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세기 최대의 재앙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한지 2년,
일본을 통해 한국의 미래를 내다본다
박혜령 (영덕핵발전소유치백지화투쟁위원회 집행위원장)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한 지 2년.
세계를 초긴장 상태로 몰아넣었던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어느새 많은 사람들의 기억 에서 잊혀져가고 있다. 하지만 일본 현지에서 간간히 전하는 일본의 속내는 실로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따뜻한 모닝커피를 마시는 대신 집안의 방사능을 측정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삶. 경제적 여유만 있다면 방사능 걱정 없는 아주 먼 곳으로 이사 가고 싶다는 아기 엄마들. 아직도 가설주택단지의 컨테이너 박스에 살며 구호품으로 연명하고 있는 대부분의 난민들. 야생동물이 휘젓고 다닐 만큼 폐허가 된 채 버려져 있는 고향 땅. 불과 2년 전 평화롭던 일상이 이렇게 파괴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러나 실은 이런 일상의 파괴 너머에 더 큰 문제가 내재해 있다.
호세이 대학 철학과의 마키노 에이지 교수는 일본은 지금 침몰 중이라고 한탄했다고 전해진다. 원전 사고는 사고 그 자체 보다 후유증이 더욱 무섭고 심각한 것으로 이미 알려져 있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후쿠시마의 미래, 그것이 알고 싶어 조사단을 만들어 체르노빌을 찾아간다. 과연 그들은 후쿠시마 이전의 최대의 핵발전소 사고지인 체르노빌에서 어떤 진실을 찾았을까? 그들이 확인한 일본의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
가동이 중단된 체르노빌 원전에선 사고가 난 지 26년이 지난 지금도 다량의 방사능이 누출돼서 1시간 이상 머무를 수 없었다. 인구 5만의 프리퍄티는 유령도시가 됐고 지금도 배수구에선 허용치의 400배가 넘는 방사능이 나왔다. 사고 당시 고향을 떠난 주민들은 아직도 서러운 타향살이를 감내하고 있었다. 사고 후 5,6년이 지나면서 피폭 후유증으로 280명의 주민들이 집단으로 사망하기 시작했다는 증언을 듣고 조사단은 몸서리쳤다. 더욱이 사고 이후에 태어난 피폭 2,3세들까지 원인을 알 수 없는 각종 질병으로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에 조사단은 절망했다. 일본의 미래가 그들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체르노빌 사고는 이미 끝난 과거사가 아니었다. 현재 진행형이었다. 끝을 알 수 없는 미래였다. 그렇다면 지금 일본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후쿠시마 원전에서 30km 떨어진 미나미 소마. 도시의 1/3이 방사능에 오염된 대표적인 피해 지역이다. 이 지역에서 과학 강국 일본이 택한 제염작업은 오염된 흙을 긁어내고 깨끗한 흙으로 덮는 원시적인 방식이 고작이었다. 26년 전 체르노빌에서 했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하지만 도시 곳곳에 지뢰밭처럼 널려 있는 오염지역을 전부 찾아내는 것도 문제이고 그곳을 완전하게 덮는 작업 역시 끝이 없어 보였다. 21세기의 첨단 과학은 원전사고의 후유증을 완벽하게 치유하는 데 그만큼 무기력했다. 도쿄대학의 고다마 다츠히코 교수는 제염작업이 끝나려면 향후 최소한 50년은 족히 걸릴 것이라며 보다 근본적이고 확실한 일본 정부의 대책을 촉구했다. 실제로 어염된 토양의 면적은 일본국토의 절반 이상이라고 알려져 있고, 해양생태계의 오염도 심각한 수준으로 일본인들도 가능하면 일본산 어류를 먹지 않으려 한다고 한다.
2012년 11월, 도쿄 중심가에 모인 수많은 군중들이 외치기 시작했다.
그들의 걱정은 한결같았다. 아이들의 미래였다. 일본의 미래였다. 겨울비 내리는 차가운 밤거리에서 그들은 비상구를 찾고 있었다. 몸부림치고 있었다. 불 꺼진 국회의사당 앞에서 울보 할머니 쿠로타 씨는 다음과 같이 절규했다고 한다.
“지금 후쿠시마 하늘을 덮고 있는 검은 구름은 방사능이 아니라 거짓말입니다”
영덕과 삼척은 2011년 신규부지 선정 이전에도 수차례 핵폐기장의 후보지로 갈등을 겪어온 지역이다. 정부가 한 번 점찍은 지역은 어떻게든 강행한다는 말을 확인이라도 하듯 1989년 이후 주기적으로 핵시설 유치의 몸살을 앓아 왔다. 세차례의 핵시설 유치시도에도 주민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실패한 이후 2011년 또다시 시도된 신규핵발전소 유치 시도. 무엇보다 우선 영덕 주민들에 대한 무시와 기만의 행정이라는 생각과 분노를 지울 수 없다. 국가의 전기생산과 발전을 위해 필요한 선택이라며 주민들의 잘못된 공명심을 부추기고, 영덕의 경제활성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핵발전소가 필요하다고 거짓을 설파한다. 핵발전소를 유치해 잘 살고 있는 곳이 없는 데도, 부지예정지역의 주민들에게 거금의 보상금을 말하며 매수하고 주변지역의 주민들에게는 그 나름의 혜택이 주어진다고 약속한다. 젓기도 전에 특별지원금130억이 지급되었고, 지역토호들을 중심으로 갈라먹기에 정신이 없다. 반대하는 대부분의 주민들은 우선 반대활동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관의 눈치에 소위 ‘이불덮고 만세부르기’ 식이다. 드러난 반대활동은 꿈도 꾸지 않는다. 농민이 90%가까운 영덕에서 지원금에 의존하는 농민들에게 관에 반하는 의견과 활동은 생계를 접는 것과 같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선진국의 대열에 오르겠다던 한국의 원대한 포부의 이면에 꾸준히 진행되어온 농산물시장개방은 30여 년의 세월동안 농촌을 철저히 파괴해 왔다. 농산물 가격이 보장되지 않는 불안한 생산 조건은 정부지원금에 의존하게 하였고 자립적 농사기반이 붕괴되는 결과를 낳았다. 경제 기반의 붕괴는 농촌의 생활공동체와 문화를 차례로 파괴하면서 이전의 미풍양속을 비롯한 공동의 삶을 위한 최소한의 자치문화를 소멸시켰다. 최대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의 논리는 골짝까지 들어와 약탈농업이 극에 달하였고, 지속가능한 건강한 농업의 미래는 작년 FTA로 농촌의 사망선고를 내린 것이다.
영덕을 비롯한 소규모 시군단위는 급속한 인구감소와 노령화의 상태이고, 사회의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젊은층의 감소와 더불어 지원금에 의존한 생활기반은 관의 철저히 예속되어 건강하고 자율적인 여론 형성 자체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영덕은 인구 4만의 작은 군지역으로 노령인구의 비율이 높아 초고령 사회에 속한다. 핵발전소가 지어질 바닷가의 주민들은 이제 70~80대의 노인들이 대부분이고, 일부 어민들도 싹쓸이 어업활동으로 약탈 어업이 일상화되어있다. 지난 30여년 동안 급격히 어획량이 줄고 있고, 보상을 받는 것이 물고기를 잡는 것보다 더 이익이라고 계산이 되면 언제라도 바다를 버릴 준비가 되어 있다. 이 땅을 지키고 바다를 보존하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윤리적 가치보다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는 자본의 논리가 우리의 삶속에 깊숙이 자리잡아 모든 선택을 좌우하는 나침반이 되고 있다.
이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핵발전의 폐기를 위해 작은 힘을 보태고 있지만, 자본의 거대하고 치밀한 논리를 무엇으로 극복할 수 있을 지, 아니 극복이 가능한 지 무기력해지는 순간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당장의 승리를 위해 조급해 하지 않고 작은 투쟁을 시작으로 함께 하는 거대한 투쟁의 물결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힘을 믿으려 한다. 날로 황폐해지는 농사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자연에 순응하는 농사를 지으며 고단함을 자처하는 적지 않은 농민들과 이들의 삶터를 가꾸고 지키려는 부단한 노력을 함께 할 것이고, 이런 힘들이 결국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으로 응집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소수의 깨어있는 어민을 만나고 이름도 없는 지방 기자와도 손을 잡고 귀농한 엄마와도 연대하고 그렇게 공감의 영역을 넓히는 일들을 하고 있다. 이기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요구되는 싸움이기에, 가는 길 저편에 승리의 깃발을 꽂을 수 있지 않을까? 결국 희망이 우리를 걷게 하는 힘이란 생각을 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