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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시티헌터>를 키워내자
양규헌(노동자역사 한내 대표)
지난 7월말 종영된 SBS드라마 <시티헌터>가 장안에 화제가 되면서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시티헌터>는 사회악을 제거하는데 앞장 서는 도시 사냥꾼의 이야기다. 시대적 배경은 과거 전두환 정권에서 시작된다. 북파된 특공대들이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중, 특공대원들은 국가를 위해 모조리 죽임을 당한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가 있었고, 생존자 이진표는 자신의 동료들을 죽인 5인, 소위 '5인회'에 대한 복수의 칼날을 갈게 된다.
살아남은 이진표가 복수를 하기 위해 '5인회'의 부인으로부터 아들을 빼앗아 <시티헌터>를 만든다. 동남아에서 마약, 무기밀매 등으로 하나의 나라를 세우고, <시티헌터>를 무자비한 킬러로 훈련시키고, 성인이 되어서는 미국에서 박사학위까지 받게 하여 <시티헌터>를 청와대에 입성시킨다. 복수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5인회'는 현재 대통령, 재벌 총수, 대학이사장, 국회의원 등 권력핵심집단이다.
권력으로 군림하는 '5인회'멤버들을 하나씩 찾아가며 복수를 하는 구도가 사회적 쟁점을 다루기에 매우 편리하게 전개된다. 권력에 의한 군납비리와 반값등록금, 의료민영화와 산업재해의 문제, 대학재단의 비자금운영문제 등, 현 사회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사안들이 다이나믹하고 긴박하게 전개된다. 이 드라마에서 눈길을 끄는 부분은 산업재해와 반값등록금이다.
대학의 이사장인 김종식은 학생들의 등록금에서 빼돌린 재단 적립금 2,000억 원을 비자금화 하여 모두 5만 원 권 현금으로 쌓아두고 있는 인물이다. 학내에서는 반값등록금 쟁취를 위해 치열하게 투쟁하는 학생들이 있는 반면, 돈 많은 대학생은 자신들의 부모와 같은 나이인 비정규노동자들에게 막말을 하는 패륜녀의 모습도 돌출된다. 이전의 경희대와 홍대에서 일어난 비정규노동자들의 실태를 반영한 내용들이다.
'해원캐미컬'에서 위험한 화학약품을 사용해 노동자들이 백혈병으로 죽어가지만, 해원그룹의 천재만 회장은 "근로자 복지에는 100원도 아깝다"며 산재 인정을 거부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여성노동자를 찾아가 "산재신청을 포기하면 위로금과 아들의 교육비를 대겠다" 고 회유하는 한편 포기각서를 쓰지 않으면 병원 입원실에서 내쫓겠다고 협박한다.
공장 정문 앞에서 백혈병 산재인정 시위를 벌이는 '해원캐미컬' 노동자들을 용역깡패를 동원해 잔인하게 짓밟는다. 농성대오가 용역깡패들의 폭력으로 와해되기 직전에 <시티헌터>가 나타나 용역깡패들을 완전히 물리친다. 이 와중에 권력으로부터 천재만 회장에게 산재인정에 대한 압력이 들어오는데 천재만은 "허약한 사람들이 들어와서 일하다 병 걸리는 것까지 제가 책임질 이유는 없다"는 반발에서 노동자에 대한 자본가의 철학이 그대로 반영되어 나온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가리키며 "내 저것들에게 돈 줄 생각하면 잠도 안 와!" 천재만 회장이 거침없이 내 뱉는 대사다. 정당하게 일해서 받는 대가라도 그것은 노동자의 돈이기에 앞서 자본가의 돈이라는 것이다. 노동자가 일해서 생산에 기여한 대가로 받는 몫이 아니라 자본가의 사유재산을 축낸다는 생각이 그대로 나타난다. 우리의 노동현실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대사다. 더구나 여기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은 사기업이라기보다는 권력을 주물러대는 국가기관에 가깝다. 아무것도 없는 폐허 위에서 지금의 경제성장을 이루기까지 오로지 자본가의 주도적 역할이 필수였기에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막연히 기업의 이익을 국가의 이익과 동일시하는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자본가의 사유재산에서 임금을 받고, 그러면서 "국가를 위한 산업역군으로서 사명과 책임을 요구받고, 자본가에 의해 먹고 사는데, 나아가 국가를 위한 일인데 그런 정도는 희생하고 양보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야만적 정서가 현실적으로 노동자의 권리 주장에 대해 무조건적인 단죄가 가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노동자 투쟁은 투쟁의 근본원인이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결론부터 돌출되어 적시된다. "노동조합은 투쟁밖에 모른다", "노동자 이기주의", "과격한 노동운동 척결"
기업의 이사가 5억을 벌면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노동자가 잔업, 특근을 해서 연 5천만 원을 받으면 졸지에 '노동귀족'이 되어 질시와 저주의 대상이 되고 만다.
백혈병 관련해서 천재만 회장의 입에서는 자본가다운 대사가 튀어 나온다.
"알면서 일을 한 거잖아?"
그런 일을 하기 싫으면 학창시절 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갔으면 되었을 것이다. 아니더라도 다른 일이라도 열심히 해서 노력하고 돈을 벌었으면 굳이 그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며, 그런데도 그런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 하기로 한 것이기 때문에 노동자 책임이라는 것이다.
산업재해문제로 투쟁하는 노동자에게 무자비한 폭력이 가해지고, 농성대오가 무력화되기 직전에 복면을 한 <시티헌터>가 나타나 용역들을 물리치면서 노동자들은 승리를 쟁취했다.
<시티헌터>는 최고 권력집단인 복수의 대상 한사람, 한사람을 통해 사회적 모순들이 부각시켜낸다. 그리고 그 모순과 투쟁하는 대립 지점에서 약자에게 힘의 논리를 통한 해결방법이 가장 현명하다는 사실을 행동으로 보여준다.
드라마의 맥락은 특공대가 국가의 필요에 의해 북으로 보내졌고, 다시 국가를 위해 죽임을 당했다. 노동자 또한 도구처럼 사용되고 쓸모가 다하자 버려진 행태, 그리고 오로지 돈벌이 대상으로 설정하고 병든 노동자를 냉혹하게 버리는 작태가 특수부대의 그것과 같은 맥락이며, 이러한 현상은 드라마라기보다 현실이라는 사실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시티헌터>의 활동과 역할이 개인의 신출귀몰로 비화되며 고전적인 '일지매', '홍길동'을 연상하게도 하지만, 그럼에도 현실적은 한국사회의 쟁점들(국회의원 비리, 사학재단의 비자금, 자본가들이 노동자를 바라보는 관점과 용역깡패를 동원하여 법보다 폭력으로 노동자의 주장을 묵살하려함)을 하나씩 건드리며 모순을 드러냈다. 대표적인 상업방송으로서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는 느낌이다. 왜냐하면 현실의 모순들이 일반시민들에게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다만, 노동자계급의 <시티헌터>는 어디에 있는가?
쌍용, 한진, 유성, 발레오, 재능, 콜트콜텍 등의 투쟁사업장에는 대부분 용역깡패를 동원하여 노동자 투쟁을 가로막고 있다. 경찰병력도 만만치 않은데, 이제는 소위 '어버이연합', '가스통 할배'들까지 동원하여 쟁점을 흐리고 투쟁을 와해시키고자 혈안이 되어있으며 정세의 고양국면을 끌어내리기 위해 몸부림치는 흔적이 선명하게 보여 진다.
이러한 현상은 노동자, 민중의 투쟁과 세계공황에 따른 위기국면을 법으로만이 아닌, 자유당시기의 그것처럼 폭력으로 제압해야 한다는 지배계급의 판단이 아닐까. 즉, 공권력으로서 도저히 하지 못할 짓거리를 '용역깡패'와 '어버이연합'이 대신하게 하는 비열함이 훤히 보인다. 평소에 '법대로'를 외치던 지배계급이 이젠 철저히 힘의 논리가 앞선다는 걸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장시간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조직력이 한계에 부닥칠 때마다 법에 호소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 도처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그간의 경험으로 비추어볼 때, 법은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처벌하고 억압하기 위한 도구로 작동되고 있으며, 자본가계급에게는 이윤을 축적하기 위한 보호용제도로 기능하고 있으며 온갖 불법도 눈감아버리거나 스쳐가는 솜방망이에 불과한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따라서 법으로 노동자계급의 권리를 쟁취하는 것은 환상일 뿐이다.
모순과 모순이 축적되어 생존에 대한 위협이 노골화되고, 절박한 생존의 투쟁현장에 무자비한 폭력과 구속이 뒤따르는 현실에서 <시티헌터>가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판단하는 이유는 <시티헌터>의 문제 해결방식이 법보다는 힘으로 기능했다는 사실이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정리해고'로 야간노동철폐로 특수고용 노동자성 인정 등을 요구하며 지루한 투쟁을 계속하는 노동자와 한진중공업의 85호 크레인을 향해 희망을 싣고 달리는 희망버스은 힘차게 달리고 있다.
광란의 자본에 맞선 노동자계급의 투쟁에 대해, 사회적 관심이 어느 때보다 집중되고 있는 시기에 노동자계급의 <시티헌터>가 절실하다. 우리의 <시티헌터>는 선봉대일 수도 있고, 진보적 정당일 수도 있고, 선진노동자일 수도 있다. 그러나 현 시기 노동자계급의 <시티헌터>는 민주노총에서부터 조직되어야 한다.
산별노조 하에 단위노조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의 단일노조에서 담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투쟁을 소극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산별노조의 전망을 스스로 포기하는 꼴이다. 따라서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산별노조와 민주노조의 미래는 <시티헌터>조직 여부에 좌우된다고 확신한다. 투쟁주체가 형성되지 못하면 힘 있는 투쟁동력을 기대하기 어렵고 민중연대 또한 형식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는 게 그간의 경험에서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희망버스로 달궈진 국면을 민주노총이 거대한 불길을 지펴 올려야 한다. "천상천하유아독존"에 도취되어 있는 자본에 대항하기 위한 우리의 <시티헌터>는 총파업 조직과 실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