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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최초 위장폐업에 맞선 일성섬유투쟁
⦁ 시기 : 1987년 7월 30일 ~ 8월 22일
일성섬유는 180여 명 규모의 중소기업으로 7월 30일, 노동자들이 임금 50% 인상과 상여금 300% 지급을 요구하며 농성에 돌입하자 회사측은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전국 최초로 자진 폐업함으로써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제대로 된 교섭 한번 없이 바로 자진폐업을 강행한 것은 그야말로 노동자들을 손톱의 때만큼도 여기지 않는 처사임에 분명했지만 노동자들은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회사가 자진폐업한 지 18일만인 8월 18일, 회사에서 농성하고 있던 노동자들을 비롯한 일성섬유 전체 노동자들이 광주시 동운동 중외공원에서 모임을 가졌다. 사장의 입장이 워낙 완강하자 이들은 일자리마저 모두 잃을 수 있다고 판단해 임금인상 요구를 철회하는 등 모든 요구를 유보하기로 결정했다. 이어 사장집을 방문해 공장 문을 다시 열어달라 요청하고, 노동부 광주지방사무소, 광주시청 등에 찾아가 중재를 요구했다. 일성섬유 사장은 노동자들의 이러한 요구마저 외면하다가 사장의 파렴치한 행동에 대한 여론이 비등해지자 8월 22일, 증심사 계곡에서 전체 회사원들이 참여한 가운데 “폐업이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불러 올 줄은 몰랐다. 여러분들이 허용해준다면 회사 문을 다시 열고 새로운 마음으로 일해 보겠다”며 폐업방침을 철회했다. 이어 ‘상여금 100% 지급’을 약속하고 임금인상 문제는 사장에게 위임하며, 회사 재개 과정에서 이전 노동자들 중 희망자는 모두 재채용하는 것으로 협상이 타결됐다.
이 회사는 이후 ‘선일섬유’로 상호를 바꿔 위장폐업 34일 만인 9월 2일 문을 열었다. 일성섬유의 폐업은 1987년 이후 전국적으로 악용되는 선례가 되었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이러한 위장폐업이 심각할 정도로 확산돼 자본측이 적극적인 공격으로 위장폐업을 활용하는 바람에 커다란 사회 문제가 되었으며, 교섭을 결렬시킬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몰아 ‘사장 집 앞 농성’ ‘농성시위’ 등 극단적인 투쟁을 유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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