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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항하고 투쟁해야 비로소 진짜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다.
첨부파일 -- 작성일 2008-10-07 조회 1183
 

뉴스레터 [한내] 2008. 10 (제2호) 노동자 자기역사 쓰기

저항하고 투쟁해야 비로소 진짜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다.

글과 사진 : 임익성 (회원, 한국원자력연구소노동조합)

2005년 7월 16일, 현장으로 되돌아 왔다. 해고된 지 8년 만이다. 현장에서 활동을 해보겠다고 자존심 구기며 뒷문으로 들어왔는데 뒷문으로 들어온 만큼 활동의 공간은 왜소했다. 대전에서 쫓겨나 정읍에서 2년 반, 유배 아닌 유배생활에 집회 참석도 눈치를 봐야했으니 말이다.

우여곡절 끝에 금년 3월, 내가 해고되기 이전 그 자리로 되돌아 왔다. 11년만이다. 그런데 채 석 달이 가기도 전에, 여기 노동조합은 조직형태 변경 투표를 실시하고 (구)과기노조를 탈퇴해 버린다. 달래도 보고 때론 겁을 줘도 결국 이 뻔뻔스러운 흐름을 막지 못했다. 여기 내가 속한 사업장 노동조합은 더 이상 민주노총이 아니다.

이런 나에게 ‘노동자의 자기역사 쓰기’라. 투쟁으로 실천하는 동지들에게 항상 부끄러운 이 몸을 대체 누가 추천했단 말인가. 그랬으리라, ‘주둥아리만 나불대지 말고 지나간 너의 실천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뭐할지 고민해라.’ 그러한 주문이었으리라 생각한다. 피할 수 없어 몇 줄 적어 본다.

1996년 12월 31일자로 자의반 타의반 해고됐다. 선택에 따라서 해고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의미다. 해고는 나의 선택이었다. 나중에 삼미특수강의 해고무효투쟁을 보면서 나의 이러한 선택이 얼마나 배부르고 객기어린 선택인지를 깨달았지만, 지금도 그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해고되면서 세상을 알았다. 무섭더라. 잃는 것은 직장뿐이 아니었다. 내 직장의 동료들도 나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하기야 당시 과학기술처(현재 교육과학기술부)에 찍힌 놈하고 어울린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으니 이해한다. 친구들도 멀어져갔다. 오죽하면 해고됐겠는가 하는 시선들, 나는 단지 직장에서 해고 됐을 뿐인데, 주변의 모든 것들이 멀어져갔다. 노동조합활동으로 인한 해고가 아니었으므로 노동조합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래도 무턱대고 노동조합에 문을 두드렸다. ‘나는 해고됐다. 나를 도와 달라. 그러면 나도 당신들을 위해 도와줄 일이 있다. 산별노조를 위해서 인터넷 홈페이지라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도와줄 수 있다.’ 당시만 해도 노동조합 상근 활동을 할 생각은 없었다. 우선 억울하니까 노동조합의 힘을 얻어 복직하고, 당당히 사표를 내던지고 이 절망적인 세상을 떠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해서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줄여서 ‘과기노조’)과 인연이 닿게 되었다. 그런데 참으로, 비우면 채워진다는 말이 실감나더라. 그곳에는 정말 사람다운 사람들이 있었다. 모두가 나를 멀리하고 있었을 때 그들은 나에게 다가왔다. 지금도 그 당시 과기노조에서 그리고 연맹(당시 공익노련)에서 활동하던 동지들을 떠올리면 눈물겹다. 이들과 함께라면 나의 나머지 삶을 이들과 함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5년 초 과기노조를 떠나기 전 8년 동안, 나는 그제야 사람다운 사람을 알게 되었고, 그들과 함께 선술집에서, 노동의 현장에서, 그리고 뜨거운 아스팔트와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서, 웃음과 울음으로 때론 분노와 절망으로, 자본주의가 무엇인지를 몸으로 서서히 알게 되었다.

여기 직장으로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신규 직원 교육을 받을 때 일이다. 우리가 노동조합 수련회에서 분임토의 하듯, 조를 이루고 각자 좌우명을 써서 발표하라는데, 마땅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분위기상 ‘자본주의 박살내기’로 쓸 수도 없는 일이고, 그래서 시간에 밀려 써 낸 것이 ‘노동자로 살아가기’다.

물론 ‘쥐뿔, 돈도 없는 놈이 당연히 노동자로 살 수밖에 없는 거 아녀? 그걸 무슨 좌우명이라고...’ 우리 동지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당시 교육 강사를 포함해서 교육 받는 직원들의 표정은 참으로 오묘 했다. 신입 연구원들의 자긍심이네 포부네, 한껏 달아오른 부흥의 장소에서 ‘나는 노동자로 살아가겠노라’ 했으니, 비까번쩍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표정들...... 나는 속으로 그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너희들이 아무리 가방끈이 긴 걸 자랑해도, 너희들은 과학기술자이기 이전에 노동자다.’

는 요즘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종종 생각에 잠기곤 한다. 하루 먹고 살기에 급급해서 자신이 처한 상황조차 되돌아보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삶, 상대적으로 안정된 환경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저항을 잊어버리고 사는 노동자들의 삶, 노동자라고 부르짖으면서도 기회만 되면 부르주아 삶을 동경하며 그들의 문화적 취향을 흉내 내는 노동자들의 삶...... 

그러나 그들 모두 아직은 진짜 노동자가 아니다. 해고되고 투쟁하는 현장에서 동지들을 만나며 깨달은 것이 있다. 노동자로 태어나 진짜로 노동자답게 사는 길은 오로지 하나라는 것을...... 노동자를 착취와 억압의 상품으로 위치시키는 자본주의에 대하여 날을 세워 비판하고 저항하고 투쟁하는 한 길. 저항하고 투쟁해야만 비로소 또 다른 진짜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우리 노동자의 힘이요 무기라는 것을 알았다. 계급이니 산별이니 아무리 떠들어봐야 저항하고 투쟁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것을......

내가 지금 투쟁을 선택하는 이유는 지금보다 나은 세상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겠다는 거창한 이유가 아니라, 내가 지금 여기서 그나마 살아가기 위해서다. 세상이 세상답지 못한 세상에 사람다운 사람이라도 만나며 살고 싶어서다. 그래서 민주노총을 탈퇴해버린 사업장이지만, 그 속으로 오늘도 기어들어간다. 나처럼 현실삶에 적응하지 못하는 두더지를 찾아서 또 땅속을 헤맨다. 헤매다 보니 사업장을 넘어 현장 실천과 사회 변혁을 꿈꾸는 두더지들을 만나기도 하고, 때론 서울 촛불광장에서 저항하는 또 한 무더기의 두더지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들이 있기에 지금 내가 존재하는 것이고,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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