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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피코 노동자들의 미국 출정투쟁 시기 : 1990년 4월 12일 ~ 7월 18일
부천시 삼정동에 위치한 한국피코는 미국의 히치콕그룹의 하청계열사로 한국에만 30여 개의 하청업체가 있고, 대만과 필리핀에도 하청업체를 거느리고 있는 다국적 기업이었다. 한국피코는 여자 초임 4,100원, 평균임금 4,470원으로 밤 10시까지 강제 잔업을 시키는 등 살인적인 노동조건을 강요하고 있었다.
대부분 기혼여성이 근무하고 있던 한국피코에 노동조합이 결성된 것은 1988년 봄이다. 이후 회사는 끊임없이 노동조합을 탄압하다가 1989년 3월 2일 퇴직금은 물론 임금마저 제대로 내지 않은 상태로 위장 부도를 낸 후 자본을 철수해버렸다.
노조는 국내에서의 장기적인 투쟁을 통해 자회사에서 벌어진 문제의 책임이 모회사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으며, 국내에는 교섭 상대가 없음을 밝혀내고 외자기업의 횡포를 알리기 위해 현지에서 여론 홍보, 본사와의 직접 교섭, 국제적 연대, 외국자본 본국 정부에 대한 투쟁을 목표로 외국 출정투쟁을 벌였다.
한국피코 자본의 본국인 미국 출정투쟁은 1990년 4월 12일부터 7월 18일까지 진행했다. 한국피코노조 대표 3명이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본사 측과의 교섭을 시작하는 한편, 그 과정에서 여론홍보활동과 본사 앞 농성, 집회투쟁 등을 전개해 투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미국에서 홍보활동으로는 △기자회견 등을 통해 현지 언론·교포신문의 관심 적극적 환기 △유인물 가두 배포 △한인교회와 유학생들 모임에 참여, 홍보·지지서명운동·모금운동 △미국인 단체(종교, 노조협의회, 국회의원, 사회단체) 방문활동 등을 펼쳤다. 또한 9개 지역에서 후원회를 조직해 홍보·모금활동과 각 단체의 지지 서한 보내기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피코제품 불매운동을 펼치고, 피코 이사진을 파악해 개별 접촉을 시도하기도 했다.
본사 앞에서는 4월 20일부터 공휴일을 빼고는 매일 본사 앞 항의농성을 했고, 시내 중심가에서 피코 규탄집회를 열었다. 7월 5일부터 12일까지는 법정소송에 맞서 마지막으로 협상을 촉구하며 노조 대표 3명과 미국인 지원자 2명 등 총 7명이 히치콕 집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였으며, 단식 중 본사 앞 촛불시위와 지역 합창단의 위문공연 및 집회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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