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딛고 설 장소를 마련해야 한다 양규헌(노동자역사 한내 대표) 70년대 사회갈등을 그린 소설에서는 산업화시대인 당시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묘사하는 풍경들이 그려졌다. 모진 역경을 딛고 걸어가는 떠돌이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 시대의 어두운 그늘을 본다. 개발의 바람을 타고 자연과 마음의 고향마저 사라지는 허무의 세상을 발전이라 부르는 것은 개발독재를 가식적으로 치장하는 허상의 포장지다. 산업화로 인해 소외된 농민과 고향을 잃고 떠도는 일용노동자들과 도시 빈민가에서 허덕이는 하층민들 그리고 인간 이하의 처우에도 항변조차 할 수 없는 노동자들의 불만과 갈등이 결국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리는 양상이었다. 이런 시대를 후대는 절망의 시대, 무권리의 시대라고도 한다. 산업화 이전에는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같은 장소(고향)에 살았다. 사람들이 고향을 벗어나는 유일한 계기는 상급 학교에 진학하는 경우 말고는 거의 없었다. 그 또한 부농 집안만 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산업화와 세계화는 체계적으로 장소를 파괴하면서 장소 없는 노동자를 양산한다. 늘어난 비정규직과 일용노동자는 물론 해고노동자, 실업노동자에게 장소를 갖지 못하게 만들고 기본권리, 최소한의 인권조차도 말살하는 지경이다. 파리에서 거대한 빌딩 위에 내걸린 삼성마크를 발견하고, 베이징에서 엘지 로고를 만나는 게 반갑고 안온한 느낌이기에는 우리 노동자 현실이 너무 각박하다. 세계화의 물결 속에 활개 치는 신자유주의는 세계화, 산업화와 국가경쟁력이라는 허무맹랑한 논리를 앞세우며 노동자계급을 무차별 공격하고 있다. 그 공격으로 장소를 잃어버린 노동자들은 머물 땅(장소)이 없어서 하늘로 올라가 머물 곳을 찾으려는 몸부림으로 상실감을 떨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민주노조운동의 역사가 수십 년을 경과해도 고공농성으로 버티고 있는 농성장이 한두 곳이 아니다. 이런 현상은 두 가지 문제를 제기를 하고 있다. 하나는 천대받은 노동자 본연의 모습이고 또 하나는 민주노조운동의 정체성 상실이다.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인 연대성과 계급성이 제기능을 한다면 하늘로, 지붕으로, 광고탑으로 올라가며 고향(장소)을 떠나는 싸움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늘 지붕 말고도 천막에서 현장에서 싸우는 모든 농성장 노동자들은 머물 장소를 빼앗긴 노동자들이다. 장소가 없기 때문에 장소를 찾아 오르고 또 오르는 것이다. 지난 7월 1일, 더위가 본격화될 때 하늘로 올라간 동지들이 있다. 험한 자갈밭과 가로막힌 밀림을 헤쳐 나가도 보이지 않는 길과 몸담을 장소를 찾아 70미터 하늘로 올라간 영남대의료원 노조 동지들이다.  대구 영남대의료원 70m 고공에서 농성 중인 영남대의료원 해고노동자 박문진·송영숙 씨 [출처: 연정]
노조 기획탄압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약속! 노동조합 정상화! 해고자 원직복직! 비정규직 철폐! 요구를 걸고 영남의료원 옥상 옥탑에서 고공농성중이다. 이들의 투쟁목표는 요구에서도 드러나듯이 두 동지(박문진, 송영숙)의 투쟁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계급이 쟁취해야 할 과제를 제시한 투쟁이다. 영남대의료원 동지들의 투쟁은 13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노동조합이 쟁의권을 행사했다는 것을 빌미로 노동조합을 와해시키고 주도적으로 활동한 동지들을 해고했다. 이런 배경에는 박근혜(영남대 재단 실세, 전 이사장)가 버티고 있었고, 노조의 숨통을 끊어버릴 작정으로 창조컨설팅을 끌어들였다. 알다시피 창조컨설팅은 민주노조 투쟁현장에 어김없이 나타나 부당노동행위를 일삼으며 노조파괴를 기획 실천해 왔다. 한마디로 창조컨설팅은 ‘노동조합 사냥꾼’이다. 영남대 의료원 측이 이런 사냥꾼을 매수함으로써 1,000여 명의 조합원 중 70여 명만 남게 되는 기형적이고 상처투성이 노동조합으로 전락했다. 그 이후 13년 동안 짓밟힌 동지들은 노동자 자존심을 회복하려고 치열한 투쟁으로 외로운 싸움을 이어왔다. 재단 측은 지배이념을 상황에 따라 꽃놀이패처럼 돌려 노동자 내부를 균열시킨 후 조직력을 파탄 내는 야만적인 짓거리를 계속해 왔다. 이런 자본에 맞서 두 동지는 자신을 희생하고서라도 좌절과 절망으로부터 희망을 찾기 위한 투쟁을 결단했으며 책임자를 처벌하고 민주노조를 지켜내기 위한 강도 높은 투쟁에 돌입했다. 짧지 않은 13년, 대한문 앞에서 108배 투쟁과 1000배 투쟁, 박근혜 그림자투쟁, 삼성동 박근혜 집 앞에서 하루 3000배를 57일간 계속했다는 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것이다. 3천배를 하면 부처도 돌아앉고 소원을 들어준다는데 그럼에도 야만적인 자본의 위력은 개개인의 투지로는 극복하기 어려웠다. 사안과 쟁점은 계급적 쟁점인데 개별 노동자의 싸움으로 돌파구를 연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박문진, 송영숙 동지는 13년의 외롭고 서러운 모진 세월을 끝장내겠다고 한다. 보다 장렬하게 싸우지 못했다는 겸손한 평가를 던지며 반성을 딛고 이제 모든 것을 걸고 싸우겠다는 외침을 하늘에서 외치고 있다.  사진 출처 : 민주노총
노동자계급의 당면 요구를 내 걸고 대리전과 같은 외로운 투쟁에 이제는 노동자계급이 화답할 시기가 되었다. 노동자가 자신을 옭아매는 모순에 맞서 싸우는 데는 대리전이라는 게 없다. 계급성에 입각한 연대투쟁만이 있을 뿐이다. 하늘로 올라 투쟁하는 동지들은 몸담을 곳(장소)은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라고 강변한다. 고공농성 직후 이들이 밝힌 결의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지 않았던 길은 울퉁불퉁하고 거칠고 밀림입니다. 그러기에 우린 방황했고, 망설였고 주저했습니다만 민주노조 깃발을 내리고 싶지 않았기에 그 깃발이 또 다른 길임을 알고 있기에 용기를 냈습니다. ‘죽고자 하면 산다고 했으니’ 저희 노조는 그동안의 모든 역량을 쏟아 부을 것이고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와 지역연대 동지들의 정열적인 연대와 보건의료노조의 조직적인 산별적 투쟁으로 싸울 것입니다. 한번 사는 인생인데 우리들의 삶이고 희망이고 불멸인 노동조합이 이렇게 개무시 당하며 밟혔는데 무엇이 무섭고 두렵겠습니까? 너무 늦은 싸움 그래서 더 열심히 싸우겠습니다. 담대하고 유쾌하게 그리고 될 때까지 고공에서 힘차게 투쟁하겠습니다.” -하늘지붕에서 박문진. 송영숙 해고노동자가- 간단한 요구가 아니다. 그렇다고 쟁취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다만 이 동지들의 요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논리적인 협상력이나 정치적 해결이라는 헷갈리는 전략으로는 불가능하다. 노동자 연대의 위력으로 돌파구를 마련하지 않는 이상 교섭력은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나아가 느슨한 대응으로는 불가능하다. 계급적 연대투쟁으로만 문제해결의 단초를 마련할 수 있다. 다행히 대구지역본부와 보건의료노조가 이 싸움에 집중하고 있다. 이런 연대의 분위기를 살려내며 지역을 넘어 산별을 넘어 전체 노동자의 결집된 투쟁만이 고공농성에 모든 걸 걸고 있는 동지들에게 딛고 설 땅을 마련해주리라 생각한다. 같은 사안의 투쟁들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단 한 번의 승리가 절실한 시점이다. 땅을 딛고 설 장소를 마련하기 위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