국면을 해결하고자 했다. 결국 경찰특공대를 동원한 살인적 진압으로 정권과 자본은 쌍용자동차의 대미를 장식하고 말았다. 민주노조운동의 침체, 민주노조운동의 위기까지 이야기되는 한해를 보내고 또 다른 해를 맞고 있다.

마주하는 사람들마다 형식적인 인사말이 오간다. 휴대폰 문자에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가 여기저기 어지럽게 엉켜진다. 약속과도 같이 이때쯤이면 오고가는 새해 인사는 엄동설한에 건조하게 전해지고 있다.

우리들에게 ‘새해’와 그리고 그 뒤에 붙어오는 ‘복’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것은, 해마다 오고 속절없이 가버리는 것이 새해가 아닐 것이다. 즐겁게 ‘들어서는 날’, 보람찬 삶의 설계를 ‘세우는 날’, ‘시작하는 날’, ‘약속의 새날’을 새해의 의미라고 한다. 우리에게 새해는 새로운 희망을 가슴에 담고 미래를 향한 전망을 앞당기는 의미라고 봤을 때 노동자계급의 새해는 아직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다.

이명박 정권은 모두가 잠든 새벽에 좀도둑들이나 하는 짓거리로 노동법개악을 감행했다.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새해는 이렇게 암담하게 다가오고 있을 뿐이다. 단결의 자유를 압살하는 대표적인 악법인 ‘복수노조금지조항’이 없어지고 복수노조가 형식적으로는 허용된 것으로 보이지만, 오히려 노동자를 자본의 입맛대로 통제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한 것이며,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조차 위배하는 악법 중에 악법을 통과시켜 버렸다. 이 법의 위법성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노동운동의 기본조건을 말살하는 결과임에 틀림없는 사안이다. 다시 말해 이는 노동자계급에게 전쟁을 선포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러나 한해의 시작을 맞는 노동자계급의 분노는 떨어진 수은주에 얼어 엉겨 붙어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한해의 시작이 자본주의 문명의 썩은 이물질들의 악취가 모든 가치를 압도하며 진동하고 있다. 오로지 가진 자들만의 특권을 보장하기 위해, 노동자, 민중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자유마저 박탈당하는 현실이다. 노동자계급에게 현실 속의 새해는 새해가 아니라 좌절과 절망의 상황이 연장되는 묵은해의 연속일 뿐이다.

새해인사에 바늘에 실처럼 따라붙는 말은 ‘복’이라는 말이 있다. ‘복’이란 말을 통속적으로 해석하면 재앙도 당하지 말고, 억압, 착취를 당하지 말라는 뜻과는 다르다. ‘복 많이 받으라’는 말은 어떤 ‘행복, 행운을 만끽하라’는 매우 추상적 의미가 담겼다고 생각된다. 또 최근 새해 인사에 따라붙는 말이 하나 더 있는데, ‘대박’을 터뜨리라는 말이다. 이 말은 생각지도 않게 큰 수확이나 이윤을 취했을 때 쓰는 말로서 투기적 성향으로 오늘의 고통을 감내하라는 뜻이 담겨있다. 이 또한 노동자계급과 거리가 있는 말이다. 결국 환상적인 희망을 안고 현실에 대한 저항과 불만을 버리고 체제와 저들의 논리에 순응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지 않겠는가.

좌절과 절망, 그 속에 자리하는 패배주의와 허무주의는 쉼 없이 노동자계급을 괴롭혀 왔다. 그러나 우리의 민주노조운동은 노동자계급의 미래를 위해 불굴의 투쟁정신으로 야만과 광란의 자본에 맞서 투쟁해 온 역사가 있고 그 과정을 민주노조운동의 역사라고 한다.

철저하게 자본의 이윤확대를 위해 혈안이 된 이명박 정권의 반 노동자적 정책이 한해를 맞이하는 노동자들에게 위협으로 다가오겠지만, 노동자계급은 더더욱 굳은 각오로 투쟁을 결의해야 한다. 그간 우리는 계급적 단결과 투쟁을 통해 노동자의 기본권을 쟁취했던 과정이 있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제도적 모순을 부수고, 투쟁을 통해 반 노동자적 체제에 도전해야 하며, 역사의 주인일 수밖에 없는 노동자계급이 노동자세상을 만들기 위한 전망을 안고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 위력을 발휘하듯이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임무를 향해 차근차근 투쟁을 준비해 가야 한다. 그 시작이 노동자계급의 ‘새해’가 될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삶이 목적 없는 인생처럼 흐느적거릴 때, 맑고 잔잔한 해방의 ‘워낭소리’가 변혁의 길을 걷고 있는 우리들의 무거운 짐을 나눌 것이며, 새해 아침 동천에 붉게 타오르는 태양의 기상이 노동해방의 전망으로 승화될 때, 우리들의 새해는 성큼 다가설 것이다. 그럴 때만이 연두색 저고리에 자주 빛 끝동을 휘날리며 건네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말이 가슴에서 솟아나는 정겹고 신선한 언어가 될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투쟁 결의를 모아 심장의 더운 피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를 나눌 수 있는 날을 결의하며 2010년을 맞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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