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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아폴로산업 공권력 난입에 맞선 투쟁
단협투쟁 현장에 공권력 난입
‘문민정부’를 자칭하던 김영삼 정권은 합법적으로 쟁의중인 아폴로산업(경주 소재, 조합원 760명)에 공권력을 투입해 정권의 반노동자적 본질을 드러냈다. 당시 아폴로산업노동조합은 단체협약 갱신투쟁을 전개하고 있었는데 회사가 노조 간부를 고소·고발하자 이들을 연행하기 위해 공권력을 투입했다. 이에 단체협약 갱신투쟁은 구속자 석방, 공권력 투입 항의 등의 요구로 바뀌면서 전면화됐다.
아폴로산업의 1993년 단협투쟁의 핵심 쟁점은 △조합활동 보장(전임자 임금 무지급, 조합사무실 운영 지원중단 등) △2공장 징계 △산업안전문제 △임금(수당인상, 상여금 등) △인사경영 관련 사항(징계위 노사동수 구성, 부서이동시 사전합의 등) 등이었다. 그러나 회사측의 불성실한 태도로 교섭이 계속 결렬되고 있었다. 2공장 징계는 단체협상 진행 중에 2공장 기계에서 금형이 떨어지는 사고가 몇 차례나 발생해 2공장 조합원들이 항의하며 시정을 촉구했으나 사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조합원들이 잔업을 거부하자 사측이 무급처리하고 몇 명의 조합원을 ‘잔업거부 선동’으로 징계처리한 데서 비롯됐다.
경찰은 5월 6일 공권력을 투입해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된 노조 위원장, 선전부장, 조사통계부장을 연행했다. 이 중 조사통계부장은 불구속 처리되고 2명은 구속됐다. 이때부터 투쟁은 단체협약 문제보다 구속자 석방과 고소·고발 철회투쟁으로 전환됐다. 조합은 전면적인 파업농성으로 맞섰고 사측 역시 구사대를 조직해 파업농성을 깨려고 탄압을 극대화했다.
구속자 석방과 공권력투입에 항의투쟁
1993년 5월 7일 노사협상은 노조의 △구속자 석방 △고소·고발 취하 △무노동무임금 철회 △합법쟁의 인정 △추가구속 등 사법처리 철회 요구에 대해 회사측이 선조업 후협상을 주장해 결렬됐다.
10일 회사측은 일방적으로 정상조업을 공고하고, 바리케이드를 강제철거하다 이를 저지하던 조합원과 구사대가 충돌해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때 경주노동조합대표자회의 소속 조합원들은 중식시간 지지집회를 하고 있었는데, 아폴로산업에서 구사대들이 여성조합원들까지 무차별 폭행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광진상공과 일진산업, 경신공업 등의 조합원들이 투쟁에 동참해 구사대에 쫓겨난 아폴로산업 조합원들의 사내진입을 성공시켰다. 투쟁을 마치고 돌아가는 광진상공의 조합원을 아폴로산업 구사대가 집단 폭행해 급기야는 광진상공의 조합원들까지 작업을 거부하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아폴로산업 사측의 공개 사죄로 정리됐다.
바리케이드 철거와 함께 농성대오를 깨기 위한 사측의 마구잡이 폭력이 투쟁의 최대 고비였는데 조합원들은 광진상공을 비롯한 주위 사업장의 적극적인 지지와 연대에 힘입어 이를 극복하고 승리의 발판을 만들었다.
5월 11일 회사측의 조업공고 후 출근하던 조합원들이 농성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회사측은 관리직과 수습사원 150명가량을 동원해 불법으로 작업을 시켰다. 이에 노조 간부와 농성비상대책위원회는 조합원 250여 명과 함께 작업장을 순회하며 사태 해결 없는 조업의 부당성을 홍보하여 조업을 막았다. 그리고 이때부터 구사대 역할을 맡았던 관리직도 서서히 분열하기 시작했다. 오후 5시부터 6차 교섭을 시작했는데 출근하던 조합원들이 농성에 동참해 조업이 불가능해지자 초조해진 사측은 노조와의 교섭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임으로써 타결이 이루어졌다.
한편 경주지역노조대표자회의 사무실에서는 전노협 단병호 위원장과 업종회의 관계자의 참석 하에 영남지역노조대표자회의가 열렸다. 대표자들은 아폴로산업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했고 지역 차원의 기자회견과 대표자들의 지지방문도 있었다. 3백여 명이 모여 연대투쟁을 결의하고 지원을 약속하던 시간에 아폴로산업에서 타결이 이루어졌다.
아폴로산업노조와 사측은 1993년 5월 12일 오전 8시부터 정상조업하는 전제 아래 △휴업기간에 발생한 사안에 대해서 민·형사상 책임 불문 △고소·고발은 노사 합의 즉시 관할관청에 취하서 접수시키고 구속자 석방에 적극 노력 △노사가 합심해 투쟁기간 생산차질 만회 위해 적극 노력 등에 합의했다. 그리고 합의문 내용 이외에 노사 양측이 서명 날인한 별도의 회의록에는 그간 쟁점이 되었던 안전사고 문제에 대해 ‘작업을 거부한 2공장은 모두 유급처리하고 징계 철회하며 안전시설 설치’로, 교섭원칙에 대해서는 ‘인사권, 경영권, 노동권에 대해 단체협약에서 상호 존중’키로 합의했다.
아폴로산업 노동자들의 끈질긴 투쟁으로 5월 18일 김도현 위원장, 서정희 선전부장이 석방됐다. 경주지역노조대표자회의는 ‘1993년 임금인상 투쟁승리를 위한 결의대회 및 아폴로산업 위원장 석방 환영대회’를 열었다.
조합원들의 단결과 지역의 연대로 쟁취한 승리
공권력 투입, 언론의 극심한 여론 공세, 구사대를 동원한 사측의 탄압 등에 의해 몇 차례의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노동조합 ‘비상대책위원회’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사업장을 사수하며 철야농성으로 맞섰다. 그리고 사측이 휴업을 철회하고 조업을 재개했을 때, 조합원들은 조업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의 ‘비상대책위원회’ 농성에 동참했다. 구사대 역할을 해왔던 관리자들 내에서도 분열이 나타나 “이런 상태에서는 조업을 못하겠다”며 사측의 태도에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움직임이 아폴로산업 노동자들의 투쟁이 승리하는 데 직접적인 요인이 됐다.
아폴로사업장 인근에 있는 민주노조들의 적극적인 연대투쟁 또한 투쟁이 승리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영남지역노조대표자회의는 5월 15일 ‘아폴로산업 공권력 투입 규탄 노동자대회’를 결의해 힘을 실었다. 다른 지역과 대공장들도 지지를 결의하고 나섰으며 중앙차원에서도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입장을 발표했다. 대표자회의는 이밖에도 ‘공권력을 투입하는 김영삼 정부의 기만적 개혁정책’에 정치적 대응 결의와, 규탄 집회, 기자회견, 그리고 단위사업장에서의 적극적인 지지투쟁을 전개했다. 아폴로산업 투쟁의 승리는 내부의 단결과 투쟁, 지역과 전국의 집중적인 지지·연대가 결합해 만들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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