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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수와 진보 그리고 노동자계급_양규헌(117호)
첨부파일 -- 작성일 2019-10-14 조회 782
 

보수와 진보 그리고 노동자계급 

 

양규헌(노동자역사 한내 대표)

 

불평등의 제도화 

 

1996~97년 노동법투쟁 이후 한국경제의 모순을 신자유주의에 의한 ‘불평등’이라는 키워드를 통해서 설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불평등은 자산불평등과 소득불평등으로 다시 구분해 볼 수 있는데, 특히 후자는 정규직-비정규직과 같은 고용형태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이러한 설명방식은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 존재하는 생산의 문제로 보기보다는 생산의 결과물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의 문제에 주로 초점을 둔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과 달리 ‘재생산의 위기’라고 하는 것은 분배차원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불평등이라는 자본축적상의 위기인 동시에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현실에서 모든 모순과 불평등의 문제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2016년 촛불과 노동자 투쟁으로 고양된 정세에서, 자본은 자신에게 닥친 위기를 경제의 다른 두 주체인 노동자와 국가에 떠넘기던 그간의 관행이 어려워지게 되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폭로되고 대중의 분노에 의해 박근혜가 권좌에서 끌려 내려와 구속되었다. 재벌들은 자신들이 일명 보수단체를 통해 정경유착의 검은 돈거래를 해왔기 때문에 ‘공범’의 혐의를 벗어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재벌은 경제단체를 통해 태극기를 앞세운 반동들에게 엄청난 돈뭉치를 뿌려댔으니 적폐청산의 1호는 전경련이므로 사법조치를 엄격히 해야 했다. 또 재벌들은 탐욕을 살찌우기 위해 박근혜에게 돈뭉치를 안겨주고 특혜를 누렸기 때문에 적폐청산과 더불어 사내유보금을 사회에 환원하도록 했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재벌들의 적폐청산은 흐지부지 상태이며 면죄부를 주는듯한 양상이 전개되고, 나아가 대선공약이었던 친노동정책은 반노동정책으로 유턴하고 있다. 

 

진보와 보수의 개념

 

인류역사는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투쟁을 통해 발전해왔다. 역사의 주인은 노동자 자신이며 세상의 모든 부를 창조하고 만들어내는 주인공이다. 자본가계급은 단지 노동자계급의 노동에 기생하여 존재하는 이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노동자계급은 사회변혁을 향해 투쟁해 왔다. 자본주의가 존속되고 노동자계급이 권력을 잡지 않는 이상 모든 법과 제도의 방향은 지배계급을 향해 쏠릴 수밖에 없다. 돈이 주인인 세상이기 때문이다. 이 엉터리 정의에 반발하며 자본주의 체제를 변혁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활동하는 사람들을 좌파 혹은 진보세력이라고 한다. 상대적으로 현재 한국의 '자칭 보수' 대다수는 1980년대 이전 시대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퇴보주의자'들이다. 이들을 보수주의라고 하는 것보다는 진보의 반대개념인 반동주의(수구)가 맞는 말이다. 보수주의의 개념은 혁명이 아닌 점진적 변화를 지향하기 때문에 보수세력 내부에는 진보적 색채도 존재한다. 따라서 '보수'의 반대말은 '혁신'이고, '진보'의 반대말은 '퇴보'가 되는 것이다. 서로 대립하지 않는 것을 억지로 대립시키면 진영을 바라보는 시각에 초점이 없어진다.

 

해방 직후를 연상케 하는 광화문 집회

 

조국사태를 계기로 서초동과 광화문이 들썩인다. 광화문 쪽은 자칭 범보수집회라며 한국당 지도부, 종교단체 등이 참여하여 이승만·박정희를 관속에서 꺼낼 양, 문재인·조국을 규탄하고 하나님까지 모셔다가 듣도 보도 못한 광장헌금까지 거둔다. 광화문 집회의 동원조직은 수직적인 방식을 택했다. 한국당이 전조직적 동원령을 내렸고, 종교단체가 알바까지 모집한 정황이 SNS에서 어렵지 않게 포착되기 때문이다. 사실 광화문 집회는 왠지 낯설게 느껴진다. 자칭 보수세력과 대부분의 언론들은 이명박·박근혜 정권까지만 해도 세월호, 용산, 쌍용차, 비정규직 투쟁 등과 관련한 집회에 붉은 머리띠, 투쟁, 폭력을 빨갱이 집단으로 규정했고 국가를 통째 말아먹을 세력이라고 분노했던 자들 아닌가. 또 몸싸움만 해도 폭력은 헌정질서를 유린하는 사회악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노동자들의 기본권쟁취 투쟁을 대화로 풀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았던가. 또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결국 경제를 망치고 나라를 말아먹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한국당과 보수주의를 자칭하는 세력들이 10월 3일 집회에서 한쪽에서는 태극기를 흔들고, 일부는 무장을 하고 폭력을 휘두르며 청와대 진격을 하고 문재인 하야를 외치며 밤샘투쟁을 했다. 그러나 언론들은 이들에게 경제 위기의 주범이라고 하지 않는다. 나라를 망쳐먹는 몰지각한 행동이라는 보도도 찾아볼 수 없고, 불순분자라고도 하지 않는다. 이렇게 언론과 반동이 한통속이 되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자신들이 거품 물며 떠들었던 사회악을 왜 자신들이 하면 선이 되는지 돌이켜 봤으면 좋겠다. 대규모 집회에서 자신들이 그렇게 비판하고 혐오했던 빨갱이 짓을 따라 하는 광란적 모습에서 안쓰러움과 비애를 느낀다. 해방직후 반민특위가 깨지고 친일파들에게 역청산 당해야 했던 역사의 비극이 오버랩 된다. 

 

태극기가 아니라 검찰개혁 깃발이어야 한다 

 

서초동 집회는 조국수호와 검찰개혁을 내세우며 한국당을 규탄한다. 해방 이후 한국사회에서 사법절차나 인권존중은 개풀 뜯어먹는 소리다. 검찰조직은 지금까지 소위 ‘허가받은 범죄 집단’의 역할을 해 왔다. 섬뜩한 증오와 배제의 잣대로 사소한 사건도 기소하고 재판하여 감옥에 보내는 것이 검찰의 직업적 관행이었다. 또 검찰은 정치세력에 빌붙어 지배계급의 반대세력을 제거하면서 인간성을 말살하고 한 사람이라도 더 구속시켜 실적을 올리고 출세가도를 달리는 것이 그들의 행보가 되어버렸다. 

 

자칭 엘리트 집단인 그들은 오로지 지배계급의 무한한 영광을 위해 노동자계급을 법이라는 이름으로 공안이라는 이름으로 탄압해 왔다. 통제받지 않는 권력은 폭력을 생산하는 도구가 된다. 따라서 검찰다운 검찰, 고삐 풀린 망아지 형태의 검찰을 개혁하자는데 필자도 적극 동의한다. 그러나 광화문 집회처럼 사람이 주어가 되는 구호나 외침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광화문 집회가 조국 퇴진을 외친다고 서초동에서는 조국 수호인가. 조국 수호의 함성이 크면 클수록 사법개혁의 목소리는 묻힐 가능성이 높다. 설령 묻히지 않더라도 전략적인 측면에서 바람직스럽지 않다. 더 나아가 서초동 집회에서 ‘미남조국’이라는 대형사진을 들고 집회에 참가한 모습이 언론과 검찰에 대한 분노와 증오보다는 팬클럽이 등장한 거 같아 안타깝다. 또 태극문양의 물결이 서초동에 조직적으로 배포된 모습 또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물론 언론과 검찰의 동맹은 더욱 단단해져 동맹권력은 세상을 집어 삼킬듯한 기세로 한국사회를 통제하고 있다. 확인되지 않는 정보를 검찰이 던져주면 냉큼 받아 유포하여 민중의 눈과 귀를 현혹하는 작태는 용납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서초동 집회가 언론의 관심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광화문에서 흔들어대는 태극기 쟁취전략이라 생각하니 안타깝다.

 

작금의 쟁점은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야만적인 구조와 체제의 문제이며 법과 제도의 문제다. 제도를 바꾸지 않는 이상, 자본주의 체제가 갖는 모순을 이야기하지 않는 이상 철벽같은 지배계급의 보호막으로 포장된 검찰과 언론권력은 달라지지 않는다. 아니 달라진다고 해도 이후 어떤 권력이냐에 따라 개혁은 원위치 될 수도 있다. 그래도 개악 가능성을 줄이려면 법과 제도 투쟁이 되어야 하며 잘못된 관행, 즉 적폐청산의 고삐를 조이는 것이 시급하다. 

 

정치와 계급이 보이지 않는다.

 

최근 양쪽에서 벌어지는 엄청난 규모의 집회는 마치 진영과 진영의 대결국면으로 치달으며 전쟁이라도 불사할 분위기이다. 서로 상이한 조직방식으로 그렇게 많은 군중이 모였다는 것은 직접정치라는 측면에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양쪽 집회는 사활을 걸고 투쟁하는 결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가 보이지 않는데 그 하나는 제도정치이며 또 하나는 계급이다. 

 

의회정치에서 의회의 주인공들이 의회를 팽개치면 의회는 없애야 하는 것 아닌가. 군소 정당도 아닌 거대야당이 지구당에 동원 할당량까지 전달하는 것도 모자라 인증샷까지 찍어댄다.

 

이것은 당면한 쟁점에 대한 정치라기보다는 이 기회를 활용하여 정치일정(총선)에서 유리한 지점을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여당은 집회를 주도한 것으로 보이진 않으나 집회를 평가하는 태도로 봐서 서초집회와 총선전략을 고민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부여받은 임무(정치)는 소홀히 하고 정치일정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신들이 국민의 대표라니 어이상실이다.

 

80년대 이후 거리투쟁은 독재권력을 향해 사회부조리와 모순, 그리고 노동자계급에 대한 탄압과 반노동자정책에 맞서 투쟁했다. 노동자들은 거리에서 싸우며 노동자계급의 목소리를 정치적으로 관철해 내겠다는 직접정치, 거리정치의 의지가 다분히 담겨있었다. 이러한 노동자계급의 직접정치는 노동자를 대변할 정치세력이 취약했기에, 그리고 간접정치에 대한 역사적 불신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국민의 대표임을 내세우는 국회의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지금까지 그들이 보여준 노동자들에 대한 태도는 노동자권익을 위한 법안이 재개정되기보다는 있는 법조차 독소조항으로 가득한 악법의 전철을 밟고 있다. 

 

정치인들이 국민 중에 ‘절대적 다수인 노동자를 빼고 국민을 위한다’는 말은 국민보다는 재벌을 위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행태는 현재의 여당과 제1야당이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권력을 어느 세력이 잡던 노동자 탄압은 멈추지 않았고, 노동법은 개악의 역사였다. 광화문과 서초동을 뒤덮는 대규모 집회 와중에도 노동법 개악은 진행되고 있으며 지난 정권들이 만들어낸 적폐의 아픔들이 노동자들의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적폐청산, 대선공약 이행, 대법판결준수를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다. 나아가 노동유연성, 탄력근로제, 장시간 저임금 정책에 대한 개악을 중단하라고 외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촛불의 일부에서는 민주노총이 왜 서초동에 조직적으로 결합하지 않느냐고 문제제기 하는 모습. 또 노동조합 깃발이 안보여서 속이 시원하다는 상반된 모습을 노동자계급은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광화문과 서초동 집회에 진영은 있으나 노동자계급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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