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내를 기록하다 (6) 노동자역사 한내 첫 사업, 마창노련 자료 전산화 정경원(노동자역사 한내 사무처장) 한내를 준비하면서 했던 첫 번째 사업은 마창노련 자료 전산화였다. 이 일은 전노협백서를 만들 때부터 구상했던 일이기도 하다. 마창노련도 해산과 함께 백서를 만들기 시작했다. 지역 운동 백서는 소속 사업장 노조와 지역조직의 관계 그리고 전노협의 관계를 보여줄 수 있기에 중요성이 크다. 역으로 말하면 수집할 자료가 더 많고, 정리할 내용이 세세하며 분량도 많다는 말이다. 김하경 선생님을 집필자로 하고 지역에서 노동운동을 함께했던 이들이 결합하여 사업장의 자료를 꼼꼼히 모으고 없는 것은 복사해 정리하고 일일이 입력하여 창립부터 해산까지의 활동을 정리했다. (이렇게 정리된 자료에 감명 받아 마창노련 자료 정리를 주제로 기록학 석사 논문이 나올 정도였다.) 김하경 선생님이 창신동 전노협백서 사무실에 방문하신 적이 있다. 같은 고통을 겪는 이들이 모여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는데 그게 다 백서 작업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것들이었다. 없는 자료는 어디서 찾을 것인가, 자료를 분류할 때 기준, 모호한 자료를 어떻게 할 것인가, 보관을 어떻게 해야 활용도 하고 보존도 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이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들 수 있을까...... 당시 전노협 백서팀이나 마창노련 백서팀이나 목디스크 증세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백서를 다 만들어봐. 그럼 씻은 듯이 나을 거야.”라는 김하경 선생님 말씀을 훗날 그대로 경험하기도 했다. 마창노련 백서는 [내사랑 마창노련]이라는 제목으로 1999년 6월 두 권으로 발간되었다. 소설가가 썼기에 역사가가 쓴 것과 다를 수 있고, 기록이나 평가에 한계가 있다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한 시대 노동운동을 대중이 읽기 편하게 정리했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길을 낸 기록문학이라고 볼 수 있다. 
2008년 7월에 마창노련 자료를 한내로 옮기는 모습. 마창노련 자료는 김하경 선생님 댁에서 노동사회교육원으로 옮겨 보관되고 있었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전산화를 결정했다. 전노협 자료와 마창노련 자료 그리고 단위사업장 자료가 전산화된다면 중앙-지역-단위사업장을 잇는 사업을 훗날 다양하게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비용은 한내와 마창노련기록물관리위원회가 50%씩 부담하기로 했다. 재정 확보가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기록물관리위원회는 3천만 원을 들고 한내로 왔다. 2008년 7월 자료를 옮겨와 목록화, 전산화하는 데 2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이후 한내가 보전할 것을 전제로 기증하였다. 이 작업의 대부분은 고복수 님이 해주셨다. 고복수 님은 국민은행을 퇴직하신 분이었다. 지인 소개로 한내를 방문하셨다가 자원봉사를 자처하셨다. 그렇게 4년을 함께하셨다. 노동관련 단어도 단체 이름도 모르시던 분이 독수리 타법으로 목록을 정리하셨지만 꾸준함 앞에 명함을 내밀 사람은 없었다. 한내 문서보존 상자에 붙어있는 정리자 이름의 대부분은 ‘고복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