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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 노조민주화투쟁(1987년 7월)
첨부파일 -- 작성일 1987-07-25 조회 270

1987년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 노조민주화투쟁

 

⦁ 시기 1987725~ 831

 

 

대한조선공사에는 어용노조가 있었다. 노동자들은 1987년 봄부터 노동자의 진정한 이익을 대변할 수 있도록 노조민주화 작업을 꾸준히 전개해 왔고, 312일에는 <조공 노동자신문>을 창간해 당시 노조의 비리를 폭로함과 동시에 노동자 의식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어 절대다수 노동자들의 지지를 획득해왔다.

 

725일 점심시간, 식당 벽에 노동3권 보장’ ‘어용노조 퇴진’ ‘일당 1,500원 인상’ ‘부당해고자 복직20여 개의 요구가 적힌 벽보가 나붙었다. 이를 본 관리자가 욕설을 퍼부으며 벽보를 찢어내자, 분노한 노동자들이 삽시간에 1,500여 명으로 늘어나 어용노조 사무실 유리창을 박살내고 오후 1시 곧바로 회사 앞 태종로를 점거, 농성에 돌입했다. 농성 돌입 12시간 만에 회사측은 1987년 하기 상여금 50% 지급(노동자들 200% 요구) 통근버스비 폐지 관계법에 따른 진폐 환자 치료 조치 식당 제도개선 추진 등의 4개항을 부사장 명의로 공고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회사측의 이러한 일방적인 제시를 전면 거부하고 20개항의 요구가 완전히 관철될 때까지 투쟁할 것을 결의했다. 이날 비가 심하게 내리자 26일 새벽 230분경 회사 신관 건물로 들어가 1층에서 농성을 계속했다. 726, 일요일 새벽 410분경 회사의 사주를 받은 폭력경찰이 뒷문을 통해 농성장 안으로 쳐들어와 사과탄을 터뜨리며 농성중인 노동자들을 짓밟고 무려 80여 명을 연행했다. 설마하고 있다가 당한 노동자들은 이후 파업자위대를 조직하게 된다.

 

727, 월요일 오전 730분경 회사정문 앞에 재집결한 노동자 2,000여 명은 연행 노동자 전원 석방과 경찰폭력 사과를 요구하며 격렬한 항의를 벌이며 대표부를 구성했다. 또 경찰의 추후 폭력에 대비하여 경비대와 급식조를 편성, 각 과별·부서별로 노동자들을 구분하여 조직적인 파업농성 체계를 구축했다. 이날 회사측은 임금과 보너스 인상을 제외한 모든 요구를 수용하겠다고 제의했지만, 농성노동자들은 연행된 동료들의 즉각 석방을 요구하며 타협에 응하지 않았다. 이러한 투쟁의 결과 오후 6시경 연행자 중 미석방자 48명 전원이 석방, 농성장에 합류했다. 한편 농성노동자 가족 500여 명도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원하여 도로점거를 시도했고, 이들은 협상이 마무리될 때까지 농성노동자를 지원하며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같은 날 대한조선공사 다대포 철도차량공장 조합원들도 전원 파업농성에 돌입하여 영도조선소와 행동을 함께 하기로 결의했다. 또한 어용노조에 대한 불신임안에 이날 하루 동안 1,500여 명의 노동자가 서명했다.

 

728, 농성이 계속되는 가운데 오후 4시경 어용노조가 유인물을 뿌리다 노동자들에게 적발됐다. 어용노조 간부들은 무릎을 꿇은 채 그간의 작태에 대한 반성과 사과를 하게 되었는데, 어용노조 위원장 김종래는 밤 1030분경 농성장을 방문하겠다고 했지만 도리어 백골단만 증원되어 노동자들의 분노를 증폭시켰다. 이 과정에서 회사측과 노동자 대표부 사이에 협상이 진행됐지만 결렬됐다. 12시경 협상 결렬 소식이 전해지자 3,000여 명의 노동자가 지게차와 물탱크차를 앞세우고 현장에 있던 쇠파이프와 망치로 무장한 채 가두시위에 나서자 기세에 눌린 경찰은 개입하지 못하고 길을 터주게 되었다. 한편 이날, 노동자 대표가 영도경찰서장에게 폭행 문제를 항의하자 불순세력과 연계된 대표부가 문제다. 생존권 투쟁은 보장하려 하지만 불순분자 분열책동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최루탄을 쏘았다고 강변하기까지 했다. 가두에 진출했던 노동자들은 729일 오전 12시까지 요구조건 수락 여부를 답변해주겠다는 김철환 부산조선소 소장의 약속에 따라 일단 회사 안으로 철수했다. 철수한 농성노동자들은 가족과 합세하여 산소통 13개를 회사 입구 도로변에 쌓아 경찰의 접근을 막고 대치했다.

 

730, 회사측은 약속이행은 하지 않고 오히려 휴업을 공고했다. 이에 노동자들은 1030, 구 본관건물 광장에서 결의대회를 갖고 정상근무, 휴무반대, 외세배격 등 3개항을 결의하며 오히려 투쟁의지를 확고히 했다. 그 결과 831, 300% 상여금 지급 하기휴가비 60% 및 유급휴가 통근차비 폐지 어용노조 퇴진 식사 질 개선 등의 요구가 관철됐다. 회사측이 항복을 선언한 것이다. 대한조선공사 노동자들의 강고한 투쟁은 이후 부산지역 투쟁의 기폭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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