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역사자료실 운영 정경원(노동자역사 한내 사무처장) 이 소중한 자료를 어떻게 해야 하나 1997년 여름 전노협백서 발간을 마무리했다. 사무실을 정리해야 했다. 그즈음 백서팀의 고민은 원자료를 어찌 할 것인가였다. 전노협이 소장하고 있던 자료는 방대했다. 전노협 생산 자료뿐 아니라 지노협 자료, 민중운동 단체 자료들까지. 운동 자료를 보관할 공간을 만들자고 전노협 해산 당시부터 논의했지만 재정 여력이 없었다. 백서팀은 노동운동의 성과로 출범한 민주노총이 기록물을 보관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이에 민주노총이 공간을 마련해 자료실을 만들기로 했고 백서팀은 보관하던 자료를 이관하기로 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문제가 발생했다. 민주노총은 자료실 공간을 마련할 수 없으니 대신 전해투 사무실에 보관하겠다고 했다. 불안정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이관 준비를 하면서 자료를 훼손했다. 자료를 정리하러 온 세 명의 민주노총 실무자가 많은 양의 자료를 트럭에 실어 폐지상에 보냈다. 이를 목격한 백서팀 실무자들은 이관 작업 중단을 요청했다. 급하게 백서발간위원회 회의를 소집했고 민주노총으로 이관하기로 했던 결정을 취소했다. 그리고 자료를 상자에 담아 안산, 일산 등에 분산 보관했다. - 전노협백서발간위원회는 전노협 임원과 지노협 의장, 전노협후원회 임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유명무실했다. 많은 이들이 구속 수배 상태였고 새로운 조직의 틀을 잡는 데 힘을 쏟다보니 전노협백서 발간에 충실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자료 보존에 관한 사항은 백서발간실무팀의 의견을 존중하여 결정을 내렸다. 이후 1년 이상 김종배 동지가 중심이 되어 그의 오피스텔에 모여 전노협백서를 재발간 작업을 했다. 초판 발행 후 새롭게 확인된 사실을 정리하고 오타를 수정했으며 편집을 새로 해 보기 좋게 만드는 일이었다. 박재범, 전주희가 참여해 일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출판을 하지는 못했다. 팀장 김종배가 운명했기 때문이다. 새벽에 떠난 사람과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 1999년 8월 27일 새벽 김종배 동지가 사고로 명을 달리했다. 유족들이 그의 뜻을 이어달라고 추모사업회에 5천만 원을 내놓았다. ‘노동운동가 김종배 추모사업회’는 성수동 단독주택을 얻어 자료를 모아 풀었다. 추모사업회는 노동운동역사자료실 운영을 시작했다. 상근자인 필자는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미처 손대지 못한 자료들을 정리했다. 전노협백서 발간 이후 기록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모였다. 이재성, 이향숙, 배윤주, 이철 그리고 성공회대 민주자료관에서 일하던 친구들. 당시는 국가 차원에서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제를 만들려던 시기라 민간기록물에 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던 때였다. 노동운동역사자료실은 김종배 동지가 하고자 했던 일, 전노협백서를 재발간했다. 전문 편집인의 도움을 받고 사회과학 서적 논장(이재필)이 발벗고 나서 2003년 새로운 모습의 백서가 나올 수 있었다. 표지디자인과 인쇄를 정순재 동지 기획사에서 맡았다. 그는 전노협백서 재발간을 위해 고생은 물론이고 경제적 손해도 감수했다. 기획비 외상값 대신 사회과학 서적 3천 권을 받았다며 노동운동역사자료실에 기증하기도 했다. 얼마 전 정순재 동지가 운명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감사의 마음을 이렇게라도 전한다. 전노협백서(2003)는 300질 발간되었다. 한정판이라 가격이 높았지만 완판이다. 진인진의 주선으로 미국 대학 도서관 여럿과 네덜란드 사회과학 자료관, 일본의 대학 도서관 등이 전노협백서를 구입했다. 한국의 대학도서관보다 더 많은 곳에서 전노협백서를 소장하게 된 것이다. 씁쓸했다. 현재는 또 과거가 된다 성수동에 모인 자원봉사자들은 홉스봄, EP톰슨의 책을 읽으며 노동운동사 공부도 했다. 문서 기록뿐 아니라 기억을 기록으로 남기는 법을 공부해보고자 필자는 서울대학교 사법대학 역사교육과 대학원 수업을 청강했다. 노동운동을 기록하는 데 구술사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메일을 보냈더니 김기석 교수가 수업에 들어오도록 해주셨다. 당시 최초로 꼽힌 구술사 수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장기수 구술, 이름 없는 이들의 구술 등 경험 많은 이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어서 좋았다. 과거 기록뿐 아니라 현재를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에 한국통신계약직 노동자들의 투쟁 역사 정리 작업도 했다. 이 작업에 두 가지를 시도했다. 우선 구술사 수업을 들으며 공부한 것을 적용해 보았다. 투쟁에 연대했던 이들을 모아 기록물 정리와 기억을 기록으로 만들기 위한 워크샵을 하고 전국을 돌며 구술채록을 했다. 면담자로 김상복, 배윤주, 백일자, 이상언, 이운재, 이재성, 이향숙, 정미정, 한고규선이 함께했다. 또 하나는 김왕주 동지가 투쟁 기간 내내 일상을 기록한 기록물을 활용한 것이다. 그는 시시콜콜하다 여길만한 것들, 시시때때로 느끼는 감정을 적어놓았다. 유치장에 있는 동안에는 종이쪽지에라도 메모했다가 다시 옮겨 적었다고 했다. 그의 기록은 517일간의 이야기를 풍성하게 하는 데 중요한 자료였다. 개인의 기록이 한 시절의 역사가 되기도 한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이렇게 노조의 공식 자료와 주체들의 구술과 기록을 모은 결과물이 『517일간의 외침』이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필자는 역사학연구소 창립 15주년 기념 워크숍(2003.11)에서 ‘노동자 자기 역사 쓰기’를 제안하며 노동자 스스로 기록 남기기를 또 하나의 운동으로 제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