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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노동현장이 즐거운 북카페일 수 있기를
첨부파일 -- 작성일 2009-09-27 조회 902
 

우리의 노동현장이 “즐거운 북카페book/cafe”일 수 있기를…

안명희(노동자역사 한내 회원, 출판노동자협의회)

홍대에 입성했을 때, 군데군데 숨어있는 출판사들을 발견하는 게 좋았다. 그 쏠쏠한 재미가 지금은 많이 덜해졌다. 파주출판도시가 생긴 이후로는. 내게 파주출판도시는 한겨울 찬바람 오가는 사람 없는 회색도시로만 그려진다. 유명 건축가가 열과 성을 다해 지은 건물을 앞에 두고 시멘트를 떠올린다고, 건축물에 대한 미적감각이 없어서라고 핀잔을 들어도 어쩔 수 없다. 내 촌스러움은 자유로 출퇴근 버스에 시달리는 출판노동자의 고단함과 샛강 하날 두고 환경도시라 포장하는 데 맞장구칠 만큼 뻔뻔하지 못함에서 비롯된 것이니까. 

홍대 주변엔 갖은 색깔의 카페가 널렸다. 무심코 지나다가 언제 한번은 꼭 들러보리라 하고 맘먹게 만드는 카페가 종종 눈에 띈다. 한날엔 친한 동지를 졸라보기도 했다. 우리, 커피 마시러 가자고. 그런데 그 약속은 몇 달이 지나도 지켜지지 않았다. 서로 너무들 바빴다. 그런데 요 바로 전, 나는 두 개의 회의가 잡혀 있음에도 ‘땡땡이’를 치고 그 동지와 함께 커피를 마시고 홍대 길바닥을 쏘다녔다. 일탈은 짜릿하다. 

지난 2월에 출판노동자협의회가 만들어졌다. 편집자로 디자이너로 마케터로 작가로 인쇄?제본업자로 나눠 이름 불렸던 이들이 ‘출판노동자’란 한 이름으로 모인 것이다. 그렇게 꾸역꾸역 모여서 한 일은 많질 않다. 메이데이에 “행복한 노동이 좋은 책을 만든다”고 굵게 글 박힌 크기도 엄청 난 깃발을 올린 것 하나에 감격할 만큼 노동자란 제 이름을 찾은 것만 해도 신통해할 지경이니까.

사정이 어떠하든 출판노동자 운동을 하는 단체인데, 우리의 내용을 만들어가기 위해 회의도 심심찮게 했다. 그런데 그 회의장소가 (의도치는 않았으나) 북카페였다. “즐거운 북카페book/cafe” 그곳에서 우리는 우리의 운동을 만들어갔다.

사무실도 없이 여기저기를 전전하는 막 태어난 어린 조직을 불쌍히(?) 여긴 동지들이 자신들의 사무실에 와서 회의하라고 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홍대를 고집했다. (내가 아는 동지들의 사무실은 거개가 영등포에 있다.)홍대를 고집한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거기가 ‘우리동네’서다. 힐끔 봐도 저이는 책 만드는 이겠구나 싶을 만큼 홍대엔 특이한 카페만큼이나 별스런 출판인들이 참 많다.

연유가 어떠하든 우리는 즐거운 북카페서 출판노동자를 궁금해하는 이들을 만나 인터뷰도 하고, 회의도 하고 그랬다. 지금은?? 회원 중 한 분이 작업실을 내서, 그곳에 둥지를 틀었다. 최소한 회의장소 물색은 더는 안 해도 된다. 감지덕지한다.

즐거운 북카페는 참으로 아담하다. 우린 항상 큰 테이블을 차지하고 갑론을박했지만(출판노협 운영회의에 참관했던 한 동지는 보안 같은 것엔 신경도 안 쓰고 카페 한가운데서 마구마구 떠드는 우릴 보고 신기해했다), 하늘 높은 가을 어느 날엔 카페 한구석 작은 테이블에서 소소한 내 일상을 말하고 싶다. 그리고 카페 안에 가득한 책들 중에 아무거나 하나 집어 책 향기를 맡고 싶다. 낭만이 뭐 별 거겠는가? 나를 아는 이와 함께 책과 시간을 보내는 그 잠깐의 여유가 낭만이지 않을까?

나는, 늘 꿈꾼다.
책이 책 만드는 출판노동자에게도 낭만일 수 있기를

아주 오랫동안 책이 좋아 책 만들자고 한 사람들이 책 만드는 기계가 되어가는 현실에 절망했다. 밤새 불 밝히고 앉아 원고와 씨름하는 것을 출판인의 미덕으로 주입시킴을 과감히 거부하지 못함에 좌절했다. 이 땅의 지식과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자긍심이란 장막 뒤에서 노동자 우리의 권리를 빼앗기고 살아감을 당연시하는 데 울분했다.

겨울 끝에 만나 봄, 여름, 그리고 가을. 지난 7개월여 간 우리는 즐겁게 운동하자는 말을 되뇌었다. 더디 가더라도 끝까지 함께 가자고 했다. 당장의 성과에 급급해하지 말자고 했다. 우리의 운동은 책 만드는 일상의 고된 나를 위로하는 것이 먼저라고 했다. 다른 이유는 없다. 자본에 잠식당해 상품으로서만 존재하는 책 말고, 인간의 존엄을 지켜내는 책을 만들기 위해서인 거다. 

나는 희망한다. 아주 나중까지 우리의 깃발이 하늘을 가르기를. 그리고 소망한다. 우리의 노동현장이 진정 나의 ‘즐거운 북카페’라고 말할 수 있는 그날까지 우리가 함께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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