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에 깜빡이는 촛불이 아닌 횃불을 준비하자
양규헌(노동자역사 한내 대표)
박정희 군부독재 하에서 전태일 열사 추모를 위해 강변에 집회신고를 하고 4~50명의 노동자들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 산속으로 숨어들어 비장한 마음으로 촛불을 켠다.
최초에 한사람이 양쪽으로 촛불을 옮기며 ‘우리 승리하리라’를 낮은 톤으로 부르며 촛불 열기에 손가락을 녹이며 열사를 추모했던 30년이 훨씬 지난 11월의 기억. 그 기억 속의 촛불은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거치며 장엄한 횃불과 붉은 포물선을 그리는 화염병으로 타올랐다. 뜨거운 가슴을 달궜던 횃불과 꽃병은 거대한 노동자 함성과 함께 계급의 상징으로 자리하며 민주노조운동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2002년 6월, 주한미군의 장갑차량에 깔려 숨진 효순이 미선이의 죽음을 규명하고 추모하기 위해 그해 11월 수십 년 전의 촛불이 타올랐다. 밤하늘에 포물을 그렸던 꽃병과 횃불은 자취를 감추고 2004년 3월 노무현의 탄핵에 반대하는 촛불이 다시 타올랐고 지난해는 검역주권 쟁취를 위한 촛불이 전국을 휩쓸었다.
촛불과 앙상블이라도 이루려는 듯, 촛불이 밝힌 모든 집회는 문화제로 기획되었다.
불법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의미와 부담 없이 많은 시민들이 함께한다는 기조로서 자발적 참여와 비폭력을 외치며 ‘평화’를 사랑하는 대한민국 국민은 시청광장에서 광화문에서 ‘국민MT’를 즐겼다. 학자들은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를 논하느라 바빴고, 온 나라는 촛불을 찬양하느라 들썩거렸다.
매일 같이 진행되는 ‘축제의 장’에 일반시민들의 분노는 출렁이고 있었으나 노동자계급이 대응은 문화제에 묻혀 허물대기 시작했다.
모두가 촛불을 즐기고 있을 때, 사용자의 손배 가압류에 전깃불이 끊겨 촛불을 켜고 생존의 몸부림으로 싸우는 노동자들이 밝혔던 촛불은 광장의 촛불과 분명 달랐다. 그 동지들에게 광장에 일렁이는 촛불은 자신의 목을 조여 오는 억압의 도구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비정규법안은 대량해고를 생산했고, 노동자계급의 생존을 짓밟고 있어도 촛불은 그렇게 평화적 기조로 조용히 타 올랐다. 길거리에 내몰려 수백일간 싸우는 비정규노동자들에게 촛불은 투쟁이 아니라 종교적 평화를 손짓하는 상징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공권력은 치밀했다. 물대포를 쏘아 올리고 최루액을 분사하고 소화기를 난사하고 몽둥이로 공격하고, 특공대를 투입해서 유모차도 짓밟는 만행을 멈추지 않았다.
광란의 폭력 앞에 대응은 비폭력이었다. 명박산성 앞에 모래주머니를 쌓아도 비폭력이고 잔인한 진압경찰을 향해 종이뭉치와 물병만 날아가도 어김없이 외치는 비폭력. 비폭력이었다.
아무리 짓밟아도 그대로 당하고만 있는 시위대를 보면서 경찰은 무차별 공격만이 시위를 잠재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으며, 폭력적 시위진압의 재미를 체험한 공권력은 올해 1월 20일 테러진압부대인 경찰특공대를 앞세워 용산철거민들을 집단학살 했고 다시 촛불은 등장했다.
촛불문화가 몰고 온 영향력은 숱한 성과를 축적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촛불문화제를 통한 다양한 토론의 장이 열렸으며, 사안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고 일체감을 이루었다.
도심의 밤거리를 수많은 인파가 만들어내는 촛불미학의 예술성 또한 특정한 기획으로는 불가능한 연출이었다. 내밀한 조용함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촛불은 점점 흔들림을 동반하고 그 속에서 노동자계급투쟁의 기획은 몸부림치고 있지만 태풍 앞에 촛불은 여전히 가녀림을 벗어나질 못했다.
촛불이 토론문화를 정착시키고 공감대 속에 일체감을 이뤄냈다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용산학살을 계기로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하는 ‘제3자개입금지’가 등장하고 소위 MB악법이 노동자 민중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다. 그간 촛불의 성과가 공감대 형성과 일체감이었다면 이젠 거대한 횃불의 투쟁을 기획해야 하며 자본주의 위기상황과 맞물린 경제위기 국면에서 노동자계급의 상징적 메아리가 거대한 불꽃으로 타올라야 한다.
삶에 대한 치열한 투쟁이 뒷받침되지 않았을 때, 사막에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없듯이 노동자계급의 투쟁 없이는 최소한의 자유조차도 유린되었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그간, 노동운동사는 투쟁으로 당당히 맞서면서 기본 권리와 자유를 억압하는 법, 제도적 장치를 깨부셨다. ‘정치활동금지’가 그렇고 ‘조직결성의 자유’(복수노조 금지)와 ‘제3자개입 금지’가 계급적 투쟁의 산물이다. 촛불광장에서 외치는 ‘비폭력’이라는 외침 속에 노동자계급의 생존에 투쟁들이 파편화되고 기력이 소멸되어갔던 계급 자신의 한계를 떨치는 건 여전히 노동자계급의 몫이 될 것이다.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위기를 그들이 책임지게 하고 용산학살의 살인범을 단죄하고 악법을 무력화시키기 위해서라도 ‘2009년 봄’의 투쟁을 준비해야하고 그 투쟁은 광풍에 나풀대는 촛불이 아닌 거대한 횃불이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